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특색있네! 전통가옥 5채 한 곳에 모인 사연

시민기자 김진흥

발행일 2019.04.04. 15:40

수정일 2019.04.04. 17:15

조회 4,895

남산 아래 남산골한옥마을에 있는 천우각

남산 아래 남산골한옥마을에 있는 천우각

매월 둘째 주 화요일 낮 12시 20분, 서울시 공공한옥 ‘홍건익 가옥’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매달 한 번씩 이곳에서 무료 음악회를 가지는데, 별도의 예약절차 없이 홍건익 가옥을 방문해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홍건익 가옥은 서울특별시 지정 문화재 중 민속문화재다.(제33호) 정식 명칭은 ‘필운동 홍건익 가옥’이다.

홍건익 가옥처럼 서울시 내 몇몇 가옥들은 서울시 지정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가회동 백인제 가옥’(제22호), ‘장위동 김진흥 가옥’(제25호), ‘경운동 민병옥 가옥’(제15호) 등이 그렇다. 여기서 이 가옥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동네 이름이 있다는 것. 모두 가옥 소재지에 있는 명칭이다.

한복을 입고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진 관람객들

한복을 입고 한옥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진 관람객들

그런데 서울특별시 지정 문화재에 속한 민속문화재인 가옥들 중 동네 이름과 다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가옥들이 있다. 더구나 그 가옥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공존한다.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5개 동네의 가옥들이 서로 이웃이 된 셈이다. 그곳은 바로 남산골 한옥마을이다.

1998년에 개관한 남산골 한옥마을은 한옥 다섯 채, 서울남산국악당, 전통정원,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으로 구성됐다. 남산골 한옥마을이 위치한 필동은 조선시대 때부터 한옥마을이 존재했던 곳이었다. 남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필동은 당시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유명했다. 또한, 한양에서 경치 좋은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혔다.

서울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선조들의 생활모습을 재조명하고자 전통문화예술공간으로 남산골 한옥마을을 조성했다. 이때 서울시는 시내에 떨어져 있던 한옥 5채를 복원과 함께 지금의 위치로 1996년에 이전했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다섯 채 가옥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우선,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경복궁 중건공사(1865~1868)에 참여했던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라는 뜻) 이승업이 1860년대 후반에 지은 집이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다른 집들과는 달리 이 가옥은 독특하게도 건축자의 이름이 붙여진 유일한 저택이다. 낮은 신분에도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경복궁 중수 과정의 풍부했던 좋은 자재들을 활용해 장인의 솜씨와 더해져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승업은 집을 만든 후 잠깐 살았으나 얼마 안 돼 빚에 몰려 벽동군수 이규상(1837~1917)에게 매각했다.

원래 이 집은 문간채와 앞뒤 행랑채, 사랑뒤채 등 모두 8개 건물로 이루어진 주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중문만 남아 있다. 안채는 ‘丁(정)’자형, 사랑채는 ‘ㄴ’자형이다.

그리고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안채에서 부엌과 안방 쪽은 반오량(半五梁)으로 지붕 길이를 다르게 꾸민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지붕이 독특하다. 이 가옥의 지붕은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은 모양을 띤다. 서로 길이가 다른 지붕면은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유형이다. 부엌 앞 측벽의 박공벽 전돌 처리 또한 당시 서울의 가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목수들의 우두머리답게 이승업 가옥은 조선 후기 서울의 주거문화와 당시의 건축 기술을 잘 보여 준다. 안채 곳곳에 설치된 난간과 툇마루는 편리하면서도 아름다운 멋을 나타낸다. 이 가옥은 1977년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등록됐다. 제20호. 원래 위치는 청계천 부근 중구 삼각동 36-2번지다.

건물 뒷편에 입구가 있는 독특한 구조의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건물 뒷편에 입구가 있는 독특한 구조의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다음으로,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조선 후기 오위장(五衛將) 벼슬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에 지은 집이다. 오위(五衛)는 조선시대 중앙 군사조직을 말한다. 이 가옥은 원래 삼청동에 있었지만 복원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대문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돼 있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전체적으로 조촐한 양식을 보이며 평민의 주택 양식을 띤다. 그러나 길가에 마주한 부분에 화방벽(火防壁)을 쌓아 집의 격조를 높였다. 안채의 서쪽 외벽은 골목과 직접 만나서 벽이ㅡ 상부에만 높은 창을 내고 아래쪽은 돌과 벽돌로 담벼락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담벼락은 서울 한옥에서 즐겨 사용하던 수법이다.

또, 이 가옥은 점점 밀도가 높아지는 도시적 상황에 잘 적응한 서울 한옥의 모습을 나타낸다. 대문간이 바로 트이지 않고 꺾어 들어가게 한 점, 안채의 서쪽 벽이 골목에 직접 면하는 점, 건물을 교묘하게 조합한 점 등이 그렇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서울민속자료 제8호로 등록되어 있다. 원래 위치는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관훈동 민씨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은 187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민영휘(1852~1935)가 1895년 안국동으로부터 교동으로 이주하면서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일가를 거주하게 한 가옥 중 하나다. 당시 민영휘 일가는 경운동과 관훈동 일대 한데 모여 살았다. (민영휘는 조선 후기 관료였지만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섰고 이완용과 함께 경술국치에 공을 세운 대표적인 친일파 인물이다.)

