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

시민기자 이선미

Visit378 Date2020.01.02 11:21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총리 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한일합방’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명백히 ‘국권피탈(國權被奪)’이었다. 강제조약이 체결됐던 통감 관저는 거의 백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2016년, 바로 그곳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터’ 공원이 조성되었다. 왜 하필 국치의 현장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인가? 라는 이견도 있었지만, 그 역사의 순간을 되돌아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온 세상에 제대로 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남산 통감 관저 터에 조성된 '기억의 터' 사진

남산 통감 관저 터에 조성된 ‘기억의 터’ ©이선미

‘위안부’ 할머니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잊혀져 왔다. 나라도 그들의 문제를 외면했다. 고통으로 삶이 망가졌지만 누구도 위로하거나 책임을 나눠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0년 6월, “일본군은 군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일본 정부의 발표에 고 김학순 할머니가 세상에 나섰다. 1년 후인 1991년 김학순 할머니는 오랜 침묵을 깨고 일본군의 폭력을 증언했다.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선미

그날 이후,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여전히 너무도 아픈 사실이다. 할머니의 증언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이를 통해 연대하며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들은 또 다른 폭력의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세상에 정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를 요구했다.

정동길에 서있는 소녀상에 시민들이 모자와 장갑을 끼워준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정동길에 서 있는 소녀상에 시민들이 모자와 장갑을 끼워줬지만, 발은 여전히 시리다.©이선미

그리고 2016년, 할머니들의 뜻을 이어가려는 1만9,755명의 국민들이 ‘기억의 터 디딤돌 쌓기’ 운동을 통해 할머니들의 추모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기억의 터에 자리한 ‘세상의 배꼽’에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문구를 새긴 둥근 돌이 있다. 할머니들이 힘든 개인사를 뒤로 하고 세상에 나서서 외친 말씀이다. 다시는 폭력의 희생자가 없어야 하기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지만 끊임없이 상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철 역 안에 부착된 입체 포스터 사진

전철역 안에 부착된 입체 포스터,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 ©이선미

서울시는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기 위해, 일상에서도 늘 기억할 수 있도록 또 하나의 장치를 마련했다.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입체 포스터를 부착한 것이다. 남산 기억의 터에서 도심으로 내려오면 충무로역과 명동역이 이어진다. 포스터는 두 전철역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해 열심히 찾아야 했다. 찾지 않으면 잊혀져버릴 것처럼 찾았다. 보물찾기가 아닌데 소풍 가서 보물을 찾던 간절한 심정으로 찾았다.

입체 소녀상의 사진

각도를 옮길 때마다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소녀 ©이선미

마침내 만난 포스터 앞에서 몇 걸음을 옮겼을 때, 말 그대로 이미지가 각기 달라졌다. 소녀가 사라진 빈 의자가 서늘했다. 단지 이미지일 뿐인데도 그랬다. 정말 기억하는 이들이 없다면, 역사는, 나쁜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다라는 두려움에 섬뜩했다. “기억하지 않으면 진실은 사라집니다.”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명동길에 부착된 입체 포스터

성탄을 맞아 구세군 종소리가 울려퍼진 명동길에도 입체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다 ©이선미

지난 8월 14일, 정부는 이날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제정했다. 오랜 시간 동안 외롭고 힘겹게 지내신 할머니들을 다시는 외롭게 하지 않으리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첫 기념식에서는 ‘위안부 기림비’ 제막식도 있었다. 손을 맞잡은 한국과 중국, 필리핀의 세 소녀를 故 김학순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조형물이다. 서울시와 정의기억연대는 이 기림비의 명칭을 공모해 ‘정의를 위한 연대’라는 이름으로 선정했다.

옛 조선신궁 터 앞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를 찍은 사진

옛 조선신궁 터 앞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 ©이선미

기림비가 세워진 장소는 일본이 조선인들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기 위해 거대한 조선신궁을 세웠던 자리다. 지난 8월 29일에는 국치의 현장인 ‘기억의 터’에서 옛 조선신궁까지 치욕의 순간을 되짚어보는 ‘국치의 길’이 공개되었다. 부끄럽고 불행했던 역사를 드러내놓을 만큼 우리 사회가, 우리 국민들이 단단해졌다.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되새기고 반성하며 새로운 미래를 도모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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