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빌딩숲에서 발견한 역사의 흔적 ‘중부학당 터’

정명섭

Visit540 Date2019.07.29 15:33

중부학당 터

중부학당 터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47) 중부학당 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뒤편, 케이 트윈타워의 남쪽 화단에는 중부학당 터라는 표지석, 그리고 거기에 대한 설명이 붙은 판석, 그리고 뒤쪽에는 돌무더기가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 초중급 교육기관은 학당이 있던 자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극에 나오는 교육기관은 훈장이 있는 서당이나 성균관 정도만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학당은 대단히 낯선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학당의 역사는 고려부터 시작된다. 당시 성균관의 대사성이었던 정몽주가 공양왕 때 개경에 세운 것이 시작이다. 이때는 중앙과 동서남북에 하나씩 설치해서 5부 학당이라고 불렀는데 지방의 향교 같은 역할을 했다. 차이점은 향교가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모신 문묘가 없다는 것이다. 성균관에 입학하기에는 어린 나이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역할을 한 셈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조선에서는 성균관은 물론 학당 역시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다만 세워진 장소는 개경이 아니라 조선의 새로운 도읍이었던 한양이었다. 다만 어찌된 일인지 북부학당은 세워지지 못해서 4부 학당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건물이 불에 탔다가 다시 중건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학당은 성균관의 하부 교육기관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들은 성균관의 교수들이 파견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도울 훈도들이 각 학당에 파견되었다.

한양의 교육기관 중 하나였던 중부학당은 다른 학당들과 함께 한말에 폐지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랫동안 잊어졌던 중부학당은 이곳에 빌딩이 세워지면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공사를 하던 중 중부학당의 것으로 추정되는 적심석들이 발견된 것이다. 적심석은 건물의 초석이 놓을 자리에 땅을 파고 돌을 채워 넣는 것으로 잡석이라고도 부른다. 적심석이 나온 곳 주변은 다져서 평탄하게 하는 동시에 지반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 흔적도 나왔다.

중부학당 터 적심석

중부학당 터 적심석

표지석 안쪽에는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바닥이 있어서 빌딩 건축 당시 나온 적심석들을 볼 수 있다. 중부학당은 비록 적심석들만 남았지만 서울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먼저 삼청동에서 경복궁 동쪽으로 흐르던 하천은 중학천이라고 불렸는데 당연히 중부학당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현재는 도로가 깔리면서 사라졌지만 종로구청 앞에서 교보생명 앞까지 인공적으로 조성해놓은 상태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지역의 동명 자체가 중학동이다. 사라진 역사가 남긴 이런 흔적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서울의 역사이기도 하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