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한 사연에 마음 먹먹, 현충원 호국용사 이야기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9.06.05. 16:39

수정일 2019.06.05. 18:45

조회 2,352

주월한국군사령관 재명신 장군과 사병들의 묘. 호국보훈의 달 6월,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보자

주월한국군사령관 재명신 장군과 사병들의 묘. 호국보훈의 달 6월,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보자

“여보! 환하게 웃고 계시죠. 사랑합니다. 꿈결에라도 자주 보고 싶어요. 너무 너무 보고 싶어요”, “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지금도 여러 은혜 받으며 살아요. 한번도 제대로 말 못했네요. 아버지 고마워요, 존경합니다. 사랑하는 거 아시죠?”,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날씨가 따뜻해졌어요. 맛난 것 많이 드세요. 다음에 또 만나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참배객들이 그리움을 메모하여 남긴 글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로비에 있는 ‘기억의 나무’, 유족들의 그리움과 시민들의 애절한 편지가 달려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로비에 있는 ‘기억의 나무’, 유족들의 그리움과 시민들의 애절한 편지가 달려 있다.

매년 6월이 오면 특별히 생각나는 곳이 있다. 바로 ‘국립서울현충원’이다. 서울의 푸른 동맥을 잇는 공작봉 기슭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은 144만㎡(약 44만평) 대지 위에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18만1,000여 분이 잠들어 계시는 민족의 성역이다.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되었고, 2006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치 공작새가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 한강을 내려다보는 형상으로 명당 중 명당이다. 현충원의 묘역은 국가원수,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군인·군무원, 경찰관, 일반인, 외국인 등 7개 묘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서달산 마루에서 내려다본 국립서울현충원 전경

서달산 마루에서 내려다본 국립서울현충원 전경

제 64회 현충일을 맞이하여 기자는 장병묘역을 찾아 호국용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충원에 안장된 모든 영령들이 당연히 존경의 대상이지만 장병묘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애틋한 이야기가 있어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호국보훈의 달,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추모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① 6·25전쟁 영웅 백마고지 삼총사 오규봉 상병 (13번 묘역)

정문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13번 묘역이 있다. 1952년 10월 철의 삼각지인 백마고지 전투 시 오규봉 상병은 강승우 소위, 안영권 일병과 함께 육탄공격으로 중공군 자동화기 진지를 파괴하여 백마고지를 탈환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들 삼총사의 용감한 군인정신이 발판이 되어 25회에 걸쳐 뺏고 빼앗기는 격전 끝에 백마고지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공훈을 세운다. 오규봉 상병은 이곳 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고, 두 명은 대전현충원에 있다. 지금도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에는 이들을 기리는 전적비가 있다.

② 국립묘지에서 유일하게 묘비명이 없는 ‘육군소위 김00의 묘’ (54번 묘역)​

서울현충원 54번 묘역에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27일 최후 방어선인 안강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이름 없는 ‘김 소위’의 묘가 있다. 당시 김 소위라는 것만 알고 있던 인접부대의 소대장 황규만 소위는 전사한 김 소위를 소나무 밑에 가매장하고 돌로 표시를 한다.

국립현충원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육군 소위 김00’의 묘비, 54번 묘역에 있다.

국립현충원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육군 소위 김00’의 묘비, 54번 묘역에 있다.

전쟁이 끝난 후 14년이 흐른 뒤 황 소위는 대령이 되었고, 옛 기억을 더듬으며 김 소위 시신을 찾아 나선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가매장했던 시신을 찾아 1964년 5월 29일 이름 없는 묘비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한다. 1976년 예비역 준장으로 전역한 황소위는 김 소위의 신원 확인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 1990년 11월 드디어 김 소위의 이름(김수영, 갑종1기생)과 춘천시 소양로에 살고 있는 아들 김종태 등 가족을 찾아낸다.

전쟁의 아픔과 비극적 사연을 간직한 역사적 산물로 두기 위해 지금도 이름 없는 ‘육군소위 김 의 묘’로 남아있다. 8만여 국립묘지 묘비 중 이름 없는 묘비는 김 소위가 유일하다.

