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집이길래? 미술관이 된 예술가의 집 2곳

시민기자 김은주

Visit1,588 Date2019.06.12 15:55

박노수 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기거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다

박노수 미술관은 박노수 화백이 기거했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다

분주하고 바쁜 일상 가운데 쉼표를 찍고 싶은 순간이 있다. 넘쳐나는 정보와 SNS의 울림 속에서 잠시나마 고요히 있고 싶을 때 떠오르는 곳이 있다. 화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특별한 공간인 ‘박노수 미술관’과 ‘고희동 가옥’이 그곳이다.

그림뿐만 아니라 화가가 살았던 그 곳이 주는 정취는 남다르다. 특별한 공간 속 더 특별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서촌과 북촌에 나란히 있는 박노수 미술관과 고희동 가옥을 함께 거닐다 보면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지역을 마음껏 걸으며 여유 있게 산책할 수 있어 좋다.

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다

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다

한국화 1세대 화백의 집 ‘박노수 미술관’ 되다

남정 박노수 화백의 집을 찾기 위해서는 경복궁역에서 내려 통인시장을 찾아 가다보면 마주할 수 있다. 마을버스 9번을 타면 바로 박노수 미술관 앞에서 내릴 수 있다.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인 박노수 가옥은 1930년대 건축된 문화주택이다. 특히 서양의 입식생활과 전통적인 온돌을 함께 사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집은 박노수 화백이 40년 동안 살면서 그가 가꾼 정원과 함께 그의 작품세계까지 녹아져 흐르는 듯하다. 1층 벽돌구조, 2층 목구조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현관 옆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과 대청, 입식부엌을 갖춘 집이다. 2층의 박노수 화백의 작업실은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2011년 종로구에서 인수해 현재는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화 1세대 화가로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화 1세대 화가로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박노수 화백은 2011년 그의 작품 500여 점과 수백 점의 고가구와 고미술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그렇게 비밀의 정원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집이 미술관으로 재탄생되었다.

박노수 화백은 한국화 1세대로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박노수 미술관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시작품을 교체하는데 그때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그의 화풍에 놀라게 된다. 미술관은 그림을 감상할 뿐만 아니라 화가의 살던 공간까지 함께 느끼고 감상할 수 있다.

박노수 미술관은 아름다운 정원과 뒷동산의 아름다움이 매력적인 곳이다

박노수 미술관은 아름다운 정원과 뒷동산의 아름다움이 매력적인 곳이다

실내 전시공간에서는 사진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정원으로 나가보자. 앞마당의 정원과 뒷동산으로 이어지는 곳곳이 단정하고 우아하게 잘 가꿔져 있다. 앞마당의 작은 정원은 분재와 석상이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다. 뒷동산 위로 올라가면 서촌의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박노수 미술관의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굴뚝, 동양적 요소와 서양적 특징이 어우러진 특별한 구조의 가옥이 주는 이국적인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 박노수 미술관
○위치 : 종로구 옥인1길 34
○운영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입장료 : 3,000원
○문의 : 02-2148-4171
고희동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다

고희동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다

한국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을 만나다 ‘고희동 가옥’

원서동 고희동 가옥은 북촌의 안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핫플레이스 북촌을 따라 걸어 올라오다 보면 어느새 주변이 조용한 주택가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 끝에 고희동 가옥이 있다. 주변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에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 정도다. 고희동 가옥을 찾아가는 좁은 골목길에서 반가운 고희동 선생의 자화상 플랜카드를 마주하면 그곳이 원서동 고희동 가옥이다. 하늘색 대문을 따라 들어가면 아담한 집 한 채가 등장한다.

고희동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84호로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고희동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84호로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춘곡 고희동 선생은 일본 유학 후 귀국해 1918년 직접 이 집을 설계했다. 목조 한옥인 원서동 고희동 가옥은 등록문화제 제84호다. 이곳에서 고희동 선생은 41년간 거주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고희동 선생은 새로운 조형 방법을 후진에게 가르친 미술 교육자이자, 미술 행정가, 미술 운동가로 많은 활동을 남겼다.

고희동 선생의 작업실,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평안함이 느껴진다

고희동 선생의 작업실,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평안함이 느껴진다

원서동 고희동 가옥은 안채, 사랑채, 문간채, 곳간채로 구성되었지만, 변형과 훼손이 심했다고 한다. 등록문화재 지정 이후 안채와 사랑채를 복원했다. 긴 복도와 유리문, 툇마루와 대청의 실내 공간화, 개량 화장실 등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길게 펼쳐진 나무 복도를 걸으면 삐걱거리는 소리조차 아름다운 음악처럼 느껴진다.

고희동 선생의 집은 주인을 닮아 멋진 기품을 마음껏 드러냈다. 화가의 작업실과 침실까지 그대로 재현해놓은 공간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그곳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평안함이 느껴진다.

서양화의 색체와 기법을 접목한 새로운 한국화를 감상할 수 있다

서양화의 색체와 기법을 접목한 새로운 한국화를 감상할 수 있다

춘곡 고희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개화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웠고 이후 자신의 예술적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20년대 중반 이후 한국화로 전향해 전통 수묵화법의 소재나 재료를 기초로 서양화의 색채와 기법을 접목한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했다. 집안 곳곳 전시된 그림을 보면 한국화가 대부분이다. 그의 특별한 한국화를 감상하다보면 누구나 그 매력에 젖어 들게 된다.

고희동 가옥에서는 작업실과 살았던 공간까지 자세히 볼 수 있다

고희동 가옥에서는 작업실과 살았던 공간까지 자세히 볼 수 있다

고희동 선생은 이 집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여러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매진했다. 이곳은 화가의 작업공간으로서의 의미와 근대시기 한옥의 변화를 잘 살펴볼 수 있는 집이다. 2008년 종로구에서 매입하여 복원한 뒤 2012년부터 일반에 개방되었고 지금은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 고희동 가옥
○위치 : 종로구 창덕궁5길 40
○운영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입장료 : 무료
○문의 : 02-2148-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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