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홍범도, 연극으로 부활하다!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19.06.26. 15:29

수정일 2019.06.26. 17:57

조회 5,142

대한민국연극제 공연이 열린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로비

대한민국연극제 공연이 열린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로비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예술계에서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선 홍범도 장군의 독립투쟁을 주제로 한 카자흐스탄 고려극작의 작품을 공식 초청했다. 실제로 우리말을 하지 못하는 고려인 3세, 4세 배우들이 한국어로 하는 공연이다. 대한민국연극제는 국내 유일의 전국연극제로 지난 6월 1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6월 23일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 예술극장을 찾았다. 연극 ‘날으는 홍범도 장군’을 관람하러 각계 인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2층 로비에서는 ‘배우의 얼굴, 이것이 연극이다’ 라는 제목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대학로를 함께 지켜온 사진작가 김명집, 최용석과 116명 배우들의 협업으로 기획되었다. 연극에 문외한인 필자에겐 낯설었지만 연극계의 수많은 배우들의 얼굴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2층 로비에선 연극인 116명에 대한 사진전을 만나볼 수 있었다

2층 로비에선 연극인 116명에 대한 사진전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날으는 홍범도 장군’, 그는 누구인가? 학창시절을 거쳤던 사람들이라면 한국사 시간에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다. 그런 홍범도 장군은 한때 잊혀진 독립운동가였다. 왜 그랬을까?

머슴 출신의 아버지 슬하에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백두산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그는 강원도 철령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 이후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활동했다.

1920년 6월 7일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 해 10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대한독립군은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함께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했다. 이렇듯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과 맞서 싸운 수많은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일본군은 두려움에 떨면서 그를 ‘날으는 홍범도 장군’ 이라고 불렀다.

1937년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홍범도 장군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극장의 수위로 말년을 보냈다. 그는 생전에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43년에 생을 마감했다. 현재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1945년 조국은 해방을 맞았건만 6.25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으면서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자연스레 머나먼 이국땅에 묻힌 그의 존재도 잊혔다.

연극 ‘날으는 홍범도 장군’ 커튼콜 장면

연극 ‘날으는 홍범도 장군’ 커튼콜 장면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순방하면서 독립운동가 중 일부의 유해 봉환을 추진했으나, 안타깝게도 홍범도 장군은 봉환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대한민국연극제 초청작으로 대학로의 무대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니 무척 반가웠다. 빼앗긴 조국을 향한 독립에의 의지를 불태웠던 그는 연극 무대에서 생전의 모습대로 부활했다.

‘날으는 홍범도 장군’은 극작가 태장춘의 ‘의병들’을 개정 및 각색했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고려극장의 수위로 일하던 늘그막의 홍범도 장군이 새내기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신출귀몰한 홍범도 장군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일본군의 고문 끝에 사랑하는 부인을 잃었고, 일본군과의 전쟁 중에 아들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또한 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독립군을 이끄는 대장으로서 절망에 빠질 틈도 없었다. 무대에 흐르는 배경 음악이 아리랑의 곡조를 닮은 듯 시종일관 구슬프게 들린다. 우리말에 서툰 배우들의 발음이 어눌해도 그 뜻은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나는 무식하지만 한가지만은 똑똑히 안다. 내 땅을 남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는 홍범도 장군의 말이 필자의 귓전에 맴돈다. 구한말 의병운동가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변신하면서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우리의 영웅, 홍범도 장군! 우리는 그를 주목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당기념관 입구

우당기념관 입구

초청 연극은 끝났지만 그를 기리는 행사는 이어질 것이다. 연극 관람을 놓친 분들에게 희소식이다. 오는 8월에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주연의 영화 ‘봉오동 전투’가 개봉하고, 9월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소속 예술인 300여 명이 만드는 홍범도 장군 이야기 ‘극장 앞 독립군‘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아직 국내에 홍범도 장군 기념관이 없다. 현재 우당기념관을 빌어서 홍범도 장군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분의 노고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내년에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 해다. 정부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오기 위해 카자흐스탄 정부와 협의 중이라니 뒤늦게나마 다행스럽다. 그분의 유해를 모셔오고 홍범도 장군 기념관도 건립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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