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물씬...종묘를 걷다

시민기자 염승화

발행일 2019.12.03. 09:34

수정일 2019.12.03. 17:06

조회 2,694

종묘를 대표하는 건축물 정전(국보227호)의 웅장한 모습

종묘를 대표하는 건축물 정묘 ⓒ염승화

조선국 500년 역사를 이끈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모신 왕실 사당. 조선 건국 직후 1395년(태조 4년) 법궁인 경복궁과 더불어 가장 먼저 지은 왕실 건축물 중 하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부 불에 타버리는 비운을 겪었고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중건. 1963년 1월 18일 사적 125호 등록. 1995년 12월 9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 내용들은 모두 소중한 문화유산인 종묘와 관련한 주요 사항들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종묘 재궁 앞이 만추의 풍광에 푹 잠겨 있다.

만추의 풍광에 잠긴 종묘 재궁 모습 ⓒ염승화

종묘는 평일에는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1시간 정도만 관람이 가능하다. 반면에 매주 토요일이나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등은 시간 제약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아무래도 넉넉하고 여유롭게 둘러보려면 후자가 나을 듯싶다. 지난 11월 2일과 11월 16일 두 번에 걸쳐 다녀왔다.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 등 신실을 비롯해 재궁, 향대청, 전사청, 악공청 등으로 구성된다. 다만 이번 방문에서는 주요 건축물들보다 덜 알려졌으나 기능이 특이한 공간과 부속 시설들을 더욱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물론 만추의 단풍색에 푹 빠진 아름다운 풍광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우연히 관람한 종묘추향대제 장면 중 하나. 제관들이 정전 신실로 입장하고 있다.

종묘추향대제에서 제관들이 정전 신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염승화

모처럼 종묘를 방문한 지난 11월 2일은 마침 종묘제례(종묘추향대제)가 열린 날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뜻밖의 횡재를 한 것처럼 귀한 장면을 바라본 기억이 생생하다. 이 제례는 1975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56호로 지정되었다. 2001년에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매년 5월 첫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토요일에 딱 두 차례 거행된다.

종묘 앞 광장에 세워져 있는 하마비. 본래 목재였으나 17세기 중기 조선 현종 때 지금의 돌비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명문이 새겨진 비석 ⓒ염승화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광장 앞 오른쪽 모퉁이에서 하마비를 마주하게 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이곳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리라는 명문(大小人員下馬碑)이 새겨진 비석이다. 이 비는 원래 1413년(태종 13년)에 목재로 세웠으나 훗날 1663년(현종 4년) 돌비로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공연히 경건해지게 하는 마력이 있는 듯 그 앞에서 잠시 옷깃을 세워본다.

종묘 앞 광장에는 참배를 온 임금이 물을 마신 우물이 있다. 훈정동 동명의 유래이기도 하다.

종묘를 참배하려 왔던 왕이 마시던 우물, 종묘 어정(御井) ⓒ염승화

하마비를 뒤로 하고 종묘 전교를 건너 조금 더 들어가니 우측 화단 한편 펜스 안으로 뚜껑이 덮인 우물이 보인다. 옛날에 종묘를 참배하러 오던 왕이 마신 우물, 종묘 어정(御井)이다. 예로부터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지역 동네 훈정동(薰井洞) 이름이 이 우물에서 유래된 것이다. 비록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지만 상징하는 의미는 영원히 지속되리라. 서울시유형문화재 제56호다.

경내에서 외대문을 향해 바라본 신로. 가운데는 신로, 왼편이 어로, 오른편이 세자로다.

경내에서 외대문을 향해 바라본 신로. 왼편이 어로, 오른편이 세자로다 ⓒ염승화

정전과 영년전 신로는 흙을 구워 만든 전돌로 신로를 조성해 놓았다.

정전과 영녕전 신문 앞에 흙을 구워 만든 전돌로 구성한 신로 ⓒ염승화

흔히 외대문으로 불리는 종묘 정문인 창엽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앞에 길게 세 갈래로 펼쳐지는 투박한 돌길이 있다. 왕릉의 제례 공간 홍살문~정자각 사이에 좌우로 곧게 뻗은 신로와 어로와 같은 참도를 말한다. 종묘 참도는 여느 왕릉 보다는 가운데 단이 높은 신로의 양옆으로 임금과 세자가 지나는 어로와 세자로가 붙어 있는 모양새다. 격을 높이고자 왕릉보다 더 넓게 깐 것으로 여겨진다. 신로는 공경의 의미로 되도록 밟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돌길은 재궁과 정전 및 영녕전 등으로 이어진다. 재궁 안이나 정전과 영녕전 신문 앞과 박석이 넓게 깔린 월대를 수직으로 가르는 신로에는 여느 돌길과 달리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을 깔아 놓은 점이 독특하다.

