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떠나도 괜찮아! 청계천 힐링 여행

시민기자 박세호

발행일 2019.12.30. 12:35

수정일 2019.12.30. 18:13

조회 1,658


불빛으로 감싸인 거리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감동과 기쁨을 얻는다 Ⓒ박세호

불빛으로 감싸인 거리에서 시민들은 새로운 감동과 기쁨을 얻는다 Ⓒ박세호

도회지 생활의 번잡함에 찌든 영혼을 달래며 때로는 청계천 물길을 따라 무작정 걸어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득 되는 일이다. 그것은 동시에 서울 시민으로서의 특권이며, 주어진 행복이다. 물길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은 외로운 겨울나그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고즈넉한 ‘나’의 모습 그대로이다. 혼자 걷다가 외로울 때면 물속에 비친 내 얼굴도 보다가 문득 그리운 사람들을 뇌리에 떠올려보자. 사계절 어느 때 여행하기에 청계천은 아름다운 투어 코스이며, ‘힐링의 정석(定石)’을 일러주는 내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청계천 계단과 징검다리를 밟으며 새해 계획을 구상해 본다 Ⓒ박세호

청계천 계단과 징검다리를 밟으며 새해 계획을 구상해 본다 Ⓒ박세호

우리들 도보여행의 시작은 광화문 옆 청계광장에서 시작한다. 연말연시 시즌을 보내며 화려한 빛의 축제가 요란하다. 청계천변은 분주하다.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지고, 다양한 전시물이 설치된다.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해체하는 모든 작업마저 볼거리가 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 시즌에는 그리운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 받는다 Ⓒ박세호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 시즌에는 그리운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 받는다 Ⓒ박세호

크리스마스를 목적으로 이뤄진 조명 건축물들은 2020년 1월 1일까지 볼 수 있다. 그때까지는 청계광장에서 장통교에 이르는 멋진 장면들을 친구, 친지들과 함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명건축물을 가장 멋지게 감상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부츠 하나의 영상이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 Ⓒ박세호

부츠 설치물 하나도 지나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 Ⓒ박세호

어스름 저녁이라고 말하고 싶다. 반짝 점등(點燈)하는 그 순간, 조명 불이 타오르는 깜짝 쇼가 시작된다. 감격의 순간은 이후 최소 1시간 동안 지속된다. 이 시간 동안 주변 배경과 함께 반짝이는 조명을 감상할 수 있다. 어두워지면 빛만 보이고 실제 형상은 사라진다. 사진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다.

청계천이 흐르고 흘러 큰 물줄기를 형성한다 Ⓒ박세호

청계천이 흐르고 흘러 큰 물줄기를 형성한다 Ⓒ박세호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바다)으로 간다.”
노래 한 소절 따라 불러도 좋다. ‘세라비~ 이것이 인생이다’ 하면서 흥얼거리면 그것이 음악이요, 천상의 소리다. 실제로 청계천 물은 흘러가다가 중랑천과 합치고, 계속 한강으로 밀고나가다가 결국은 그 웅장한 바다로 탈출한다. 살곶이다리 위에서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물결을 바라보기까지 계속 걸어보자. 1년 내내 청계천의 물길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맴돈다. 

청계천에 만발한 꽃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세호

청계천에 만발한 꽃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세호

그래도 막상 청계천에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기는 어렵다. 봄이 와도, 여름이 와도 사방은 고요하다. 그러나 들여다보지 않는 사이 단풍이 지고, 남몰래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꽃들은 어느새 겨울을 맞는다. 한파(寒波)의 소문이 거리에 짠한데도, 고집불통 천변(川邊)에 진을 치고 있는 식물들의 색깔은 여전히 늠름하고 푸르다. 1년간 여행의 추억은 성하(盛夏)의 신록, 울울창창 거대한 숲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놀랍지 아니한가? 청계천의 또 다른 하류 지역은 고독한 길, 사색의 길, 힐링의 장소로 사랑을 받는다. 동대문역, 신설동역, 용답역, 동대문역사공원역, 상왕십리역, 신당역, 왕십리역, 마장역, 신답역, 신설동역, 동묘역, 한양대역, 뚝섬역 어디에서나 내려서 조금만 걸으면 청계천에 가 닿는다. 

