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세월의 맛에 반하다! 서울 속 노포 설렁탕집

서울사랑

발행일 2019.12.02. 14:20

수정일 2019.12.0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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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불 땐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

커다란 가마솥에 하루 종일 팔팔 끓여내는 구수한 소고기 국물에 넉넉한 인심 따라 고기 듬뿍 올려 내는 설렁탕은 서울시민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임에 틀림없다.

서울은 역사적으로 여러 번 계획도시로 성장했다. 조선의 개국으로 한양은 힘을 얻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 경성이 설계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수도가 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서울은 권력의 도시였으며, 일하는 자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고급 음식점과 술집이 번성했고, 동시에 낮은 곳에서 먹는 노동 음식도 발달했다. 한국인은 소고기를 좋아했고, 서울의 소비량이 으뜸이었다. 도축한 소의 부산물은 서울시민의 헛헛한 속을 덥히는 국물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설렁탕과 해장국이다. 설렁탕은 원래 소머리와 일부 내장, 뼈를 중심으로 끓인다. 나중에 소머리는 ‘소머리탕’으로 독립(?)했다. 해장국은 내장과 선지, 뼈를 쓴다. 곰탕은 역시 살코기와 내장의 음식이다.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쓰는 부위가 달라 독자적인 음식으로 대를 물리고 있다.

설렁탕 하면 서울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설렁탕 안 파는 음식점은 껄렁껄렁한 음식점이다 .-동아일보 1926년 8월 11일 자

설렁탕에는 늘 이 신문 기사가 인용된다. 근대적인 언론 산업이 성장하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서울시민의 삶을 다루는 데 먹는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당시에 쓰인 문학작품에도 설렁탕이 많이 등장한다. 현진건의 >빈처<에도 설렁탕 한 그릇이 한 노동자의 슬픔을 상징하는 물상으로 쓰인다. 설렁탕은 소고기의 부산물이니 맛있기 마련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감칠맛이 난다. 밥을 토렴(여러 번 더운 국에 찬밥을 헹궈 말아내는 방법)하니 탄수화물도 충족된다.

그런데 설렁탕은 양반들이 함부로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먹고는 싶은데 출입하는 건 남 보기에 부끄러운 짓으로 치부됐다. 서울의 역사를 증언하는 몇 가지 책에 설렁탕 배달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북촌의 서울 사람들은 설렁탕 배달을 요긴하게 이용했다. 손님이 오면 하인을시켜 설렁탕을 받아다가 밥을 말아 냈다.무엇보다 맛있는 음식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설렁탕에 빠져(?)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인기 월간 잡지 《별건곤(別乾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집에 갈 노잣돈이나 자기 마누라 치마 사줄 돈이라도 설렁탕을 사 먹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것이다. 걸상에 걸터 앉으면 일분이 다 못 되어 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시 앞에 놓인다.”

세월의 깊이가 더해진 설렁탕 노포

서울 출신으로 언론인을 지낸 고 홍승면 선생의 책 '백미백상'에 이런 구절이 있다.

“6·25 때까지만 해도 남대문 밖에서는 서울역 앞 동자동의 ‘잼배옥’이 손꼽혔다. ‘잼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언제고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6·25가 일어나 잿더미가 되었는지 온데간데없이 되고 말았다….”

잼배옥은 현재도 서소문에서 영업하고 있는 명물 집이다. 1933년 영업을 시작했다. 이 집 주인은 7~8년 전쯤 필자에게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옛날에 서울엔 설렁탕 잘하는 집이 있었지. 염천교 앞의 복순옥, 시내의 대림옥, 세운상가 앞의 감미옥 같은 집들이 유명했지.”

과거 서울에는 정말 설렁탕집이 많았다. 구한말 이후 수표교, 광교 등지에 명물 집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계속 늘어나서 1930년대에는 시내에만 100여 곳이 넘는 설렁탕집이 있었다. 지금 대를 잇는 집은 거의 다 사라졌고, 유일하게 이문(종로 어귀의 옛 지명)에 100년 넘은 집이 하나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하나둘 사라져버린 것이다.

설렁탕이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70~1980년대의 경제성장기였다.

설렁탕이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70~1980년대의 경제성장기였다.