제례공간을 상징하는 종묘 안 연못(중연지). 향나무가 살고, 물고기는 살지 않는다고 한다.

종묘 안 연못 중연지 ⓒ염승화

외대문에서 참도를 따라 조금 걷자마자 왼쪽으로 조그맣고 둥근 섬이 있는 연못이 나타난다. 조금 더 지나 오른쪽 향대청 가는 길목에는 더 넓은 연못(중연지)이 있다. 이 연못들의 특징은 물고기가 살지 않고 소나무 대신 향나무가 식재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종묘가 엄숙한 제례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이리라.

정전의 양끝에는 ㄷ자 모양으로 행랑인 동서월랑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은 정전의 동월랑이다.

정전의 동월랑 ⓒ염승화

49분의 왕과 왕비를 모신 정전(국보 제 227호)에는 109m에 이르는 기다란 신실과 그 좌우로 큰 행랑인 월랑(月廊)이 설치되어 있다. 밀폐된 쪽 서월랑은 창고로 쓰이고 오른쪽 동월랑은 눈비가 올 때 제례 관계자들이 머무르는 트인 공간이다. 34분의 왕과 왕비를 모신 연녕전(보물 제 821호)은 정전이 좁아 1421년(세종 3년) 추가로 마련한 신실, 즉 별묘이다. 정전과 마찬가지로 양 끝에 각각 월랑이 마련돼 있다.

정전 신문 우측 월대 아래에는 역대 공신 96위의 위패를 모신 공신전이 설치되어 있다.

정전 앞에 세워진 공신전 ⓒ염승화

정전의 좌우 앞에 각각 세워져 있는 공신전과 칠사당도 특이한 공간이다. 공신전은 이름으로 짐작되듯이 나라를 빛낸 신하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유명한 청백리 황희 정승을 비롯해 모두 83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다만 ‘희대의 간신’으로 회자되는 인물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칠사당은 글자그대로 일곱 신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일곱 신은 사명, 사호, 사조, 중류 , 국문, 공려, 국행 등을 이른다. 토속신앙과 유교가 결합한 개성 있는 조선 왕실의 종교관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전 월대에 설치되어 있는 베수시설 돌 홈인 누조

누조는 빗물이 잘 빠지도록 만든 돌 홈으로 일종의 배수시설이다 ⓒ염승화

정전 월대의 누조(漏槽)도 유심히 볼만한 시설이나 간과하기 쉽다. 누조는 빗물이 잘 빠지도록 만든 돌 홈(누조석)으로 배수시설 중 하나다. 성루나 궁궐에서 마주할 수 있다. 끝에 거북머리처럼 나온 부분은 귀때라고 한다. 궁궐의 그것은 장식이 있으나 종묘의 그것은 아무런 장식 없이 밋밋하다. 하단의 빗물받이까지 하나로 어우러지도록 만든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곡선미가 돋보이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제례에 올릴 제수를 검사하던 낮은 돌축대 찬막단이 수복방과 전사청 앞에 있다.

제사에 올릴 음식을 관장하던 전사청 앞에는 사각형의 돌 축대가 쌓여 있다 ⓒ염승화

정전 동문 쪽 수복방이 있는 전사청 앞에도 특이한 기능을 가진 곳이 있다. 전사청은 제사에 올릴 음식을 관장하는 공간. 그 앞에는 찬막단(饌幕壇), 성생위(省牲位), 희생대(犧牲臺)로 불리는 사각형 모양의 평평한 돌 축대가 쌓여 있다. 찬막단은 제수를 검사하는 곳이고, 성생위는 소, 돼지 등 재물로 쓸 짐승을 취급하던 자리다. 희생대는 그 짐승들을 도살하는 곳이라고 한다.

언제 가더라도 한갓지고 아늑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종묘.  앞으로 종묘를 방문할 때는 주요 건축물 외에도 구석구석에 위치해 있는 특수한 기능을 가진 공간들도 꼼꼼히 살펴보는 여유를 가지면 좋을 듯싶다.   

●종묘 관람 안내

⊙교통 : 지하철 1, 3, 5호선 종로3가역 11번 출구 > 약 200m(도보 약 4분) 종묘 입구 8번 출구 > 약 260m(4~5분) 종묘 정문(외대문) 앞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종로 157

운영일시 : 매주 화요일 휴관, 월, 수~금, 일요일 : 문화재 안내 해설사 안내 따라 시간제 관람(1시간 간격)/ 1회 관람인원 최대 300명, 10월~2월 09:20, 10:20, 11:20, 12:20, 13:20, 14:20, 15:20, 16:20, 토요일, 매월 마지막 수요일, 명절 및 국경일 : 자유 관람

관람료 : 1,000원(25세~64세)

반려 동물, 음식물 금지

문의 : 문화재청 종묘관리소 02-765-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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