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유수지의 평화의 소녀상, 그리고 황금자 할머니

시민기자 박분

Visit670 Date2019.11.28 11:58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인 평화의 소녀상이 강서구 마곡유수지에 세워졌다. 들불처럼 퍼져 나가던 소녀상 건립운동이 마침내 강서구에 결실을 맺게 한 것이다.

강서구 마곡유수지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박분 

강서구 마곡유수지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박분

최근 제막식을 마친 강서 평화의 소녀상은 전쟁의 아픔과 강서구에 거주했던 12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것으로 지역 내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힘을 합쳐 마련했다. 사회 각계 시민사회단체는 그동안 강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년 10개월에 걸쳐 평화의 소녀상 건립성금을 모금했다.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세워진 고(故) 황금자 할머니 상 ⓒ박분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세워진 고(故) 황금자 할머니 상 ⓒ박분

소녀상 옆에는 강서구에서 살다 지난 2014년에 별세한 고(故) 황금자 할머니 상도 함께 세워졌다. ‘황금자 장학금’을 통해 지역 사회에 장학기금을 조성했던 황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특별 제작했다

일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 할머니는 일제에 자신의 삶을 송두리 채 빼앗기고 의지할 피붙이도 없이 평생 아껴 모은 생활안정지원금과 기초생활수급비 등 전 재산을 아낌없이 불우한 학생들을 위한 학자금으로 기탁했다. ‘황금자 장학금’을 통해 세상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되신 황 할머니가 함께 있어 강서 평화의 소녀상은 그 의미를 더한다.

강서 평화의 소녀상 옆으로 건립에 참여한 시민과 단체 이름을 새긴 동판이 보인다. 오른편에는 강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의 비문과 함께 소녀상의 의미를 새겼다.

마곡유수지 인근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진 궁산 땅굴역사전시관이 있으니 강서 평화의 소녀상과 연계해 찾아가 보면 좋다.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재무부장관을 역임한 김도연 성생 추모 유묵비 ⓒ박분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재무부장관을 역임한 김도연 성생 추모 유묵비 ⓒ박분

궁산 땅굴역사전시관으로 가기 전, 궁산 아래 길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공원에도 들러본다. 인적이 뜸한 이곳에는 사귀정직(事貴正直)이라고 쓰인 유묵비가 세워져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재무부장관을 역임한 김도연 선생을 추모하는 유묵비이다. 유묵비(遺墨碑)는 고인이 생전에 중히 여긴 말을 새긴 비석을 말하며 김도연 선생의 유묵비는 “일에는 정직이 귀중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양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1919년 2.8독립선언의 주역 중 한사람으로 조선어학회에 몸담으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창씨개명에 응하지 않아 ‘불령성인’으로 낙인이 찍혀 일제의 감시대상이 됐고 1942년에 체포돼 광복이 되기까지 옥고를 치른 역사적 인물이다.

궁산 땅굴역사전시관 입구 ⓒ박분 

궁산 땅굴역사전시관 입구 ⓒ박분

궁산 땅굴역사전시관은 궁산근린공원 입구에 있다. 외진 산골짜기가 아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길가라 이곳에 땅굴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이곳의 땅굴은 군수물자를 저장하거나 김포 비행장을 감시하고, 공습 때에는 부대 본부로 사용하기 위한 곳으로 알려졌다. 방공호로 쓰이는 단순한 용도의 땅굴이 아니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궁산 땅굴전시관 내부 ⓒ박분 

궁산 땅굴전시관 내부 ⓒ박분

전시관에는 일제가 실제 파놓은 땅굴 외에도 일제강점기 역사와 태평양 전쟁, 김포비행장 등 땅굴을 굴착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일제의 침략야욕이 극에 달하던 1930년대 후반, 중국에 대한 침략을 준비하던 일본이 지금의 김포공항 자리에 비행장을 세우는 사진도 보인다.

전시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궁산 땅굴 모습 ⓒ박분 

전시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궁산 땅굴 모습 ⓒ박분

땅굴은 전시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높이 2.7m, 폭 2.2m, 길이 68m의 땅굴모습은 방금 막 파 놓은 듯 생생하다. 낙석 등의 안전문제로 유리문을 통해서만 궁산 땅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장치했지만 울퉁불퉁한 바위를 뚫고 통로를 만들어낸 지하 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교하고 깊게 이어진다.