잼배옥의 오래된 주방 풍경

잼배옥의 오래된 주방 풍경

현대의 설렁탕은 뼈를 기본으로 양지나 사태 같은 살코기만 넣어주는 게 일반화되었다. 수입 고기가 들어와 가격이 낮아지면서 생겨난 일이지만, 현대의 서울 사람들은 대체로 내장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다. 주방에서 손질하고 다루기에도 내장은 번거롭다. 원래 설렁탕에는 반드시 두 가지 내장이 들어가야 진짜라고들 했다. 하나는 우설이고, 하나는 지라(비장)다. 혀와 지라가 들어가는 설렁탕은 옛 서울 스타일이 남아 있다고 봐도 된다. 내장 가격이 너무 올라 안 쓰기도 한다.

설렁탕이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70~1980년대의 경제성장기였다. 설렁탕은 원래 토렴해서 밥을 내주는 게 기본이다. 온도가 적당해 빨리 먹고 일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일종의 패스트푸드였다. 요즘처럼 메뉴가 많던 시절이 아니었다. 설렁탕, 해장국, 짜장면, 비빔밥,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정도가 대중식사였다. 설렁탕은 그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서울 음식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설렁탕

설렁탕은 그 기원이 모호하다. 설렁탕도 옛 모습을 잘 지켜가는 전통 음식이면서 동시에 근현대사의 영향을 받아 변화해왔다. 설렁탕이란 이름의 유래도 설이 많다. 몽골어로 고기 삶은 국물을 뜻하는 ‘술루’를 설렁탕이란 용어의 어원으로 보는 견해는 결국 설렁탕의 역사성을 설명한다. 그만큼 오래된 음식이라는 뜻이다. 설렁탕에 깃든 수많은 역사성 가운데에는 의미 깊은 것이 많다. 하나는 신분제도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소를 잡는 백정은 최하층 계급이었다. 그들 스스로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대규모의 결사 운동(형평사)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의 권력자들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 소고기였고, 그 소고기를 얻기 위해 소를 잡는 노역을 해온 사람들이 백정이었다. 이들이 소 잡아준 대가로 받은 부산물을 끓여 팔면서(또는 부산물을 누군가에게 제공하면서) 시작된 게 설렁탕집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어쨌든 이들이 제공하는 소 부산물을 끓여 뚝배기에 담아냈다는 게 설렁탕이 갖는 역사성의 상징이다. 뚝배기는 백정처럼 천대받던 막그릇 제조 기술자가 만드는 것이었다. 서울의 또 다른 음식인 장국이 사기나 백자 그릇에 담겨 팔린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설렁탕은 대체로 파를 얹어 먹는다. 이것은 임오군란 이후 중국인 채소 재배 농민이 유입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과거 설렁탕은 역축(농사를 짓거나 수레에 짐을 실어 나르는 사역에 이용하는 소, 말 따위의 가축)을 잡아 끓이니 누린내가 심했고, 이때 향이 강한 대파는 유용한 허브였다. 한중 관계에 의해 설렁탕 맛이 바뀐 셈이다. 또 설렁탕에 소면(국수)이 들어가는 것도 역사적 내력이 있다. 이건 한미관계다. 쌀 소비를 억제하고 분식을 장려했던 박정희 정권은 의무적으로 설렁탕에 소면을 일정 분량 넣어 팔도록 행정 조치를 했다. 그 흔적이 남아 지금도 설렁탕에 소면을 담아내는 집이 많다. 오랜 조선의 전통이 아니라 불과 몇십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 소면은 해방과 한국전쟁 시기에 들어온 미국 행정 권력의 도움으로 생겨난 것이기도 하다. 바로 밀가루 원조와 관련된 소면의 대유행과 선이 닿아 있는 것이다.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로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수많은 외래 음식과 전국 음식의 격전장에서도 자기 모습을 지키면서.

박찬일 : 1966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의 책을 쓰며 ‘글 잘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마음까지 채우는 보양식 한 그릇, 서울 설렁탕 연대기 #TMI

이문설농탕

이문설농탕

이문설농탕, 1902  

4대째 음식업을 이어오고 있는 설렁탕 맛집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자 서울특별시 허가 제1호로 공식 등록된 식당이다. 도가니와 사골을 16~17시간 무쇠솥에 끓여 담백하고 고소하며 깔끔한 맛을 내는 맑고 흰 국물에 듬뿍 담아내는 고기가 특징이다.

