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뚝섬 행 전차’ 타보셨나요?

시민기자 박세호

Visit181 Date2020.01.28 13:01

수명을 다한 전차가 도색을 바꾸기 위하여 기지창 안으로 들어와 있다

화제의 전시,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울의 전차’ 전시회를 보면서 시니어들은 추억과 감회에 젖었고, 자신들보다 한 세대 더 전으로 올라가면 사랑의 하이킹코스 1위가 뚝섬, 봉은사임을 알고는 크게 한 번 웃을 수도 있었다.

유럽 등 외국에 가면 이따금 볼 수 있지만, 서울에서 이제는 없어진 전차(電車 : tram, street car)가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추억 속에는 남아있다. 과거 역사와는 별 인연이 없이 지냈던 요즘 세대들도 쉽게 전차를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지난 12월 20일부터 인기리에 열리고 있는 ‘서울의 전차’ 기획전시인데 오는 3월 29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하차한 승객들 뒤에서 전차가 곧 출발하려는 듯 착각을 하게 만든다. 서울역사박물관 앞 야외전시장 박세호

대한제국 초기 전차들에 대한 희귀한 자료를 포함하여 각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전차 사진들이 흘러간 한 시대의 낭만적인 추억을 불러오고 있다. 개화의 물결이 출렁이던 1899년에 개통되어 서울의 명물이요 첨단 교통수단이었던 전차의 시작부터, 1968년 각종 자동차로 붐벼 비좁아진 서울의 도로면을 떠나야 했던 마지막 전차의 이야기까지 모두 시대를 상징하는 독특한 분위기들이 느껴진다.

전차는 남녀노소, 양반 상인 차별이 없는 공간이었다. 만원전차의 모습

19세기 후반은 1차 산업혁명(증기기관) 이후 에디슨의 전기의 발명에 의해 촉발된 2차 산업혁명(1870~ )으로 들어가던 시기인데, 그 첨단산업 분야에 고종황제의 대한제국이 과감하게 뛰어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이미 1887년엔 백열전등이 조선왕조의 경복궁에서 최초의 빛을 발하였고, 전차가 1899년 역사적인 개통을 이뤘다. 일본에 뒤지지 않는 과학기술 인프라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하겠으나, 일제의 강점과 착취로 인하여 결국 무위로 돌아간 것은 통탄스러운 일이다.

세계적으로 전차가 실용화된 시기가 1881년경인데, 1899년 5월 4일 전차 8대가 돈의문에서 흥인지문(동대문)까지 개통되었으니 전차 선진국이라 할 만하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교토와 나고야에 이어 세 번째였지만 수도권에 설치된 것은 최초였기 때문에 일본의 수도였던 도쿄보다 먼저였다는 설명이다. 아시아권에서 가장 빨리 그것도 비약적인 전차의 시대를 개막시킨 것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시니어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평생에 걸쳐서 이 서울의 전차를 타본 사람과 타보지 못한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대부분 타봤다고 했지만, 전차가 은퇴식을 치룬 1968년 이후 서울에 올라와 자수성가 하신 분들은 아쉽게도 타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은 ‘땡땡땡’ 하는 소리와 더불어, 차체 위 도르래에서 불이 번쩍번쩍하며 탁탁 튀는 모습을 회상하면서 낭만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전차의 모습이 들어있는 1930년 경성의 모습 청계천박물관

사랑의 하이킹 코스 ‘뚝섬 코스’ 아시나요?

전차’였는데, 이것을 흔히 기동차라고 불렀다. 기동차에 얽힌 서울 시민들의 애환도 무척이나 사연이 많은 역사의 한 자락을 펼쳐 보여준다. 뚝섬 하이킹 코스도 이러한 사연의 한 부분이다.

일제강점기 처음에는 도성 안을 중심으로 놓였던 궤도가 도성 밖으로도 뻗어 나갔다. 시민들의 여가 생활을 위해 뚝섬까지 가는 전차도 생겨 경성 사람들의 편의를 도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내전차는 그냥 ‘전차’라고 불렀고, 뚝섬이나 광나루에 가는 전차를 특별히 ‘기동차’라고 불렀다. 밤 시간에 화물이나 도회지에서 배출되는 오물을 실어 날랐고, 낮에는 광나루나 뚝섬으로 놀러 나가는 승객들을 싣고 다녔다.

‘사랑의 하이킹 코스’ 안내판에 뚝섬과 봉은사가 들어있다

광고에서 한 세대 전의 낭만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증언을 남긴 80대의 할아버지들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현재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로 다녔다고 회고한 바 있다. 동대문에서 기동차를 타고 뚝섬 정거장에 내려, 한강변에서 대형 나룻배를 타고 봉은사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강남이 지금 도시의 화려한 중심권인데, 그 당시 까마득한 교외로 인식되었다니 세월의 간격을 느끼게 된다.

청계천과 중랑천의 물길로 사방이 휘둘러진 뚝섬은 섬처럼 보이지만 섬이 아니다. 그러나 물과 가까운 인연으로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시설인 뚝도수원지(수도박물관)로 자리매김을 한다.

