제본이 이렇게 예쁠 일? 서울도서관 ‘앞장과 뒷장展'

시민기자 정인선

발행일 2020.02.10. 11:42

수정일 2020.02.11. 13:28

조회 3,281

'앞장과 뒷장展' 렉또베르쏘 20주년 기념 전시

'앞장과 뒷장'展 렉또베르쏘 20주년 기념 전시 ⓒ정인선

서울도서관은 '앞장과 뒷장'展을 2월 4일부터 2월 29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한국 예술제본의 가치를 소개하고 예술제본의 2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이다. 국내 예술제본가 작품과 해외 비엔날레 출품작 등 100여 점이 소개된다.

1999년 홍대 앞에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예술제본 공방 ‘렉또베르쏘’와 함께 진행한다. 렉또베르쏘는 책의 ‘앞장(Recto)과 뒷장(Verso)’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렉또베르쏘는 예술제본 교육과 주문 제작, 보수와 복원, 제반 분야와의 협업 등을 통해 다양한 제본문화를 소개한다.

렉또베르쏘에서는 정통 유럽식 고전 제본부터 현대적인 제본에 이르기까지 책의 구조와 형태, 책을 이루는 여러 물성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와 실제가 진행된다. 책을 만드는 물리적인 작업만을 행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대하는 손길과 마음가짐도 내실 있게 키워갈 수 있는 공간이다.

종이책에서 전자책, 오디오북 시대로 넘어가는 이 시대에 오로지 손으로 한땀 한땀, 종이 한 장, 한 장을 수작업으로 모아서 예술 제본으로 만든 귀하고도 특별한 책을 만나 볼 수 있다.

'앞장과 뒷장展' 전시실 내부

'앞장과 뒷장' 전시실 내부 ⓒ정인선

예술제본 작품 10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갓 예술 제본에 입문한 초심자가 만든 예술제본 책부터 10여 년 이상의 경력으로 '를리외르'라고 부르는 전문 제본가의 작품도 선보인다. 를리외르는 필사본, 낱장의 그림, 이미 인쇄된 책등을 분해하여 보수한 후 다시 꿰매고 책 내용에 걸맞게 표지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한다.

대량 생산되는 기계식 제본과 구분하기 위해 '예술(d'Art)'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이 책 만들기 작업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한 권을 제본하는데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예술제본은 책과 함께 발달했다. 중세 시대에 인쇄술이 발달하고 책이 대중화하면서 제본도 발달했다.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는 동안 예술제본은 화려하게 꽃 피웠다. 인쇄된 책이나 낱장의 기록물, 혹은 낡은 책을 보수하여 견고하고 아름답게 엮어 오래 보존하는 예술제본 과정은 일련의 책치레이다. 낡은 책을 보수 복원하여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존적 기능은 예술제본의 중요한 미덕으로 꼽힌다.

예술제본가 백순덕 개인전 포스터들

예술제본가 백순덕 개인전 포스터들 ⓒ정인선

故 백순덕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제본 장정가이다. 프랑스 예술제본 장정 학교 ‘유카드(UCAD)’에서 자격증을 딴 후, 파리에서 7년 만에 귀국, 예술 장정이라는 분야를 국내에 소개했다. 그녀가 운영하는 작업실인 렉토베르소는 책의 앞장과 뒷장을 의미하는 뜻으로 홍대 앞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문학과 지성사의 '깊이 읽기' 시리즈, 사진가 구본창과 소설가 황순원, 이청준, 김주영 등의 작품집을 예술제본으로 재탄생시켰다.

유럽에서 '예술제본'은 하나의 공예로 발전해왔다. 제본을 건축에 비유, 집을 지을 때 순서대로 집을 지어가듯이 책 만들기도 같은 걸로 생각한다. 여러 가지 과정이 있고 기초가 제대로 안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힘들고 완성된 책에서 부실한 결과가 나타난다. 유럽의 고전적인 전통 방식은 제본에 60가지 넘는 공정이 있다.

'박경리의 토지'를 박성희님이 예술제본으로 재탄생시킨 책들

'박경리의 토지'를 박성희님이 예술제본으로 재탄생시킨 책들 ⓒ정인선

"가장 한국적인 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전집을 가능한 모든 색상의 샤그랭과 마블지로 꾸며보았다"

작가의 말처럼 수년간 작업한 박경리의 토지 전집(전 21권)을 표면이 투박한 가죽과 마블지의 조합이 멋진 예술을 만들어 놓았다. 토지의 책 내용을 생각하면서 전시 작품을 보니 책이 담고 있는 의미와 책 내용의 무게와 너무나 환상적으로 잘 어울린다.

사람들은 본인의 소중한 의미가 담긴 책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고 오래 간직하기 위해 예술제본가를 찾는다고 한다. 부모님의 편지, 추억이 담긴 책, 구하기 어려웠던 사전, 직접 쓴 편지, 일기 등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렉또베르쏘의 예술제본가들이 2011년부터 참가하고 있는 프랑스 국제 예술제본 비엔날레의 출품작도 전시된다. 프랑스에서는 2년에 한번씩 예술제본 비엔날레가 열리는데, 상도 여러번 받고, 렉또베르쏘 공방이 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예술제본 비엔날레는 경쟁보다는 축제 같은 행사다. 유럽, 미국, 러시아, 캐나다, 멕시코 일본, 한국 등 제본가들이 참여한다. 똑같은 책이지만 보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서 표지나 제본방식, 사용한 재료가 다르다. 이번 전시에서도 라퐁텐 우화집, 빅토르 위고의 시집, 카뮈의 이방인 등 해외에서 인정받은 수상작들이 전시되었다.

서울도서관 소장 자료 전시

서울도서관 소장 자료 전시 ⓒ정인선

시민들에게 예술제본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전시와 관련된 서울도서관 소장 도서도 소개됐다. 전시 기간 중 기획전시실에 방문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예술제본을 주제로 한 그림책, 이론서, 교양서 및 전시 작품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 기간 이후에는 서울도서관 일반자료실, 보존서고, 세계자료실에서 열람과 대여가 가능하다. 

줄어드는 아이, 트리혼의 보물나무를 읽어보았다. 동화책이 아니라 그림 한 장 한 장이 일러스트 작품 전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본에 필요한 도구들

제본에 필요한 도구들ⓒ정인선

2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책 ‘제본’과 ‘제본가’의 역할을 이해하고, 현대의 책 문화 속 예술제본의 의미를 알아보기 위한 연계 강연 '책을 지키는 사람들'이 무료로 진행될 예정이다. 책을 지키는 사람들 강연은 시민 50명 대상으로 선착순으로 진행되며 2월 4일부터 ‘서울도서관 홈페이지→신청·참여→강좌 신청’에서 신청할 수 있다.

렉또베르쏘 공방 체험은 경의선 책거리 창작센터에서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단 하나뿐인 노트’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체험 비용은 5,000이다.

■ 서울도서관
○ 위치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10
○ 이용시간 : 화~금 9:00~21:00 / 토,일 09:00~18:00
○ 휴관일 : 월요일,공휴일
○ 문의 : 02-2133-0300
○ 홈페이지 : https://lib.seoul.go.kr/

■ 경의선 책거리
○ 위치 :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 37길 35
○ 문의 : 02-324-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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