③ 조국의 하늘에서 산화한 부자의 묘 (29번 묘역)​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호국의 일념으로 창공을 지키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차례로 순직하여 서울현충원 29묘역에 함께 잠들어 있는 전투기조종사 부자(父子)가 있다. 아버지(공군소령 박명렬)는 1978년 3월 28일에 공군소위로 임관 이후 공군대학총장상을 받는 등 우수한 인재였으나 1984년 3월 14일 팀스피리트 훈련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31세의 나이에 순직한다.

아버지의 꿈을 이어 전투기조종사가 된 아들마저 2007년 7월 20일 야간 요격임무 수행도중 태안반도 서북쪽 해상에 추락,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불행하게도 아들의 유해는 찾지 못했고, 유족의 뜻에 따라 유품을 아버지 곁에 안장하여 부자(父子)가 함께 영면할 수 있게 했다. 부자의 묘에는 지금도 후배 조종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투기조종사의 귀감이 되고 있다.

영원한 조국을 위해 호국영령들은 짧은 인생을 바쳤다.

영원한 조국을 위해 호국영령들은 짧은 인생을 바쳤다.

④ 종군기자의 표상 백광남 기자 (51번 묘역)​

1960년 4월 동아일보에 입사 후 1966년 10월 14일 월남전을 취재하기 위한 종군기자로 고국을 떠난다. 1966년 11월 27년 월남 디안에서 국군 비둘기부대를 취재하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수도 사이곤(현 호치민시)으로 단신 귀환 도중 베트콩 작전지역에서 순직한다. 한국인 기자로는 최초이고 순직한 유일한 언론인이었다. 전장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생생한 전투상황 보도를 위한 취재 활동 중 사망한 기자정신은 언론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66년 12월 5일 동아일보사장으로 안장식을 치른 후 유해는 제 51묘역에 안장되었다.

⑤ 송악산 탈환 작전 육탄 10용사 (6번 묘역)​

해방 후 남과 북이 38선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던 1949년 5월 4일, 북한군이 불법 점령한 개성 송악산 고지 탈환을 위해 포탄을 안은 채 적진지에 뛰어들어 북한군 진지를 분쇄하고 산화한 10명의 용사가 잠들어 있다. ‘육탄 10용사’란 서부덕 소위, 김종해, 윤승원, 이희복, 박평서, 황금재, 양용순, 윤옥춘, 오제룡, 박창근 상사를 일컫는 말로 6번 묘역 맨 앞줄에 안장되어 있다. 현충원에는 육탄 10용사의 위훈을 추모하고 그 뜻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육탄10용사 현충비’가 세워져 있다.

이 외에도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애틋한 사연을 지닌 묘역이 많다. 고공낙하 중 부하의 낙하산을 펴주고는 자신은 산화한 ‘이원등 상사(53번 묘역)’, 부하가 실수한 수류탄을 안고 순직하여 중대원을 구한 ‘강재구 소령(51번 묘역)’, 6·25 전쟁시 100회 출격을 목전에 두고 산화한 ‘박두원 대위(17번 묘역),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부하들과 함께 사병묘역에 영면한 부하사랑의 표상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2번 묘역)’ 등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오른쪽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우편엽서를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으면 현충원 홍보에 활용된다.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오른쪽에 있는 ‘하늘나라 우체통’,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우편엽서를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으면 현충원 홍보에 활용된다.

현충일 전인데도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참배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 님들은 불변하는 민족혼의 상징...” 국립서울현충원 호국장병들의 묘역을 순례하는 동안 학창시절 불렀던 현충일 노랫말이 떠올랐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서울에서 의미 있는 나들이 장소를 찾는다면 국립서울현충원을 추천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하늘나라 우체통에서 호국영령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도 좋겠다.

■ 국립서울현충원

○위치 :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 210

○교통 : 지하철 4호선 동작역 2·4번 출구, 9호선 동작(현충원)역 8번 출구

○개방시간 : 정문·동문·통문 5개소 6~18시(연중무휴) / 사진전시관·유품전시관·현충관 등 업무시설 9~18시(11~2월 동절기 토요일 및 휴일 휴관)

○홈페이지 : http://www.snmb.mil.krhttp://www.snmb.mil.kr

○문의 : 02-74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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