청계천생태학교 앞도 겨울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박세호

청계천생태학교 앞도 겨울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박세호

동장군(冬將軍)이 입성을 마쳤으니, 이제 다시 봄이 멀지 않았다. 도회지의 청계천변은 인파의 흐름이 넘치면서도 도도히 흐르고 장시간 끊임이 없다. 시선을 딴 데로 돌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여유를 찾으려고 할 때 단풍은 점점 더 깊어져 간다. 나무는 거센 바람 가운데 시시때때로 남모르게 소스라친다. 나무들은 저희들끼리 소통할 뿐, 우리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인가? 지구촌 어느 지역 풍경보다 오밀조밀하고 아름답다 Ⓒ박세호

여기가 어디인가? 지구촌 어느 지역 풍경보다 오밀조밀하고 아름답다 Ⓒ박세호

오른쪽 눈을 지그시 감고 바라보면 마치 그 무성한 아프리카의 덤불 속에 휘둘려있던 열대 나무들의 환상적인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왼쪽 눈을 딱 감고 한 눈으로만 바라보면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보았던 민둥산 단풍나무 같은 호화로움과 단조로움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두 눈을 동시에 스르르 반만 감고 물 흐르는 것을 보면, 알프스 얼음이 녹아 세차게 흐르던 스위스 라우터 브루넨 지방의 차디찬 계곡 폭포의 물살을 다시 만나는 듯 싶다.

꽃 피고 신록이 우거진 오간수교 아래 청계천 징검다리는 젊은이들의 차지다 Ⓒ박세호

꽃 피고 신록이 우거진 오간수교 아래 청계천 징검다리는 젊은이들의 차지다 박세호

서울의 간선도로들이 교차하는 중심권에서 이런 절경, 명품 산수(山水)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복 받을 일이다. 서울은 세계 최고의 절경들을 주마간산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마장동 두물 다리 아래에 이르면 사랑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두 물결이 만난다고 해서 두물 다리이다. 소통의 절정이요. 사랑고백의 장소인 것이다. 

보행로, 차도, 전철 레일, 육교 등 교통망이 다각도로 펼쳐져 있다 Ⓒ박세호

보행로, 차도, 전철 레일, 육교 등 교통망이 다각도로 펼쳐져 있다 박세호

청계천의 특징으로 물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일품이다. 청계천을 표시하는 모든 지도에는 다리가 있다. 그리고 모든 지도는 아니지만, 어떤 지도들엔 징검다리가 표시되어 있다. 얼마나 정겹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자연환경에서 멀리 살아왔던 도회인들은 징검다리를 건널 때 균형을 맞추기도 어려운 둔중한 자신의 몸놀림을 발견하고 개탄하게 된다. 그래서 징검다리만 자주 건너도 박자와 리듬에 조금씩 맞춰 들어가는 자신의 생체리듬을 확인하게 된다. 사계절 어느 계절이라도 청계천은 우릴 반긴다.

청계천의 봄과 여름.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가족이 간다 Ⓒ박세호

청계천의 봄과 여름.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가족이 간다 Ⓒ박세호

그러나 유독 겨울철에 청계천 하류로 가서 물소리도 듣고, 징검다리도 건너볼 일이다. 사색의 여행, 힐링 투어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길이 동대문 오간수교를 지나 고산자다리를 가볍게 건너뛰어 마장2교까지 이어진다. 한참 더 하류로 들어서면 오갈 데 없는 산간 시골동네 그대로다. 동구 밖 졸졸 흐르던 개울물 찰랑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고단한 생각들을 벗어버리고, 편안한 쉼을 맞아들이자.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살곶이다리가 지금도 여전히 통행로를 제공한다 Ⓒ박세호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살곶이다리가 지금도 여전히 통행로를 제공한다 Ⓒ박세호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내려 8번 마을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 장애인복지회관 앞에서 내리면 청계천 변에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시설관리공단,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성동구복지회관, 동대문구 복지회관, 마장동축산물시장, 청계천박물관 등 주요 건물과 시설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판자촌 체험관에서 그 옛날 만화책과 교과서를 읽을 수도 있다. 

청계천 답사 시 꼭 들어보아야 할 판자촌 체험 기념관의 모습 Ⓒ박세호

청계천 답사 시 꼭 들어보아야 할 판자촌 체험 기념관의 모습 Ⓒ박세호

2호선 한양대 역에서 내려 도보로 5분 제방을 따라 내려가면 살곶이다리가 있다. 살곶이공원에서 돌다리를 두드리며 다리도 건너보고, 다리 아래 피어나는 물안개를 보기도 한다. 다른 행인을 만날 일도, 지나칠 일도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다. 고산자교에서 살곶이공원까지는 추운 겨울인데도 땀 흘리며 한참 걸어야 할 장거리 코스다. 자전거를 타고 살곶이공원을 지나 서울숲까지 다녀오는 것도 하나의 공식이다.

청계천 경유로 중 가장 붐비는 지역 중 하나인 마전교. 청계천 다리 일람표가 보인다 Ⓒ박세호

청계천 경유로 중 가장 붐비는 지역 중 하나인 마전교. 청계천 다리 일람표가 보인다 박세호

그러나 중간중간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 편승하거나 마을버스에서 홀짝 뛰어내려 청계천 제방을 따라가며 흑백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즐거움도 나쁘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도 청계천은 말없이 빙그레 우리를 반겨준다. 걷다가 쉬고, 쉬다가 놀고, 놀다가 걷다보면 저녁이슬이 내리고 새들은 둥지로 돌아가는 시간이 된다. 천지 사방은 조용히 어둠으로 덮인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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