기동차는 1930년 왕십리~뚝섬 간 4.3㎞를 달렸다. 그리고 1934년 동대문~왕십리 간 별선을 놓으면서 동대문~뚝섬 구간이 완성됐다. 기동차는 주민들의 외출 시 편리한 교통수단이면서, 동시에 주 생산품인 채소 수송수단이었다. 서울시내의 일반 전차와는 운영주체가 달랐다. 일제 강점기에 서울 시내를 운행하던 전차는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운영을 했으나 왕십리를 지나는 전차는 ‘경성궤도주식회사’의 소관이었고, 출발 도착역이었던 옛 이스턴 호텔 옆에 차고 및 정비소 격인 기지창이 있었다. 뚝섬에 이르는 13.6 노선과, 동대문에서 광나루까지 가는 전차 등 두 노선을 운영했다.

external_image

동대문관광호텔(구 이스턴호텔) (좌) ‘경성궤도회사’ 터 표지석이 역사를 말해준다 (우) 박세호

뚝섬행 ‘기동차’ 다니던 길, 지금 모습은?

현재의 지하철 1호선, 4호선 동대문역의 7번 출구로 나오면 동대문시장 입구 흥인지문과 마주 보는 대로변 동대문관광호텔(이스턴호텔) 앞에 경성궤도주식회사의 표지석이 역사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동대문에서 출발한 기동차를 타본 사람들은 도심지에서 건물들 사이를 빠져나와 청계천의 탁류를 내려다보면서 달렸던 그 당시의 추억을 더듬으며 당시를 회고했다. 판자촌이 무질서하게 천변을 따라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용두동, 마장동을 지나면 기동차가 왕십리 정류장에 도착하여 잠시 정차하였는데, 그곳이 지금의 2호선 한양대역이었다고 한다. 아직 대학교 단지가 자리 잡기 이전이었는데, 터를 닦기 위하여 다이나마이트를 터트려 멀리 그 은은한 폭발음을 들었다고 한다.

기동차가 정차해 숨을 고르던 왕십리역 자리는 현재 2호선 한양대역이다 박세호

뚝섬은 1950년 성동구로 편입되면서 지금은 성수동(聖水洞)이라 불린다. 2호선 전철역 이름엔 뚝섬역이 아직도 남아있다. 성수동, 왕십리 일대는 그 옛날 벌판에 채소밭이 아득히 펼쳐져 있는 데를 기동차가 달렸다. 성수동은 말 목장과 한강 수원지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1954년엔 경마장이 뚝섬으로 옮겨와 의미를 더하였다. 또 1958년 인근 마장동에 우시장과 도축장이 들어섰다(지금은 축산시장만 남기고 다 이전하였다).

롯데월드몰 안에 설치된 전차 모형 박세호

성수동에섬유 및 의류제조업체, 수제화산업과 자동차 정비공장들도 집결하는 가하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서울숲과 예술 갤러리 등 다양성을 모색하는 변화가 오늘도 계속 중이다.

옛날 기동차길로 사람과 오토바이와 전철과 자동차들이 폭주하고 있다. 왕십리, 뚝섬, 광나루 등 일대의 왕실 땅들이 일제의 손아귀로 넘어갔고, 일본인들에게 분양되어 과수원 등 산업과 주거의 기초가 되었다.

‘서울의 전차’ 전시회 포스터 ⓒ서울역사박물관

그러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찾아와 새로운 생활 거점이 마련돼 현재는 2호선, 5호선, 7호선 전철이 중랑천, 왕십리역, 한양대역, 뚝섬역, 성수역, 구의역, 아차산역과 광나루, 장안평, 마장동, 어린이대공원 등 요소요소 발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전차와 버스의 경합이 시작되었다.  전차 승객의 감소가 이어지고, 적자로 인해 한국전력으로부터 인수한 전차의 운영을 맡은 서울시는 1968년 전차 운행을 중단한다.

external_image

왕십리 출발 전차가 성동교를 건너면 뚝섬이다 청계천박물관

1968년 11월 29일 낭만이 가득 찼던 70년간의 전차시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전차라고 부르든, 기동차라고 부르든 이제는 지나간 날의 추억일 뿐이다. 그러나 전차에 대한 기억은 수도 서울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한 부분으로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차는 고단한 서민들의 발이었던 까닭이다. 더욱이 지난 100년의 어둡고 힘들었던 그 기간 동안 민주화와 산업화의 두 축을 견인하면서 극적으로 이뤄냈던 성공의 신화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이웃 간의 끈끈한 연대와 가족애를 추억 속에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서울역사박물관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 홈페이지 : https://museum.seoul.go.kr
○ 관람시간 : 평일 09:00~20:00,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무료
○ 문의: 02-724-0274~6

▶ 더 많은 서울 뉴스 보기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하기
▶ 내 이웃이 전하는 ‘시민기자 뉴스’ 보기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