○ 가격 : 설렁탕 1만원, 수육 3만3000원
○ 주소 : 종로구 우정국로 38-13
○ 시간 : 오전 8시~오후 9시(준비 시간 오후 3시~5시, 일요일 오후 8시까지, 명절 휴무)
○ 문의 : 02-733-7866  

잼배옥

잼배옥

잼배옥, 1933

서울 설렁탕이 처음 규모를 갖춘 곳은 남대문밖 잠배(현재의 중구 봉래동·순화동·의주로) 일대, 칠패시장 주변이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잼배골(잠바위골)에서 유명했던 ‘잠배설렁탕’은 창업 이후 몇 번의 이사를 거쳐 1974년부터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양지와 사골을 각각 따로 끓여내고 ‘씨 육수’를 그대로 보존해 새로운 탕에 최적의 배합으로 섞어내는 잼배옥의 설렁탕은 곁들여 나오는 파김치(혹은 볶음김치)와 함께 한 입 입에 넣으면 보양식이 따로 없다.

○ 가격 : 설렁탕 9000원, 수육(소) 3만8000원
○ 주소 : 중구 세종대로9길 68-9
○ 시간 : 오전 9시~오후 10시(국경일 휴무)
○ 문의 : 02-755-8106

마포옥

마포옥

마포옥, 1949  

사골과 양지머리, 차돌박이를 넣고 온도와 시간을 달리해 번갈아 우려내는 맑은 진국 타입. 한우를 사용하며, 두툼하게 자른 고기를 푸짐하게 올려 낸다. 부드럽게 씹히는 고소한 양지머리와 소면, 밥을 한 번에 말아 내며, 매일 새로 담는 겉절이가 신의 한 수다.

○ 가격 : 양지설렁탕 1만4000원, 차돌수육 5만5000원
○ 주소 : 마포구 토정로 312
○ 시간 : 오전 7시~오후 10시
○ 문의 : 02-716-6661

중림장

중림장

중림장, 1972  

양지, 도가니, 소꼬리를 모두 함께 넣어 끓여내는 중림장만의 노하우는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단골들을 확보하며 ‘중림장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다. 청파동 골목 안쪽에 위치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세월이 멈춘 듯한 분위기와 꼬리꼬리한 육수의 풍미가 식욕을 자극한다. 기본 설렁탕에는 밥과 사리가 모두 토렴되어 들어가 있다.

○ 가격 : 설렁탕 8000원, 모둠 수육 3만5000원
○ 주소 : 중구 청파로 459-1
○ 시간 : 오전 8시~오후 10시 (주말·공휴일 오후 9시까지, 연중무휴)
○ 문의 : 02-392-7743

외고집설렁탕

외고집설렁탕

외고집설렁탕, 2005  

평범한 고기 국물에 ‘한우 1++’라는 등급이 붙는 순간 설렁탕은 그 자체로 요리가 된다. 2009~2019년 ‘블루리본 서베이’ 11년 연속 추천 맛집, 2017~2019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3년 연속 선정이라는 타이틀답게 소고기와 뼈, 쌀, 김치와 양념 일체를 모두 질 좋은 국내산 재료로 만들고 있다. 매일 새벽 직접 김치를 담그고, 설렁탕 국물을 준비하는 오너 셰프 강병선 씨의 외고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뜨끈한 한 그릇을 놓치지 말자.

○ 가격 : 설렁탕 1만1000원, 수육(중) 4만8000원
○ 주소 : 강남구 삼성로 555 알앤텍빌딩 1층
○ 시간 : 오전 11시~오후 9시(명절과 일요일 휴무)
○ 문의 : 02-567-5225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대제 #선농단역사문화관

불의 신 신농씨와 곡식의 신 후직씨를 모시는 서울 선농단은 임금이 선농제를 올리고 몸소 쟁기를 잡고 경작하는 농사의 모범을 보이던 곳이다. 고른 잔디밭 위에 화강석 제단이 펼쳐진 선농단 아래에는 농업의 역사와 선농단의 유래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선농단역사문화관이 자리해 있다. 선농제를 올린 후 제물로 쓰인 소고기를 넣어 탕을 끓이고, 제사 행사에 참여한 신하와 백성들에게 나눠주던 것에서 유래한 설렁탕은 선농단에서 끓인 탕이라 하여 ‘선농탕’ 이라 불리던 것이 와전된 말이다. 매년 4월 곡우를 전후해 선농단 역사문화관에서는 선농제를 재현하는 선농대제가 열리며, 이날 설렁탕을 함께 나눠 먹는 행사에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 주소 : 동대문구 무학로44길 38
○ 문의 : 070-7714-6780

글 박찬일 취재 김시웅 사진 장성용
출처 서울사랑 (☞ 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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