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엔 역사와 함께하는 ‘남산-남영동 올레길’ 걸어요

시민기자 이광국

Visit1,076 Date2019.06.18 16:00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관, 빨갛게 표시한 공간이 고문을 자행한 5층 취조실이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외관, 빨갛게 표시한 공간이 고문을 자행한 5층 취조실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1일은 의병의 날, 6일은 현충일, 10일은 6·10 민주항쟁 기념일, 25일은 6·25 한국전쟁일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시민으로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여느 때보다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남산-남영동 올레길’을 찾았다.

‘남산-남영동 올레길’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걷기 코스로, 암울하고 엄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01년 6월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으로, 민주화운동기념관 조성, 민주화운동 기념행사 및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

‘남산-남영동 올레길’은 약 3시간 일정으로, 남산한옥마을부터 서울시청 남산1별관, 서울유스호스텔, 서울종합방재센터, 통감관저 터, 백범광장을 거쳐 후암동·용산 미군기지,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까지 이어진다. 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장소 몇 곳으로 소개해 본다.

옛 중앙정보부 제5별관 지하 취조실로 통하는 ‘소릿길’ 터널 입구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옛 중앙정보부 제5별관 지하 취조실로 통하는 ‘소릿길’ 터널 입구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남산·남영동 올레길’은 1961년 6월 1일 창설된 수도방위사령부 터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곧바로 길이만 무려 84미터의 ‘소릿길’로 연결된다. 현재는 서울시청 남산별관의 입구인 이곳은, 굴로 만들어진 굴길(터널)로 옛 중앙정보부 제5별관(대공수사국)으로 통하는 곳이다. 당시에는 입구의 철문소리를 듣고 악명 높은 ‘남산’으로 끌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곧바로 건물 뒤편의 지하 4~5평의 취조실로 직행해 고초를 겪었다. 현재는 고문실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으며,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트인 빈 공간이다.

이어서 현재 서울유스호스텔로 사용되고 있는 옛 중앙정보부 본관을 찾았다. 옛 중앙정보부 본관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인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남산터널 3곳을 연결하여 30만 명 이상의 초대형 대피시설 및 벙커를 건설하는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이른바 ‘남산요새화’를 계획하였으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폐지되었다.

본관은 별관과는 다르게 이른바 ‘마사지’라고 불리는 약한 정도의 고문을 했었고, 주요 인사급을 담당했었다. 1973년 당시 유신을 반대했던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가 조사를 받다가 본관 뒤편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유신시대 의문사 1호 사건이 발생했었다. 중앙정보부는 투신자살로 마무리 했으며, 최 교수는 간첩 누명을 쓰고 모란공원묘지에 묻혔다.

신영복 선생의 글씨를 표석으로 세운 ‘통감관저 터’(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억의 터’(우)

신영복 선생의 글씨를 표석으로 세운 ‘통감관저 터’(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기억의 터’(우)

옛 통감관저 터에는 신영복 선생의 글씨 표석이 세워져 있다. 옛 통감관저 터는 경술국치(1910년 8월 22일, 강제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날)의 현장으로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조약서에 서명한 곳이다.

현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피해 할머니(247명)들을 기억하기 위한 ‘기억의 터’ 추모공간으로 2016년 8월 조성하였다. 추모 공간 왼편에는 ‘거꾸로 세운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을사늑약(을사조약)의 공으로 남작 작위를 받은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에 쓰인 돌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워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담았다.

현재 서울시 소방재난본부·TBS교통방송이 자리한 앞쪽에는 ‘남산인권마루’ 표석이 세워져 있다. 당시의 고문 피해자들은 6국을 ‘육국(肉 고기 육)’이라고 칭할 만큼 극악무도한 고문이 자행됐었다. 현재 지하에 그 고문실을 재현하고, 인권광장과 전시실을 마련하는 ‘기억6’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후암동 일대의 문화주택, 일제 강점기 주택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후암동 일대의 문화주택, 일제 강점기 주택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후암동에선 일제의 잔재 중 하나인 ‘문화주택’을 볼 수 있었다. 외형은 서양식으로 지었으나, 내부는 다다미방 등이 있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일본 상류층이 거주했던 주택으로, 정원도 잘 갖추어 놓았다. 후암동 일대에는 이런 문화주택의 외형을 유지한 건물들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민주인권기념관 4층의 박종철 기념 전시실, 유품과 옷가지, 친필편지 등 각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민주인권기념관 4층의 박종철 기념 전시실, 유품과 친필편지 등 각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올레길의 마지막은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서울대학생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고문 피해자들은 입구의 두꺼운 철문을 지나 주 출입구가 아닌, 뒤쪽 쪽문의 가파른 나선형계단을 오르며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면서 5층 취조실까지 곧바로 직행했다. ‘남산’이 철문소리로 위치를 알 수 있었다면, ‘남영동’은 기차소리로 자신이 끌려온 위치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취조실은 특이하게 지하가 아닌 5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로로 기다란 쪽창문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았고, 내부·안팎에서 서로가 정보를 얻지 못하도록 철저히 단절하는 구조다.

약 4평 정도의 취조실은 내부를 관찰하는 장비는 물론, 변기, 욕조, 책상, 의자, 침대가 설치되어 있고, 모두 자해 방지를 위해 바닥에 고정했다. 모든 것은 철저히 외부에서 통제하는 구조다. 취조실은 원형이 훼손되었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했던 509호실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2018년 12월 이관식을 열었다.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운영을 맡아 시민사회와 함께 임시 운영하고 있다. 2022년에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정식개관을 한다.

■ 남산-남영동 올레길 안내
○운영기간 : 4~10월 토요일 9시30분 ~ 12시30분 (7, 8월 제외)
○코스 : 한옥마을 → 남산 제1청사(옛 중앙정보부 5국) → 서울유스호스텔(옛 중앙정보부 본관) → 기억의 터 → 한양도성길 → 서울역광장·후암동 →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
○참가비 : 5,000원(기념품, 가이드북, 간식 제공)
○신청방법 : 민주인권기념관 홈페이지 온라인 신청
○문의: 02-691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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