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길로 이어지는 모자(母子) 왕릉, 태릉과 강릉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9.10.21. 08:31

수정일 2019.10.21. 09:30

조회 1,766

홀로 잠들어 있는 태릉의 주인 문정왕후 ⓒ김종성


총 42기(북한에 2기)의 조선 왕릉은 519년 동안 27대에 걸쳐 조선을 통치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들이 거의 훼손 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덕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대의 후손들에겐 철마다 산책하기 좋은 도심 숲 공원이 되고 있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조선왕릉 가운데 모자(母子)의 무덤이 한 공간에 있는 왕릉도 있다. 문정왕후의 태릉(노원구 화랑로 681)과 아들 명종 부부가 잠들어 있는 강릉이 그곳이다. 하지만 1966년 태릉선수촌이 들어서면서 두 왕릉은 분리되었다. 태릉을 관람한 시민들은 매표소를 나와서 도로가를 따라 20분(약 1km) 정도 걸어야 강릉을 만날 수 있다. 

다행히 매년 봄가을에는 분단된 모자간의 두 왕릉이 1.8km의 숲길로 이어진다. 이맘땐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다. 왕릉 해설사와 함께 산책하며 역사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과 같이 이용하면 더욱 좋겠다. 

왕릉 해설 프로그램 (토·일요일) : 오전 10시, 오후 2시(태릉 홍살문 앞)


신림(神林)이라 불릴 정도로 오래되고 울창한 태릉 소나무 ⓒ김종성

태릉은 경춘선 숲길공원에 있는 화랑대역에서 오솔길 같은 기차 길옆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이정표가 나와 찾아가기도 좋다. 태릉은 왕비가 홀로 묻혀있는 단릉(單陵)이라 믿기 힘들 만큼 웅장한 능으로, 당시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권세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한다. 조선시대 왕비 중에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고 한다. 

무덤을 지키고 서있는 문인석과 무인석은 키가 3미터를 넘으며 머리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겨 보는 이를 압도한다. 조선 왕릉에 있는 석물 가운데 가장 크다. 왕후의 권세는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쳐 왕릉의 이름을 딴 지하철 태릉입구역, 태릉선수촌, 태릉고등학교, 태릉골프장 등도 있다. 경춘선 숲길공원에 있는 간이역 화랑대역의 원래 이름도 태릉역이었다가 육군사관학교(화랑대)가 역 주변에 들어서면서 화랑대역으로 바뀌었다.

태릉안에 있는 조선 왕릉 전시관 ⓒ김종성

조선 왕릉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문무인석 ⓒ김종성

태릉(泰陵), 이름부터 큰 능이다. 이름만 보면 위대한 왕의 능이라 여길만하다. 조선 왕릉의 이름은 고인의 성정이나 사연을 알 수 있기도 하다. 곧을 정(貞)자를 쓰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부인 신덕왕후의 정릉, 아름답다, 훌륭하다는 의미가 있는 경종의 의(懿)릉, 비명에 간 어린 남편 단종을 생각하며 여생을 살았을 정순왕후의 무덤은 사릉(思陵)이다.

태릉엔 다른 왕릉에선 볼 수 없었던 조선왕릉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왕의 국장절차, 왕릉의 역사와 조성과정이 동영상과 함께 잘 전시되어 있다. 더불어 해설사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어 유익했다. 전시물 가운데 왕릉 속에 있던 부장품이 인상적이었다.

왕릉 안 부장품은 귀하고 화려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 왕릉엔 단출하고 소박한 생활용품들이 들어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추구하는 성리학의 세계관과 일치한다. 성리학은 무엇보다도 검소하고 질박한 것을 생활의 가르침으로 추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 왕릉의 도굴을 예방하기도 했다.

태릉과 강릉 사이에 나있는 청명한 숲길 ⓒ김종성

산새들과 야생동물이 뛰노는 태릉~강릉 사이 숲길 ⓒ김종성

강릉은 태릉에서 불암산 산기슭을 따라 동쪽으로 약 1.8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숲길이라 그런지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송진 향기가 짙은 숲길은 작은 야생동물들이 다른 가지로 건너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태릉의 숲이 역사가 깊고 울창해서 신림(神林)으로 불리는 건 이 숲길 덕택이지 싶다. 도토리를 입에 문 다람쥐와 청설모들이 나무 위로 뛰어 다니고, 멧돼지 출몰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산새소리를 들으며 호젓한 숲길을 걷다가 멀리서 풀썩거리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정말 멧돼지가 숲속 산비탈을 지나가고 있었다. 탄탄한 몸매, 산비탈에서도 재빠른 동작, 단단해 보이는 긴 주둥이… 언뜻 봐도 강한 생존력이 느껴졌다. 어쩌다 유해동물이 되버린 녀석의 잔뜩 경계어린 눈매 때문인지 두려움보다 측은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왕릉 정자각 지붕을 장식한 재미있는 잡상 ⓒ김종성

충직한 신하처럼 왕릉 곁에 서있는 소나무들 ⓒ김종성

강릉(康陵)에 도착하니 태릉에 비해 능의 규모가 현저히 작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조선 13대 임금 명종(1534-1567)은 문정왕후가 65세에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겨우 34세의 나이로 어머니의 뒤를 따라갔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다가 친정(직접 정치를 함)을 한 후에도 국정은 문정왕후와 윤원형 등 외척세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유명한 도적 임꺽정이 출현하는 때가 이 시기다.

태릉과 강릉은 문무인석, 석마 등 웅장한 석물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왕릉 주변에 서있는 소나무들 모습이다. 마치 충직한 신하들처럼 능을 향해 일제히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왕릉 입구 홍살문에도 노거수 소나무가 왕릉을 향해 절을 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신기한 현상을 ‘충절의 소나무’로 왕릉 홍보를 하자며 왕릉 관리인에게 제안했다.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는 웃으시며 절하는 소나무의 숨겨진 진실을 알려줬다. 소나무는 햇볕을 많이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양수(陽樹)나무라고 한다. 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양지를 찾기 때문이란다.

▣ 태릉, 강릉

- 위치 :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681

- 문의 : 02-948-5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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