‘관훈동 민씨 가옥’은 남산골 한옥마을로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가옥이 위치했던 관훈동 30번지에는 1936년 기준으로 총 6동의 목조와즙과 2층 양옥이 존재했다. 하지만 1976년 이곳에 있던 가옥들 중 일부가 멸실됐고 안채 일부와 문간채 등 목조와즙 2동만 남았다. 이때 이 가옥이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 제18호로 지정됐다. 이후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하면서 안채 일부와 철거됐던 건넌방을 되살렸고 문간채, 사랑채를 새로 지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나란히 배치된 부엌과 안방

나란히 배치된 부엌과 안방

대표적인 친일파 집안 가옥이지만 서울시가 민속자료로 지정했다. 이유는 당시 일반 가옥과 다른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6칸에 달하는 부엌의 크기, 마루 밑에 뚫려 있는 벽돌 통기구 등이 그 예다. 그리고 보통 서울지방은 안방과 부엌을 ‘ㄱ’자형으로 배치한 반면, 민씨 가옥은 안방과 부엌을 나란히 배치했다. 고주(高柱) 두 개를 세워 짠 넓고 큰 목조 구조 등과 함께 당시에 보기 힘들었던 가옥 구조를 띤다. 원래 위치는 종로구 관훈동 30-1번지.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도 위의 3개 가옥들처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에 속한다.(제24호) 이 집은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1874~1926)의 장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이 그의 딸 순정효황후가 1907년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었다. 그러면서 순종이 제사하러 올 때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었다. 일반적인 주택이 아니다. 가옥 뒤에 있는 사당은 1960년에 소실됐지만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하면서 복원됐다.

홍콩에서 왔다는 린 씨는 “친구들과 한복을 입고 여기서 사진을 찍는데 다른 집들과 다른 느낌을 준다. 사당이 있어서인지 뭔가 엄숙한 느낌이다. 그런데 여기가 더 사진이 잘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집은 다른 전통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다. 안채와 사랑채가 대칭되게 만들면서도 내부 공간의 쓰임은 편리하게 배분했다. 이외에도 나무를 가공하거나 벽면, 창호, 장식 등 세부를 처리하는 데서 고급 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다. 원래 위치는 동대문구 제기동 224번지.

남산골 한옥마을에 새로 지은 옥인동 윤씨 가옥

남산골 한옥마을에 새로 지은 옥인동 윤씨 가옥

마지막으로 ‘옥인동 윤씨 가옥’은 이전 가옥들과 특이한 점들이 있다. 이 가옥은 남산골 한옥마을 5개 가옥들 중 유일하게 문화재가 아니다. 1977년 문화재로 지정했다가 1997년 지정을 해제했다. 당시 건물이 심하게 낡아 붕괴 위험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가옥도 아니다. 또한 이 가옥만 새 자재를 사용해 복원했다. 가옥의 부재가 너무 낡아 이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건물들은 종래의 집 부재를 그대로 이전했다.)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 윤씨 가옥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 윤씨 가옥

경술국치 이후 191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한 이 가옥은 순정효황후(1894~1966)의 큰아버지 윤덕영(1873~1940)이 소유했던 집이다. 당시 옥인동에서 일가들이 20여 채의 집을 짓고 모여 살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옥인동 가옥들 중 서양식으로 지은 사위집(박노수 가옥)과 윤덕영이 애첩에게 주기 위해 지은 가옥만이 남았다. 윤덕영은 경술국적의 인물들 중 하나로 대표적인 친일파다.

가옥의 전체적인 구조가 ‘ㅁ’자형을 이룬다. 그리고 ‘ㄷ’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구실을 하는 마루방과 대문간이 더해졌다. 안채 앞쪽은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기둥머리에 익공(翼工)을 치장하는 등 건축구조와 세부기법은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원래 위치는 종로구 옥인동 47-133번지.

전통악기 체험중인 외국인 관광객들

전통악기 체험중인 외국인 관광객들

남산골 한옥마을은 5개 전통 가옥들의 면면을 볼 수 있는 것과 동시에 각 가옥마다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에서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인 참매, 황조롱이 등을 불러 훈련시키는 줄밥부르기 체험을,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에서는 직접 탈을 쓰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전래공연체험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은 천연 염색체험과 전통 향교실이, ‘옥인동 윤씨 가옥’에서는 규방공예체험과 한국의 세시 풍속과 전래놀이체험 프로그램이 꾸려져 있다.

여자친구와 함께 여러 체험들도 하고 한옥마을을 둘러 본 케네스 씨는 “특별한 곳에서 한국 고유의 놀이들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5개 동네에서 모인 한옥들의 집합체다. 겉으로는 같은 한옥처럼 보이지만 지어진 시기도 다르고 구조와 형태 등도 각각 다른 개성을 띠고 있다. 가옥이 전하는 스토리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각 한옥들의 매력들이 물씬 풍긴다. 가옥 이곳에서 단순히 한옥을 둘러보기보다 이러한 정보들을 알고 방문한다면 남산골 한옥마을의 숨은 매력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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