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나들이로 딱! 산책하기 더없이 좋은 '덕수궁'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9.11.08. 12:14

수정일 2019.11.0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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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던 광명문 ⓒ박분

서울의 5대 궁궐 중 하나인 덕수궁은 동서양의 건축이 한 데 어우러져 있어 전통과 근대를 같이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때문에 언제 방문해도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지만 단풍 곱게 물든 가을의 덕수궁을 놓칠 수 없어 발걸음을 옮겼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을 지나 광명문 앞에 다다르니 순간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덕수궁 초입에 자리한 광명문은 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덕수궁이 훼손되면서 광명문은 덕수궁의 서남쪽으로 옮겨졌고, 지난해 비로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80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광명문 앞에서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덕수궁관리소가 공동 주최하는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기억된 미래’전이 진행 중이다. 고종황제 서거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근대의 태동을 알렸던 대한제국 시기 미래 도시를 향한 꿈을 건축가들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전시이다. 광명문 중앙 출입구에 설치된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문이 계속 열리고, 끊임없이 화면이 변화하는 '밝은 빛들의 문' 작품은 ‘기억된 미래’ 전시작품 중 하나다.

중화전 앞마당에 설치된 작품 '대한연향' ⓒ박분

중화전 앞마당에 설치된 작품 '대한연향' ⓒ박분

중화문 너머 중화전 앞마당도 설치작품으로 환하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흔들거리는 전시물의 이름은 ‘대한연향’이다. 1902년 중화전 앞마당에서 열렸던 대한제국 마지막 전통연회의 기억을 담아 연회에 사용되었던 가리개인 만인산, 천인산을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한다. 반사필름들이 서로 부딪치며 오색으로 반짝이는 황홀한 풍경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궁궐에서 열리기 때문인지 어렵게 느껴지던 현대미술에 대한 접근이 즐겁기만 하다. 전시작품은 석조전과 함녕전에도 설치돼 있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기억된 미래’전은 내년 4월 5일까지 계속되며 오후 1시 30분과 2시 30분, 두 차례 광명문 앞에서 전시해설이 진행된다.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으로 드나드는 정문인 중화문 ⓒ박분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으로 드나드는 정문인 중화문 ⓒ박분

중화문은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으로 드나드는 정문이다. 중화문 주위에 행각과 담이 없어 휑한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중화문 너머로 보이는 정전인 중화전 또한 행각이 없는 왜소한 모습이다. 원래 중화전 영역 주위에는 장방형으로 행랑이 둘러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몇 칸만 남아 있다. 중화전과 중화문은 1904년 덕수궁 화재로 소실된 후 구한말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와 일제 수난의 역사 속에 축소해 세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화전 앞 조정에 나란히 배열된 품계석들 ⓒ박분

중화전 앞 조정에 나란히 배열된 품계석들 ⓒ박분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이뤄졌던 곳이다. 중화전 앞에 넓게 펼쳐진 조정에 정1품, 종2품 등 품계석이 즐비하다. 납작한 박석이 깔린 조정(朝廷)은 정전의 마당을 이른다. 조정의 행사 때 품계석 따라 도열했을 문무백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덕수궁의 모태가 된 유서 깊은 전각들 ⓒ박분

덕수궁의 모태가 된 유서 깊은 전각들 ⓒ박분

중화전 뒤편으로 단정하게 배치된 건물들은 석어당과 즉조당, 준명당이다. 이 세 채의 건물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덕수궁의 모태가 되는 유서 깊은 전각들이다.

덕수궁 유일의 목조2층 전각, 석어당 ⓒ박분

덕수궁 유일의 목조2층 전각, 석어당 ⓒ박분

무채색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은 누마루가 보이는 석어당이다. 단청을 입히지 않아 더욱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 건물은 덕수궁에서 유일한 목조2층 전각이다. 석어당은 임진왜란으로 피난 갔던 선조가 한양에 돌아와 임시로 거처했던 곳이며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가 유폐되어 생활한 곳이자, 인조반정 때 광해군이 옥새를 넘겨주던 역사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소박해 보이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석어당 옆으로 살구나무가 가을 햇살에 눈부시다.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준명당과 즉조당 ⓒ박분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준명당과 즉조당 ⓒ박분

석어당 옆에 나란히 자리한 두 채의 건물은 준명당과 즉조당이다. 두 건물은 복도로 연결돼 있다. 즉조당은 선조 때부터 있던 건물로 인조와 광해군이 즉위한 곳으로 알려졌다. 1897년 고종이 덕수궁으로 옮겨온 뒤 한동안 정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준명당은 고종의 편전으로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딸인 덕혜옹주를 위한 유치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니 딸을 아끼는 아비의 마음이 읽혀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 ⓒ박분

한국 최초의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 ⓒ박분

덕수궁은 다른 궁궐과 달리 우리의 전통 양식으로 지은 건물 외에 서양식 건물을 품고 있다는 큰 특징이 있다. 서양의 건축 양식을 따른 건물로 석조전과 정관헌이 대표적이다.

궁궐 중간 연못 옆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다. 덕수궁 서쪽에 우뚝 선 석조전은 덕수궁을 상징하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둥근 기둥이 시원스럽게 늘어선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로 모습이 화려하고 웅장하다. 1900년에 착공하여 11년 만에 준공한 이 서양식 건물은 짧은 건물의 역사에 비해 고종 황제가 고관대작과 외국의 사신 등을 접견하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석조전은 고종이 승하한 후 덕수궁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미술관 등으로 사용되다 2014년 뒤늦게 복원했다. 현재 석조전 동관은 대한제국역사관,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개관해 사용하고 있다.

고종의 휴게공간이었던 서양식 건축물, 정관헌 ⓒ박분

고종의 휴게공간이었던 서양식 건축물, 정관헌 ⓒ박분

함령전 뒤편에 자리한 정관헌(靜觀軒) 또한 서양식 건축물로 독특한 모습이다.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고종의 휴식공간이었다고 전해진다. 녹색으로 채색된 지붕과 연녹색의 테라스 난간이 조화를 이뤄 자못 화려한 분위기를 풍긴다. 서양의 문물과 함께 들어온 커피를 즐겼던 고종은 호젓한 이곳에서 종종 휴식을 취했으리라. 서구 열강들의 이권다툼이 치열했던 혼돈의 시기에 깊은 생각에 잠겼을 고종의 모습을 그려본다.

궁궐 수문장 교대식을 재현하는 취타대의 행렬 모습 ⓒ박분

궁궐 수문장 교대식을 재현하는 취타대의 행렬 모습 ⓒ박분

중화문 앞을 걷다 산책로에서 둥둥 울리는 북소리를 듣게 됐다. 궁궐 수문장 교대식을 재현하러 대한문으로 향하던 취타대 행렬이다. 깃발을 받쳐 든 화려한 복장의 취타대 행렬을 따라 함께 걸음을 옮기는 관람객도 보인다. 화려한 궁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수문장교대식은 매일 3회 (11:00, 14:00, 15:30) 진행된다. 덕수궁은 경복궁처럼 웅장한 규모는 아니지만 산뜻하고 개성적인 건물들이 산재해 있어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전통과 근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현대미술전도 열고 있어 즐거움이 배가된다. 깊어가는 가을, 덕수궁을 거닐며 역사와 문화의 향취를 새겨보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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