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작품! 가을, 서촌, 그리고 '박노수 미술관'

정명섭

발행일 2019.09.02. 15:30

수정일 2019.09.02. 17:45

조회 4,797

박노수 미술관 전경

박노수 미술관 전경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52) 박노수 미술관

통인시장을 지나 서촌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올라가다보면 박노수 미술관과 만나게 된다. 박노수 화백은 광복 후 활동한 한국화 1세대 화가로 오랜 기간 독창적인 화법으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이곳은 그가 1973년부터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으로 현재는 그의 작품과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다.

원래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부인이었던 순종효황후의 큰 아버지인 윤덕영이 자신의 딸과 사위를 위해 지어준 집이다. 1937년경에 지어진 이 집은 근대 주택의 여러 가지 특징과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언덕 위쪽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 눈에도 다른 주택들과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2층 건물인데 위 아래층의 재료도 틀리고 형태도 다르다. 벽돌로 만든 1층은 현관의 지붕인 포치부터 벽면 전체가 전형적인 서양식 주택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 하얀색으로 칠해진 2층은 목재로 만들어졌고, 일본식 주택의 특징인 돌출된 창문이 보인다. 그리고 돌출된 창문 아래에 노출된 목재는 한옥의 둥근 서까래를 연상케 한다. 내부 역시 벽난로부터 온돌방까지 여러 양식이 섞여있다. 이 집을 설계한 사람은 총독부의 건축과에서 일하던 조선인 건축기사 박길룡이었다. 조선인 중에 드물게 기사까지 역임한 그는 다양한 건축물들을 설계 했는데 박노수 미술관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박노수 화백의 미술작품이 있는 내부도 볼거리가 많지만 정원 역시 눈에 띈다.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져서 작은 석등을 비롯한 조각품들이 정원 곳곳에 보인다. 옆으로 돌아가면 장독대로 쓰는 작은 창고 옆에는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수조도 있다. 뒤쪽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일종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박노수 가옥의 지붕과 굴뚝들이 보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박노수 미술관의 뒤편에는 벽수산장이 있었다.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기괴한 느낌을 주던 벽수산장에 살던 윤덕영은 자신의 집 아래 딸과 사위가 살 집을 지어준 것이다. 세월이 흘러 윤덕영이 지은 벽수산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딸과 사위의 집 역시 박노수 미술관으로 변했다. 경성이 서울로 바뀌었고,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는 광복을 하고, 전쟁과 분단을 겪었다. 1930년대 후반에 존재하던 각종 건축양식들이 뒤섞인 이 주택에서 서울의 지나온 역사를 볼 수 있는 셈이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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