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과 고흐가 만난다면…마곡문화관 ‘이이남 빛의 조우’

시민기자 박분

Visit380 Date2019.12.05 07:54

지금 서울식물원에서는 흥미롭고 이색적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식물원 내 마곡문화관에서 열리는 ‘빛의 조우’전이 그것.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겸재 정선의 작품에 빛을 접목한 기획전이다. 양천의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이 지역의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식물원 내에 자리한 마곡문화관 외관 ⓒ박분
서울식물원 내에 자리한 마곡문화관 외관 ⓒ박분

한강 하류에 위치한 마곡동 일대는 한강과 인접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옛 김포평야 지대인 이곳에는 논에 물을 대던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 있었다. 1928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인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은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363호로 지정되었고, 고증을 통해 형태와 구조를 복원해 현재 ‘마곡문화관’이라는 이름의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곡문화관은 옛 농경문화 전시뿐 아니라 문화예술 전시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박분
마곡문화관은 옛 농경문화 전시뿐 아니라 문화예술 전시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박분

마곡지역의 역사, 근대 농업 자료가 전시된 마곡문화관은 옛 농경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관 기능 외에도 문화예술을 전시관람 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번 기획전에는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 ‘박연폭포’, ‘겸재정선 고흐를 만나다’, ‘인왕제색도-사계’, ‘그곳에 가고 싶다’, ‘신-단발령망금강’ 등 미디어아트 작품 여섯 점이 선을 보인다. ‘마곡문화관’이라는 특별힌 공간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들이다.

겸재 정선의 '양천팔경첩'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 ⓒ박분
겸재 정선의 ‘양천팔경첩’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한 작품 ⓒ박분

전시장인 마곡문화관에 들어서면 어둠 속에 환한 빛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천히 움직이다 어느 순간 리드미컬하게 변화하는 화면 가득 수려한 동양화가 펼쳐진다. 흡사 8폭 병풍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겸재 정선의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한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이다. 양화진, 선유봉, 개화사 소악루 등 양천의 아름다운 명소들이 빛을 발한다. 누정에 오르는 사람들도 보이고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는 한강에는 돛단배들이 한가롭게 떠다닌다.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에 디지털이라는 빛을 접목한 작품 ⓒ박분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에 디지털이라는 빛을 접목한 작품 ⓒ박분

양천(陽川)은 햇빛이 잘 들고 물이 맑은 고장을 뜻하는 말로 지명만큼이나 양천현의 풍경이 아름다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쉴 새 없이 폭포수가 떨어져 내리는 박연폭포의 웅장함도 볼만하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인 ‘박연폭포’에 디지털이라는 빛을 접목한 작품으로 박연폭포에 대한 그리움을 영상을 통해 달랠 수 있었다.

겸재 정신의 작품 '설평기려' ⓒ박분
나귀 타고 눈 쌓인 벌판을 지나 먼 길을 떠나는 겸재 정신의 작품 ⓒ박분

‘겸재 정선 고흐를 만나다’와 ‘그곳에 가고 싶다’는 동서양 회화 명작을 결합한 작품으로 매우 흥미롭다. ‘겸재 정선 고흐를 만나다’는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과 인상파의 거장인 고흐의 작품을 재밌게 엮어 관람객을 새로운 공간으로 이끈다. 겸재 정선은 자신의 작품 ‘설평기려(雪坪騎驢)’에서 나귀를 타고 눈 쌓인 벌판을 지나 먼 길을 떠난다. 고흐의 ‘라크로의 수확’에 그려진 풍경을 지나 그가 도착한 곳은 ‘아를르의 반 고흐의 방’이다.

그곳에서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속 고흐와 만난다. 동서양 고전회화 명장들의 극적 만남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방문을 마치고 집을 향해 돌아오는 겸재 정선의 봇짐에는 고흐가 선물한 그림이 들어있다. 동서양 명화들이 마치 만화를 보듯 살아 움직이며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어 좀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겸재 정선의 나귀 탄 나그네가 먼 길을 떠나 귀에 붕대를 감은 고흐와 만나는 순간 ⓒ박분
겸재 정선의 나귀 탄 나그네가 먼 길을 떠나 귀에 붕대를 감은 고흐와 만나는 순간 ⓒ박분

‘인왕제색도-사계’는 힘차게 내려 그은 바위의 선이 인상적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색을 입혀보는 작품이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인왕산의 모습을 천천히 보여주면서 오래 전 그가 보았을 인왕산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만든다. 전시는 점입가경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동양의 산수화 속에서 점심식사(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를 즐기는가 하면 원색의 옷을 입은 여인들이 산등성이에 앉아 있는 모습(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도 보인다. 뒤이어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이 첩첩 산중에 모습을 드러낸다. 진경산수화에 서양의 명화들을 덧입힌 ‘그곳에 가고 싶다’ 작품들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절로 삼매경에 빠지게 한다.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조화를 이룬 동서양의 기발한 만남은 긴 여운을 남긴다. 미래를 예시한 작품도 있다.

