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이 바라본 '제주 4·3'은? '동백꽃피다' 전

시민기자 김호정

발행일 2019.10.17. 15:45

수정일 2019.10.17. 17:18

조회 2,233

서울시에서는 청년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최초예술지원사업을 연다. 그 중 청년예술단은 젊은 예술가들이 팀을 이루어 시의성 있는 주제로 전시나 공연을 만든다. 올해 선정된 팀 '제 0세계'는 '제주 4.3'을 주제로 프로젝트 결과를 공유하는 전시를 한다. <동백꽃 피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 10월 1일 오픈해 오는 22일까지 영등포구에 위치한 '쇼앤텔'에서 진행 중이다. 6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도 생소하여 불편했던 제주 4.3을 87년생 청년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동백꽃 피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 ⓒ김호정

어릴 적 나에게 제주도는 아주 먼 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귤이 재배되는 곳이었고, 인기 있는 신혼여행 관광지였으며, 아름다운 풍경의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였다. 내가 기억하는 ‘제주 4.3 사건’은 고등학교 국사 시간 교과서에 있던 한라산 배경의 사진 한 장과 ‘공산당에 의한 폭도들의 반란’이라는 문장이 전부였다. 그 짧은 문장과 나의 무관심이 더해져 사는 동안 제주 4.3사건은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우리 현대사 속의 많은 사건들이(4.19, 광주 5.18민주화 운동) 재조명되고 진실이 하나 둘 씩 밝혀지는 과정을 통해 그 동안의 역사가 권력자들에 의해 뒤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제주 4.3 사건 역시 내가 배웠던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제주도라는 물리적인 거리감 때문인지, 6.25사변 전에 일어났던 이념갈등 정도로 치부해서인지 다른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기억에 깊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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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앤텔 갤러리 <동백꽃 피다> 전시장 입구 김호정

전시장 입구에 <동백꽃 피다>라는 전시 제목과 활짝 펴 있는 동백꽃의 포스터를 보고 ‘그래도 우리는 꽃을 피운다’라는 강한 저항의 메시지를 느끼며  전시를 보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이 내용과는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극락왕생’이라는 글자가 크게 눈에 들어왔다. 타이포그라피로 작업된 글자는 마치 한라산의 등고선처럼 보였고 이전에 교과서에서 봤던 사진과 오버랩 되었다. 산으로 올라간 무장대와 불태워진 중산간 마을, 그 사이 무고하게 희생된 많은 사람들. 이 사건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한라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작품 구석에 있던 민어 한 마리가 제사상을 연상시키며 부디 극락왕생하길 바라게 된다.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 모두 좋은 곳으로 가셨길. 그러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희생자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순출 삼촌’이라는 유족의 모습을 모티브로 한 영상 작품은 낯설게 다가왔다. 내가 기대하고 예상한 유족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들을 무겁게만 바라보고 있었는지,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고정 관념을 정면으로 맞서게 해 주었다. 영상 속에서는 마음씨 좋은 옆집 할머니가 손녀딸과 장난처럼 꽃단장하는 모습을 위트 있게 만화의 기법으로 표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작품에서 유족에게서 예상했었던 어둠과 고통의 모습을 찾기 위해 영상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검은색 굵은 터치의 의미를 물었다. “단순히 인물을 강조하기 위한 반사판 같은 거예요”라는 작가의 대답에서 그의 의도가 느껴졌다. 그들은 그저 내 옆집의 할머니, 할아버지인 듯 하다.그들을 4.3 유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어 놓고 무겁게 바라본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귀담아 듣기도 힘들어하고, 가까이 하기에도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자 그들을 나와 상관없는 멀리 있는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쯤으로 치부해 덮어버리고 싶은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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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피다>  박선영 작가 '섬의 얼굴' 김호정

‘섬의 얼굴’이라는 유족들의 얼굴을 그린 작품은 유족들에게 위로를 주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유족들 중에는 부모님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다. 그들의 초상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어쩌면 희생자들의 초상화도 이와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족들의 초상화라면 무채색의 수묵화나 연필스케치를 사용해서 그렸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작가는 반대로 화려하고 밝은 색상 위주의 수채화를 사용했다, 유족들의 힘들고 굴곡진 삶과 대조를 이루는 예쁜 색깔의 물감들이 마치 우는 아이들을 달래주는 과일맛 사탕처럼 그들을 달래주고 있는 것 같았다. ‘물감이 물에 의해 풀어지듯 당신들의 응어리진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속삭이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비 시리즈 작품’은 희생자의 방대함과 우리의 무관심과 방치를 꾸짖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여러 번 제주도를 여행 했지만 한 번도 기념관이나 4.3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외국 여행을 계획할 때면 항상 그 지역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갖는데 제주도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 당시 제주도 도민의 10분의 1이 희생되는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랜 세월 무관심과 권력의 폭력 속에서 유족들은 더 쓰라리고 아팠을 것이다. 그림 속의 백비 앞에서 나의 무관심에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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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피다>  전시장의 열린 게시판 - 어느관람객의 메모 김호정

이 전시회는 무겁고 아프다고 기억 안쪽에 묻고 잊으려는 나의 한계를 직면하는 기회였다. 앞으로 이와 같이 젊은 작가들의 참신한 발상과 표현을 통해 많은 우리의 역사 속 아픈 과거를 어루만지고 살피는 전시를 더 보고 싶다. 고령인 유족들을 보면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잉크처럼 지워지지 않도록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방법으로 계속 덧칠을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2019년 이곳 서울에서 우리의 기억을 소환해준 <동백꽃 피다>의 4명의 젊은 작가와 그들을 후원해준 서울시가 고맙다.

*<동백꽃 피다> 는 2019년 청년예술지원사업 서울청년예술단 선정단체 '제 0세계'의 프로젝트 결과공유전이다. 팀의 1년간 프로젝트 기록을 더 보고싶다면 홈페이지(0sideworld.modoo.at)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동백꽃 피다> 전시회

- 참여작가 : 김유민, 김준환, 박선영, 장윤미

- 기획 : 박선영

- 장소 : 쇼앤텔 (영등포구 양평로 18길 8 B1층)

- 기간 : 2019.10.1 ~ 10.22

- 관람시간 : 오전 11시~오후 6시(월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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