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리네" 고맙고 아픈 태극기史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19.03.12. 11:46

수정일 2019.03.12. 13:47

조회 1,989

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이순신장군 상 너머 깨끗하게 그린 진관사 태극기가 붙어있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 네가 보앗나냐, 죽온 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 오늘 다시 보았네 /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 이천만 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 만세만세 다시 산 대한국(大韓國)……” 1919년 11월 27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태극기’라는 제하의 시 앞부분이다.

2009년 5월, 해체 복원공사를 시작한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벽에서 보퉁이 하나가 발견되었다. 물건을 싼 보자기는 귀퉁이가 불에 타고 얼룩져 낡았지만 분명히 태극기였다. 그 안에는 1919년 6월에서 12월 사이에 발행된 신문기사와 여러 건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3·1만세운동 이후를 전하는 ‘조선독립신문’과 ‘자유신종보’,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신채호가 발행한 ‘신대한’ 등 무척이나 귀하고 드문 자료였다.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들을 꾸짖는 경고문도 있었다.

태극기에 싸여 발견된 경고문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태극기에 싸여 발견된 경고문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누가 왜 법당의 벽을 파고 숨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낡고 때 묻고 찢긴 태극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일장기 위에 청색을 덧칠해 태극 문양을 만든 태극기라는 점이었다. 만든 이의 의분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태극기였다. 그 후 십 년 동안의 연구 결과 밝혀진 것은 이 보퉁이를 벽에 감춰 보관한 이가 백초월 스님으로 보인다는 사실뿐이다.

20대에 이미 큰스님 반열에 올랐던 스님은 독립운동을 지원하느라 20년 동안 숱한 체포와 구금을 당하고 고문을 받아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또 다시 독립운동 자금 건으로 수감되었던 청주교도소에서 1944년 순국한 스님의 시신은 현재 자취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에 전시중인 ‘진관사 태극기’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에 전시중인 ‘진관사 태극기’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이 진관사 태극기를 들고 입장했다. 그날 광화문 광장에는 셀 수 없는 태극기가 나부꼈다. 광장 주변 건물 외벽에도 대형 태극기들이 설치되었다. 정부서울청사 별관(외교부)에는 ‘김구 서명문 태극기’가 붙었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라는 문장에는 여전히 결의가 쟁쟁했다.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린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태극기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린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태극기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맞은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붙은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에는 1940년 김구 등이 주도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으로 창설된 광복군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다른 부대로 떠나는 동료에게 전하는 애틋한 석별의 정과 광복을 향한 열정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 태극기 곁으로는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1942년)’가 나란히 붙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와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가 함께 설치되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와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게양 태극기’가 함께 설치되었다

교보빌딩에는 1919년 충남 당진지역 4·4독립만세 운동 때 사용한 것으로 독립운동가 남상락의 부인 구홍원이 직접 수를 놓아 만든 남상락 자수 태극기(등록문화재 386호)가 설치되었고, 두 종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1923년, 1940년대 전후)’와 진관사 태극기도 광장을 둘러쌌다. 정부서울청사에는 현재의 태극기가 붙었다.

발길을 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태극기들이 낯설지만 반가웠다. 저마다 다른 모습의 태극기들이 들려주는 저마다 다른 사연들이 모두 고맙고 아픈 우리 역사였다. 각각의 역사도 감동이고 저마다 다른 형태 역시 감동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그 신산한 순간들이 휘몰아오는 듯 불시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강북구에서는 제100주년 3·1절을 맞아 ‘태극기 100년사 길’을 조성했다

강북구에서는 제100주년 3·1절을 맞아 ‘태극기 100년사 길’을 조성했다

그날 태극기는 광화문만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었다. 특히 광복군 묘역과 이준 열사, 여운형, 손병희의 묘소와 4·19묘지 등이 있는 강북구는 제100주년 3·1절을 맞아 지하철 4호선 수유역과 우이동 솔밭공원 일대를 ‘태극기 100년사 길’로 꾸미기도 했다. 현재 문화재로 등록된 11종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극기까지 모두 12종 276개가 게양되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국기부터 한국전쟁 당시의 태극기까지 백 년의 역사가 거리에 나부꼈다.

정부서울청사 별관(외교부)에 붙었던 김구 서명문 태극기

정부서울청사 별관(외교부)에 붙었던 김구 서명문 태극기

백 년 전 기미년 3월의 만세운동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백주년 기념 역시 하루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때 온갖 고초를 겪으며 선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들을 온전히 기억하고 오롯이 되살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정한 기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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