겸재 정선의 '단발령금강도' 풍경 속에 미래 도시 모습을 담은 작품 ⓒ박분
겸재 정선의 ‘단발령금강도’ 풍경 속에 미래 도시 모습을 담은 작품 ⓒ박분

겸재 정선이 그린 ‘단발령망금강도(斷髮嶺望金剛山圖)’ 풍경엔 산 아래에 휘황찬란하게 불 밝힌 도시가 들어섰다. ‘신-단발령 망금강’이다. 케이블카가 금강산과 단발령의 높은 산봉우리를 오가며 도포 입은 선비들을 실어 나른다. 겸재 정선이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의 전경(왼쪽)이 골짜기 아래 화려한 도시 너머로 살짝 보인다.

서울식물원 온실 풍경 ⓒ박분
서울식물원 온실 풍경 ⓒ박분

서울식물원의 핵심전시장인 온실에도 들러보았다. 쌀쌀한 날씨에도 계절을 잊은 듯 초록이 무성한 온실 풍경은 마냥 싱그럽다. 후끈한 열기와 남국의 정취가 물씬한 식물들이 내뿜는 향기 또한 여전하다. 작은 변화라면 꽃이 더욱 풍성해졌다는 것이다. 열대관 입구부터 색색의 꽃들이 손짓하고 있다.

붉은 잎을 가진 포인세티아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많이 쓰인다 ⓒ박분
붉은 잎을 가진 포인세티아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많이 쓰인다 ⓒ박분

지중해관에서도 꽃물결이 이어진다. 그 중 포인세티아는 멀리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포인세티아의 붉은 잎은 사실 꽃이 아닌 잎이다. 붉은색 잎과 초록색 잎이 도드라져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식물로 많이 쓰이고 있는 포인세티아를 보면서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붉디붉은 포인세티아로 단장한 포토존 앞을 지나던 중년의 관람객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참을 즐겁게 머무르다 가는 모습도 보인다. 포인세티아는 특유의 붉은 잎으로 크리스마스시즌인 겨울에 많이 볼 수 있지만 멕시코가 원산지인 열대성 식물로 분류된다.

온실 밖 야외 정원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정원 곳곳에 눈사람과 빨간 코의 루돌프 사슴 조형물이 들어선 정원을 돌아보면서 시민들은 머잖아 다가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앞서 즐기고 있다. 여기저기 포진한 조형물들 사이에서 또 한 장의 인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서울식물원 온실과 그 둘레의 겨울맞이 억새 ⓒ박분
서울식물원 온실과 그 둘레의 겨울맞이 억새 ⓒ박분

어느덧 정원의 나무들도 겨울 추위에 대비해 짚으로 엮은 옷을 입었고 온실 둘레에 빙 둘러선 억새도 까실까실한 제몸을 서로 부비며 겨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미디어아트 기획전 ‘빛의 조우’전은 서울식물원 내 마곡문화관에서 내년 4월 19일까지 계속된다. ‘빛의 조우’전을 보며 ‘마곡문화관’이 갖는 장소의 매력과 역사성에 흠뻑 빠져보면 어떨까?

내년 1월 18일 오후 4시에는 이이남 작가 초청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된다. 작가의 작품세계와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품었던 소회를 밝히고 시민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이다. ‘아티스트 토크’는 12월 중 서울식물원 홈페이지를 통해 별도 공지, 사전 예약을 진행할 예정이다.

■ 서울식물원 마곡문화관 ‘이이남, 빛의 조우’ 기획전시 안내
○ 전시기간 : 2019. 11. 21. ~ 2020. 4. 19
○ 전시장소 : 마곡문화관(서울식물원 내)
○ 전시내용 : <다시 태어나는 빛, 양천>, <박연폭포>, <인왕제색도-사계>, <겸재정선 고흐를 만나다>, <그곳에 가고 싶다>
○ 관람시간 : 화~일요일 10: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 관 람 료 : 무료 입장
○ 홈페이지 : botanicpark.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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