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서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정수 서울도서관장 인터뷰

시민기자 한상민

발행일 2019.11.01. 07:35

수정일 2019.12.10. 11:36

조회 3,922

인터뷰를 진행한 청소년기자들과 이정수 관장님

서울도서관, 많이 보고 들을 곳이지만 실제 방문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래된 건물이 주는 차분하고 중후한 분위기가 도서관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도서관. 서울의 대표도서관인 서울도서관에서 이정수 관장님을 만났다. 책, 도서관, 사서라는 세 가지 키워드에 관해 관장님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Q 서울도서관은 서울시 대표 도서관입니다. 대표도서관에서 하는 일은 어떤 것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서울시에는 25개의 구가 있는데, 각 구에 있는 도서관을 비교 분석해보면, 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 차이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정부로부터 국비를 지원받아 타 도서관에 비해서 시설이나 환경이 열악한 곳에 운영비를 지원합니다. 균등성을 추구하는 것이죠. 그리고 각 지역구를 조사해보면, 어떤 지역구에는 노인 분들이 많이 계시고, 또 다른 지역구에는 다문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각 지역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서울 시민이 균등하게 서울 도서관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서울도서관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청소년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정수 관장님

Q 인공지능(AI)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AI가 사서를 대신할 수 있을까요?

사서의 일 중 하나가 서가정리잖아요. 이미 싱가포르에서는 AI 시스템이 도입되어서 책이 잘못 꽂혀져 있으면 신호가 울립니다. 사실 책 정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기계가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죠. 하지만 사서는 책을 꽂는 일 이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진로나 친구관계에 고민이 있을 때, 사서는 그 학생의 마음을 읽고, 책을 추천해 주는 것은 물론 그 학생에게 힘을 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공감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있어서는 AI의 역할에 한계가 있습니다. ‘행복’, ‘미래’, ‘사랑’과 같은 추상적 개념에 대해서는 AI가 수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학계에서는 AI가 사서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Q 서울도서관장이라는 자리가 힘들고 책임감이 큰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장을 맡으면서 뿌듯했던 일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예전에 한 도서관에서 ‘어머니 독서회’를 운영했어요. 부모님들이 독서회에 오셔서 자신들의 삶의 애환을 많이 토로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과의 관계, 시어머니와의 갈등 같을 것들 말이죠. 사실 어떤 책을 읽어도 다 가족과의 관계로 이야기가 흐르더군요. (웃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독서회를 한 2~3년 정도 하면 사람이 변합니다. 인문학 공부도 하시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이죠.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면서 학원을 막 보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함께 책을 읽으면서 자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식들과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도 호전되는 것이죠. 그런 점이 참 뿌듯했던 것 같고, 힘들었던 일은 아무래도 예산과 서포트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꼭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 있는데 예산으로 인해서 중간에 접어야 되는 일이 있거나 하면 그럴 때마다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

관장님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Q 문헌정보학과 진학 후 사서를 꿈꾸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생의 위치에서 사서가 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문헌정보학과에 오는 친구들은 책을 많이 좋아하는데, 조금 내성적입니다. 사서가 되면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조금 피곤할 수 있어요. 평소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를 잘 나눌 수 있는 학생이 오면 정말 좋은 학과 같아요. 그리고 멘토를 가지고 있으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한결 더 수월해 질 수 있습니다. 학교 선배나 동네 도서관 사서들의 모습을 보면서 꿈을 향한 원동력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생의 위치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웃음)

Q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읽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도서관은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옛날 도서관은 권력의 산물이었어요. 왜냐하면 가진 자들이 자신들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흘러 시민혁명이 발생하면서, 이 세상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도서관에 하나하나 축적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도서관을 통해서 과거의 사실들이 전파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나 지식들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었기 때문에 저는 도서관을 ‘지식발전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4차 산업혁명은 지식발전소인 도서관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Q 관장님은 어려서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하셨을 것 같습니다. 관장님께서 청소년기에 읽은 도서 중 기억나거나, 영향을 받은 도서가 있으신가요? 혹시 청소년들에게 소개해주실 책이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그림책을 많이 사주셔서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졌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교실에 있는 학급문고를 자주 읽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별도의 도서관 건물이 있어서 책과 매우 친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책과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 것이죠. 그래서 큰 고민이나 선택의 어려움 없이 도서관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꼭 어려운 책을 고집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린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 괜찮습니다. 가벼운 책이라도 읽으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터뷰는 약 30분 동안 진행됐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관장님의 책과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인터뷰 후 책들이 가득 꽂혀있는 열람실을 둘러봤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책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점점 더 각박해지는 사회, 책과 함께한다면 좀 더 여유있는 삶을 살지 않을까. 오늘도 서울도서관의 불은 환하게 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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