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함에 압도되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시민기자 박은영

발행일 2019.06.17. 11:51

수정일 2019.06.17. 11:51

조회 3,925

조선 후기의 역사와 서소문에 관련돤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 지하 3층의 상설전시장

조선 후기의 역사와 서소문에 관련돤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 지하 3층의 상설전시장

공원은 드넓고 시원스러웠다. 키 큰 나무 사이사이 동그랗거나 긴 모양의 벤치가 곳곳에 눈에 띄었고, 은사초와 은쑥 등 은빛의 풀들이 화사하게 시선을 끌었다. 지난 1일 45종의 나무와 33종의 풀꽃 9만 500여 본과 더불어 새롭게 탄생한 ‘서소문역사공원’ 이야기다.

6월1일 새로운 모습으로 개장한 서소문역사공원

6월1일 새로운 모습으로 개장한 서소문역사공원

조선시대 한양의 공식 처형지이자 한국 최대의 순교 성지가 지난 1일, 서소문역사공원으로 재탄생했다. 262번 버스를 타고 서울역서부에서 하차, 5분여를 걸으니 서소문역사공원을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공원에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순교자 현양탑이 높이 솟아 고인의 넋을 기렸고, 공원 중심에는 작은 십자가들로 푸른빛의 칼을 형상화한 새로운 현양탑도 볼 수 있었다.

지하 박물관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와 작은 십자가들로 푸른 칼을 형상화한 서소문역사공원 내 새로 조성된 현양탑

지하 박물관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와 작은 십자가들로 푸른 칼을 형상화한 서소문역사공원 내 새로 조성된 현양탑

먼 곳에 봤을 땐 분명 벤치에 사람이 누워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낡은 담요 한 장으로 온 몸을 감싼 노숙자 모습의 청동 조각이었다.

예수를 형상화한 ‘노숙자 예수’라는 이 작품은 교황청에 설치된 것과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낡은 담요 한 장으로 온 몸을 감싼 노숙자의 모습을 한 티모시 쉬말츠 조각가의 '노숙자 예수상'

낡은 담요 한 장으로 온 몸을 감싼 노숙자의 모습을 한 티모시 쉬말츠 조각가의 '노숙자 예수상'

서소문역사공원에는 우물도 있어 생소했다. 우물이 크고 깊어 평소엔 뚜껑을 덮어 놓지만, 망나니가 사람을 죽일 때나 그 뚜껑을 열어 칼을 씻었다는 ‘뚜께무물터’는 그 의미를 알고 보니 새롭게 보이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우물이 크고 깊어 평소엔 뚜껑을 덮어 놓지만, 망나니가 사람을 죽일 때나 그 뚜껑을 열어 칼을 씻었다는 ‘뚜께무물터’

우물이 크고 깊어 평소엔 뚜껑을 덮어 놓지만, 망나니가 사람을 죽일 때나 그 뚜껑을 열어 칼을 씻었다는 ‘뚜께무물터’

서울 중구 칠패로에 위치한 서소문근린공원은 리모델링을 거쳐 지하 1층에서 지하 4층까지 연면적 4만 6,000여㎡ 규모의 서소문역사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역사공원 중간에 보이는 엘리베이터와 푸른색 칼 모양의 현양탑 사이의 계단을 통해 내려가거나, 공원 초입의 빨간 벽돌 아래 내리막길을 이용하면 박물관으로 연결된다.

1950년대에서 1970년의 근현대 조각사를 엿볼 수 있는 지하2층의 전시작품들

1950년대에서 1970년의 근현대 조각사를 엿볼 수 있는 지하2층의 전시작품들

솔직히 말하면 박물관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기 어려워 헤맸다. 공원에서 박물관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더 크고 친절하게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자 길을 헤맨 것 따위 쉽게 잊혀졌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 곳은 역사와 순교자를 품은 또 다른 세계였다.

박물관은 개관 기념 특별전시, <한국 현대 조각의 단면>이 전시 중이다. 한국근현대조각 100주년을 맞아 5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의 작가 62명의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는 작품 하나하나의 분위기가 서정적이고 정교했다.

예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각자의 영감으로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작품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한국 근대사 속 교회유물 상설전과 더불어 격변의 시대에 형성돼 온 우리나라 근현대 조각사의 계보는 그렇게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하 3층 실제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콘솔레이션 홀

지하 3층 실제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콘솔레이션 홀

상설전시관 1관에는 서소문밖이라는 장소와 사람들의 자취들이란 주제로 1960년대 복개된 만초천 흔적을 전시했으며, 지하 3층의 2관에는 서소문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서소문의 역사를 교회가 아닌 조선 후기 사상사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내 비신자들에게도 흥미롭고 유익한 전시공간일 듯 했다.

나지막한 음악이 울리는 서소문박물관은 전체적으로 아름답거나 웅장하고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다. 그 절정을 이루는 곳이 지하 3층의 콘솔레이션 홀이다.

정육면체 형대로 설계된 홀은 높은 1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4면의 벽이 땅에서 2미터 가량 떠있는 형대로 만들어 졌다. 그 안에 앉으니 사방으로 화면이 보였고, 그 중심을 비추는 조명에 바싹 엎드려 기도를 드리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그곳은 순교성자들의 유해가 담겨 있는 무덤이었으며, 그곳에서 작은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은 자유를 상징하는 ‘하늘광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광장은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전장으로 추념의 의미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조성했다.

뻥 뚫려 있는 공간에 정사각형의 높은 하늘을 원업이 올려다 볼 수 있는 하늘광장에는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작품과 더불어 거대한 벽 사이사이 정교하게 작은 구멍들이 나 있는데, 밤이 되면 그 구멍을 통해 수많은 빛이 나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박물관 지하 2층의 도서관

박물관 지하 2층의 도서관

박물관 내의 정하상 기념 성당에서는 매일 미사가 열리고, 박물관 지하 1층에 자리한 강의실과 도서관 등은 시민들에게 개방되며, 각종 문화 행사나 음악회도 진행된다.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의 문화 공간으로 단장을 마친 박물관은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전시를 시민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으로 향하는 내리막 길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으로 향하는 내리막 길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아름답고 웅장했다. 박물관 내부를 다 돌아보면 만보 이상을 걷는다고 할 정도니, 넓은 공간 안에서 한번 길을 잃으면 또 다시 헤맬 것 같아 정신을 바짝 차렸다.

평소 폐장은 5시 30분이지만, 매주 수요일에는 밤 8시 30분까지 야간개장을 한다고 하니 낮 시간이 어려운 사람들이 찾으면 좋을 듯하다.

서울시는 순례지 일부와 인근 관광명소를 연계해 해설이 있는 ‘서울 순례길’도 운영 하고 있다. 이중 4.5㎞의 ‘서소문순례길’은 천주교 역사의 첫 페이지와 근대건축물을 함께 둘러보는 길로 명동대성당과 대한성공회성당,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순교성지, 약현성당 등 3시간 코스로 이어진다.

노숙자들이 시간을 보내던 공원과 쓰레기처리장으로 활용되던 지하가 역사를 품은 채 새롭게 탄생했다. 기품 있는 공간으로 변신한 서소문의 성지가 서울의 대표 관광지이자 시민들의 유익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 주소 : 서울 중구 칠패로 5
○ 운영시간 : 매일 9:30 ~ 17:30 (수요일은 20:30까지), 설날·추석 당일 휴무
○ 문의 : 02-3147-2404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블로그
해설이 있는 서울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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