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역사가 영화처럼 펼쳐지는 곳 ‘백인제 가옥’

시민기자 이선미

Visit685 Date2019.03.26 14:23

백인제 가옥 사랑채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다.

백인제 가옥 사랑채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다.

현재의 북촌 한옥마을이 형성된 것은 1930년대의 일이다. 1920년경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경성이 주거 문제에 부딪히자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 기구들을 자리 잡은 뒤 일본인을 이주시킬 계획으로 청계천 북쪽까지 세력을 확장하고자 했다. 이에 조선인 건설업자들은 양반들의 넓은 택지를 매입하여 작은 규모의 한옥을 지어 조선인에게 공급했다. 덕분에 일제는 북촌에 진입할 수 없었다. 특히 가회동 31번지가 대규모 한옥 단지로 개발됐는데 바로 오늘날 북촌 한옥마을이다.

백인제 가옥 별당 누마루에서 내려다본 북촌 한옥마을

백인제 가옥 별당 누마루에서 내려다본 북촌 한옥마을

양반들의 마을로 알려졌던 북촌이지만 크지 않은 한옥들이 오밀조밀 들어앉아 있다. 지금 북촌에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주택이 별로 없다. 가회동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고택은 윤보선 가옥이지만 이곳은 후손들이 실제로 생활하고 있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당시 저택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곳은 백인제 가옥뿐이다.

소슬대문을 들어서면 꽤 넓은 행랑이 나타나고 중문을 통해 사랑채와 안채로 드나들 수 있다.

소슬대문을 들어서면 꽤 넓은 행랑이 나타나고 중문을 통해 사랑채와 안채로 드나들 수 있다.

애초에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이완용의 조카로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었다. 그는 1913년부터 갖은 정성을 들여 집을 짓고 10여 년을 이 집에서 살았다. 그 후 이 집의 운명은 첫 주인의 정체성과는 사뭇 달라졌다. 새 주인이 된 최선익은 1932년 조선중앙일보사를 인수하여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한 이로, 이 신문은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결국 폐간에 이르렀다.

집안 곳곳에 백인제 가와 관련된 소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안채 안방에 놓인 백인제와 최경진의 결혼사진

집안 곳곳에 백인제 가와 관련된 소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안채 안방에 놓인 백인제와 최경진의 결혼사진

백인제가 주인이 된 건 1944년의 일이었다. 그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3.1만세운동 당시 10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힘겹게 경성의학전문학교로 돌아와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럼에도 일제가 의사면허증을 발급하지 않아 총독부 병원에서 2년간 일한 다음에야 면허증을 받게 됐다. 집을 매입할 당시 그는 이미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사랑채 대청마루에서는 유리를 끼운 문을 통해 정원을 조망할 수 있다.

사랑채 대청마루에서는 유리를 끼운 문을 통해 정원을 조망할 수 있다.

그는 이 집에서 네 자녀와 처가 가족까지 다함께 생활했는데 1950년 7월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이후 백인제의 아내 최경진은 남편이 돌아오리라 믿으며 이 집을 지키다가 2009년 서울시에 소유권을 이전했다. 서울시는 이 가옥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하고, 2015년 역사가옥박물관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시는 남성과 여성의 공간인 사랑채와 안채의 각 방을 실제와 유사하게 연출하여 전시하고 있다.

북촌박물관 골목으로 몇 걸음 올라가면 백인제 가옥이 나온다.

북촌박물관 골목으로 몇 걸음 올라가면 백인제 가옥이 나온다.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를 지나 가회동 주민센터와 북촌박물관 사잇길로 들어서면 백인제 가옥이 드러난다. 화강암 계단으로 이어지는 솟을대문 앞에 서니 이 집의 역사가 영화처럼 펼쳐졌다. 예약을 하면 내부까지 관람할 수 있는데 평일 오전이라 단 두 사람이 가이드투어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호젓하게 곳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사랑채가 위엄있고 당당하다.

중문을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사랑채가 위엄있고 당당하다.

중문을 들어서면 넓은 정원을 끼고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키 작은 화초들이 옹기종기 꽃을 피운 정원에 나무 몇 그루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구불구불 오솔길을 따라 징검다리처럼 놓인 돌을 밟으며 사랑채 별당에 들어섰다. 남성들의 친교 공간이었던 별당 누마루에서 북촌이 환히 내려다보였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이 집은 우리 전통과 일본식이 다양하게 조합돼 있다. 예를 들어 마루의 경우, 안채의 대청과 툇마루는 전통적인 우물마루인 데 반해 사랑채는 모두 일본식 장마루를 깔았다. 사랑채 대청 별당 누마루처럼 역시 유리를 끼운 문으로 정원을 조망할 수 있다.

안채 뒷마당과 별당채

안채 뒷마당과 별당채

이밖에도 붉은 벽돌과 타일 등이 곳곳에 사용됐다. 안채와 사랑채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일반적인 한옥과 달리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온돌로 난방하는 한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층 공간이 사용되었다는 점도 독특한 요소였다.

벽면에 수복(壽福)과 수부다남(壽富多男), 태극문양이 장식되어 있는 안채에는 독특하게 이층 공간이 있다.

벽면에 수복(壽福)과 수부다남(壽富多男), 태극문양이 장식되어 있는 안채에는 독특하게 이층 공간이 있다.

무엇보다 이 집에서 우리나라 근대기 상류층의 생활상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안채 대청에 들어섰을 때 안방과 건넌방을 분리한 분합문이 인상적이다. 문을 들어 올려 걸쇠로 고정하면 햇빛이 고스란히 들어오고 바람이 살랑이며 드나들었다. 또한 문을 들어 올리면 모든 것이 어머니의 시야에 들어왔다. 자녀들은 어머니로부터 보호를 받는 동시에 바르게 행동해야 했다. 그 자체가 훈육이었다.

사랑채 대청마루 분합문은 들어 올릴 수 있어서 침실과 한 공간처럼 이어진다.

사랑채 대청마루 분합문은 들어 올릴 수 있어서 침실과 한 공간처럼 이어진다.

북촌 주민 신달자는 시 ‘백인제가옥’에서 ‘…그렇게 무지한 일제강점기의 창 칼 부딪는 소리 속에 / 한옥으로 서서 백 년을 넘어 / 지금도 아름다운 백인제 가옥…’이라고 노래했다. 아름다웠다. 집을 지은 이의 친일 행적과 조선말 상류층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집은 아름다웠다. 구석구석 백 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집은 시인의 표현처럼 ‘한옥의 이름으로 살아 낸 시대의 부스러기를 털어 내고’ 있다.

집이 그러하건대 사람의 역사 또한 시대의 부스러기를 털어내야 하지 않을까. 백 년의 역사, 그 부침을 간직한 채 늙어가고 있는 백인제 가옥에서 ‘털어내야 할 시대의 부스러기’가 무엇인지를 새삼 묻게 된다. 물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적인 건 털어내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을 온전히 식별하는 힘일 것이다.

■ 백인제 가옥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7길 16(가회동 93-1)
○ 해설 예약 : 공공서비스 예약에서 선착순 신청
평일 4회(10:00, 11:00, 14:00, 15:00), 주말 및 공휴일 5회(10:00, 11:00, 14:00, 15:00, 16:00) 약 30분 해설
○ 자유 관람 : 09:00 ~ 18:00
○ 관람대상 : 제한없음(어린이 및 노약자 방문시 보호자 동반이 필요합니다)
○ 관람요금 : 무료
○ 휴 관 일 : 1월1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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