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 중명전

정명섭 정명섭

Visit374 Date2019.04.15 16:34

을사늑약의 현장을 재현한 전시실

을사늑약의 현장을 재현한 전시실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33) 중명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로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정동제일 교회와 이화여고로 향하는 길,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 미국 대사관저인 하비브 하우스로 올라가는 길, 지붕에 황금 돔을 달고 있는 러시아 대사관으로 가는 길로 각각 나눠진다.

그 중에서 정동제일교회와 이화여고로 향하는 길에 정동길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이곳을 조금 걷다보면 공연장인 정동극장이 나오고 옆으로 샐 수 있는 작은 골목길이 나온다. 정동을 걷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이 길의 끝에는 붉은 벽돌로 만든 2층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골목길 안쪽이기도 하지만 살짝 휘어져 있어서 밖에서 안 보이기 때문에 대문 앞에 도달해야만 볼 수 있다.

넓은 마당을 가진 이 건물은 벽돌로 만든 아치형 기둥과 직선의 지붕, 그리고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만든 난간으로 구성돼 있다. 1,2층 외부가 발코니로 구성돼 있어서 고풍스럽고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형적인 서양식 건물이지만 1층 현관 위에는 중명전이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이 적힌 현판이 보인다.

이곳은 덕수궁이 경운궁이라고 불리던 시절에 궁궐 안에 지어졌다. 1896년, 경복궁에 있던 고종은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한다. 그리고 1년 만에 환궁하는데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으로 향한다. 외국 공사관에 둘러싸인 경운궁이야말로 일본의 위협을 피하는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경운궁에는 여러 전각들이 세워지게 되는데 중명전도 그 중 하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였던 중명전

고종의 임시거처였던 중명전

애초에는 수옥헌이라는 이름의 1층 건물로 지어졌지만 1901년 화재로 인해 파손되었고, 러시아인 사바틴의 설계로 새로 지어진 것이 지금의 건물이다. 새로 지어진 후에도 한 동안 수옥헌이라고 불렸다. 그러다 1904년 경운궁에 큰 화재가 나고, 고종의 임시거처로 이용되면서 중명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광명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곳이라는 멋진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과는 다르게 참혹한 운명을 겪는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로 이용된 것이다. 안에 들어가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마네킹과 을사늑약 조약문을 볼 수 있다.

이런 비극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헤이그 밀사들에 관한 것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이상설과 이준, 그리고 이위종으로 구성된 세 명의 밀사가 어떻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들이 그곳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을사늑약의 현장을 보고 무거워진 마음이 다소 누그러진다. 그래서 나는 헤이그 밀사와 을사늑약의 역사가 공존하는 이곳을 역사의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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