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 환히 밝히는 이 꽃집 ‘오래가게~’

시민기자 강사랑

Visit637 Date2019.10.18 15:40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가는 영등포 지하상가. 옷, 신발, 가방 등 없는 것이 없는 거대한 만물점 속을 걷노라면 어느새 피로가 몰려온다. 자고 나면 생겨나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는 상점들을 지나쳐 출입구 쪽으로 향한 길에 유독 시선을 잡아 끄는 곳이 있다. 꽃이다. 가을 제철을 맞은 알록달록한 소국(小菊)들이 불을 켠 듯 환하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지하쇼핑센터에 위치 한 미도파 꽃집 ⓒ강사랑

언제부터인가 꽃을 보면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자세히 들여다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며 너스레를 떨었더니 꽃집 안사장이 한마디 거든다. “젊었을 때는 내가 꽃이니까 꽃을 봐도 시큰둥하지. 나이가 더 들어봐요. 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니까.” 사십 년 가까이 꽃과 함께 세월을 보내온 탓일까. 인상이 꽃처럼 곱디곱다. 가판대에 놓여있는 꽃다발들 또한 예쁘기 그지없다.


각각의 꽃에 담긴 꽃말을 적어놓았다 ⓒ강사랑

한눈에 보아도 꽃들의 상태가 좋고 신선하다. 꽃집 사장이 매일 새벽 남대문 시장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이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건강도 챙길 겸 좋은 운동을 하는 거지. 일이라고 생각하면 고되지 않아요?” 가게 안을 쭉 둘러보니 이러한 팻말이 걸려있다. <저희 미도파 꽃집에서는 냉장고 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영등포 지하상가 일대에서 미도파 꽃집이 유명한 이유를 조금쯤 짐작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남대문 시장에서 공수해 오는 싱싱한 꽃들 ⓒ강사랑

“요즘에는 제철 소국이 잘 나가요. 장미야 사시사철 인기가 있으니 늘 신경 써서 팔고 있지. 아가씨는 무슨 꽃이 제일 좋아요?” 사람마다 꽃에 대한 취향이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봄에는 튤립,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국화… 계절별로 선호하는 꽃이 다를 수도 있다. 요즘에는 새로운 품종들이 속속 개발되는만큼 대중들의 취향도 고급화, 세분화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꽃에도 유행이 있고 트렌드가 있다는 것. 요즘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꽃은 미니 꽃다발용 해바라기라고 한다.


요즘 핫한 해바라기. ‘선리치’ 뿐 아니라 ‘프로방스’, ‘고흐’ 등 다양한 품종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강사랑

미도파 꽃집의 대표(바깥사장)를 인터뷰하기로 한 시각은 오후 4시. 기다리는 동안 다시 부인인 안사장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곳 영등포 지하상가에서 40년 동안 쭉 영업하신 거예요?” “아니지.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 제기동에 미도파 백화점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처음 꽃 사업을 시작했어요. 한 20년쯤 크게 장사하다가 IMF가 터지면서 백화점이 부도가 났어. 그 이후에 여기 영등포 지하상가에 자리를 잡은 거예요.”


꽃다발을 만드는 안사장의 손길이 분주하다. 많게는 하루에 50여 개 정도 만든다 ⓒ강사랑

영등포 지하상가에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원칙 지키기’. 365일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하는 곳이 미도파 꽃집이다. 퇴근 이후 늦은 시간에도 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자정에 가깝도록 운영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아마 밤 11시까지 장사하는 꽃집은 전국에서 우리 집이 유일할 거예요.” 영등포 지하상가를 오가는 유동 인구를 생각하면 납득이 가지만, 그럼에도 한결같이 긴 영업시간을 고수하는 것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미도파 꽃집 박래웅 대표 ⓒ강사랑

이야기 도중 여든 살이 훌쩍 넘은 미도파 꽃집 대표를 만났다. 연세가 무색하리만큼 정정한 목소리에 힘주어 말한다. “그야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남들과 똑같이 하면 어떻게 성공을 해요? 수 십 년째 장사하면서 꽃들을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꽃집에서 꽃을 사가는 소비자들은 알아요. 꽃이 쉽게 시들지 않고 오래 아름다움을 유지하거든. 물론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는 게 여간 힘들고 성가신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들이 꽃을 최상의 상태에서 오랫동안 즐겼으면 하는 마음인 거지.”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는 신선한 꽃들을 판매한다 ⓒ강사랑

사십 년 외길을 걸어온 미도파 꽃집에 경사가 생겼다.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아 2019년 서울시의 ‘오래가게’로 선정된 것. ‘오래된 가게가 오래가기를 바란다라는 의미’의 ‘오래가게’ 는 30년 이상 운영했거나 2대 이상 전통 계승 또는 대물림되는 가게를 우선으로 선정된다. 이번에 오래가게로 선정된 22곳은 관악구 3개소(그날이 오면, 미림분식, 휘가로), 금천구 2개소(금복상회, 팽택쌀상회), 동작구 2개소(설화철물, 터방내), 강북구 2개소(서울스튜디오, 황해이발관)등 이다. 서울시는 이들을 적극 홍보하여 국내외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코스로 개발할 예정이다.


미도파 꽃집은 핸드드립 아메리카노와 생과일주스를 판매하는 카페(카페라네) 영업을 겸하고 있다 ⓒ강사랑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지만, 우리 곁에는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들이 있다. 20년 전의 손님이 찾아와도 한결같은  곳. 단순히 재화를 주고 받는 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추억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곳. 미도파 꽃집처럼 추억과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공간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오래가게’라는 이름 그대로 오래오래 이어지며 국내외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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