전시관 해설사가 궁산 땅굴에 대한 설명 중인 모습 ⓒ박분 

전시관 해설사가 궁산 땅굴에 대한 설명 중인 모습 ⓒ박분

전시관에는 해설사가 있어 상세한 설명을 들어볼 수 있다. 전시관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궁산 땅굴은“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군사용으로 굴착하다 광복이 되면서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1940년대는 일제가 대동아전쟁이라고 말하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그 시기이다.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연달아 벌이면서 조선을 전략적 기지의 발판으로 삼았다. 특히 땅굴이 자리한 궁산은 한강과 접해 있고 강 건너 행주산성이 가까워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전쟁이 끝나고 광복이 되면서 일제의 이런 흔적들은 자취도 없이 많이 사라졌다. 궁산 땅굴은 지난 2008년, 궁산 일대를 정비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 하마터면 세월과 함께 영영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 양천향교 모습 ⓒ박분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 양천향교 모습 ⓒ박분

땅굴역사전시관이 자리한 궁산 일대에는 일제강점기의 그런 어두운 기억들을 씻어내려는 듯 아름다운 역사유적과 예술의 향이 짙은 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도 그 중 하나다. 양천향교는 조선 태종 12년(1411)에 창건돼 지방 향리의 자제 교육과 옛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행사를 함께 담당한 교육기관이다. 서당이 민간이 세운 사립학교였다면 향교는 지금의 국립학교에 해당된다. 자원봉사자들이 상주해 수시로 해설을 곁들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양천향교 돌담길을 돌아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궁산과 이어진다.

  궁산 정상부에 위치한 소악루 ⓒ박분 

궁산 정상부에 위치한 소악루 ⓒ박분

궁산은 해발 74m의 작은 산이지만 한강변과 접해 있어 예로부터 최고 절경의 하나로 손꼽혔다. 궁산 정상부에 위치한 소악루에 이르면 일대의 풍경은 더욱 수려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조선의 시인묵객들은 궁산 소악루에 올라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했다.

겸재 정선이 바라보았다는 한강 전망 자리 ⓒ박분 

겸재 정선이 바라보았다는 한강 전망 자리 ⓒ박분

소악루는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를 본 떠 지은 정자로 ‘작은 악양루’라는 의미로 소악루(小岳樓)라 이름 붙였다. 1740년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궁산 앞 고을인 양천현령으로 부임한 5년 동안 매일같이 올라와 눈앞에 펼쳐진 한강변을 화폭에 담았던 곳이다. 소악루에는 안현석봉, 소악후월 등 한강의 진경이 담긴 겸재 정선의 그림도 만나볼 수 있다.

 겸재 정선 미술관 외관 ⓒ박분 

겸재 정선 미술관 외관 ⓒ박분

겸재 정선의 예술 혼이 깃든 소악루에서 내려와 궁산 자락에 세워진 겸재정선미술관으로 향한다.

겸재정선미술관은 2009년 옛 양천현아가 있던 자리에 개관했다. ‘진경산수화’ 라는 우리 고유의 회화양식을 창안한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을 기리는 미술관에서는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2019겸재 내일의 작가’ 수상자들의 기획전시회를 열고 있다.

겸재정선미술관 내부 전시실 ⓒ박분

겸재정선미술관 내부 전시실 ⓒ박분

‘내일의 작가’는 겸재 정선의 화풍을 계승하고 미술계를 이끌어 갈 유망한 젊은 작가를 발굴 지원하기 위해 2010년부터 진행한 공모전이다. 특히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이번 전시는 어느 때보다도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실험정신이 강한 내일의 작가 수상자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이다. 다음달 14일까지 이어지며 미술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술의 고장임을 말해주는 듯한 양천초등학교 타일벽화 ⓒ박분 

예술의 고장임을 말해주는 듯한 양천초등학교 타일벽화 ⓒ박분

겸재정선미술관 가까이에 자리한 양천초등학교 담장에 조성한 타일벽화도 눈을 즐겁게 한다. 1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양천초등학교에서는 최근에 도로에 접한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아이들, 학부모, 교직원이 그린 세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담장을 따라 50여 미터까지 이어진 타일 벽화에는 동심어린 그림과 함께 겸재 정선의 산수화도 드문드문 만날 수 있어 이곳이 향 짙은 예술의 고장임을 확인시킨다.

'하마비터' 표석과 병풍 모양 조형물 ⓒ박분 

‘하마비터’ 표석과 병풍 모양 조형물 ⓒ박분

초등학교 앞에 세워진 ‘하마비터’ 표석 또한 재미난 볼거리다. 표석에는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이곳은 옛날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던 자리로 하마비는 태종 13년(1413년)에 ‘종묘나 대궐 앞에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공경의 뜻으로 세웠던 비석을 말한다. 하마비는 종묘와 궁궐 앞뿐만 유학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향교 앞에서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마비터에는 하마비 이야기를 담은 병풍 모양의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11월의 찬바람 속에 서 있는 평화의 소녀상에서 학교 담장벽화까지,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숨도 차오르고 동시에 뿌듯함도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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