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근대 교육 발자취를 따라 걷는 정동길

정명섭 정명섭

Visit771 Date2019.01.28 16:38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전경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전경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23)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경성재판소를 활용 중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오른쪽 주차장 입구 쪽으로 나오면 길가에 높고 번쩍거리는 건물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작고 아담한 건물 하나를 굽어보고 있다. 빌딩의 철과 유리에 대비되는 돌과 벽돌로 만든 이 건물의 정체는 바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다.

배재학당은 1885년 아펜젤러 목사에 의해 세워졌다. 가정집 벽을 허물고 만든 교실에 2명의 학생이 입학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고종이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이 적힌 현판을 하사했다.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을 서양의 언어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국가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는 곳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가정집에서 서양식 단층 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학생들이 계속 늘어나서 공간이 부족해졌다. 결국 1916년에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된 건물을 새로 짓게 된다. 그러면서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시인 김소월을 비롯해서 한글학자 주시경,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등을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지식을 쌓고 세상으로 나아갔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내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내부

배재학당을 승계한 배재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1984년 강남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현재는 배재학당의 동관만이 남았고, 역사박물관으로 변신한 상태다. 작은 종이 매달려있는 현관을 지나서 내부로 들어가면 배재학당의 역사와 설립자인 아펜젤러 목사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울러 예전 교실을 그대로 복원해놨고 한쪽 구석에는 당시 입었던 교복과 교모가 있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썼던 피아노와 타자기, 인쇄기 등을 볼 수 있다. 규모는 비록 크지 않지만 배재학당이 존재했던 시기의 역사를 알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학교 건물답게 외관은 단출하고 밋밋한 편이라 1928년에 지어진 경성재판소의 화려한 현관과 위압적인 외관과 여러모로 대비가 된다.

이 건물의 특징을 꼽자면 정밀한 좌우 대칭이다. 현관을 기준으로 좌우측으로 두 개씩 짝을 지은 네 개의 창문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위쪽으로는 세 개의 작은 창문이 균형감 있게 자리 잡고 있다. 3층은 다락으로 되어 있는데 세 개의 다락창이 역시 일정한 간격으로 만들어졌다. 심지어 가운데 다락 창에는 네 개의 창틀이 붙어있고, 양쪽은 세 개의 창틀을 만들어서 중심과 좌우측의 무게감을 주었다. 세 개의 다락 창 사이에는 두 개의 굴뚝이 뿔처럼 나와 있는데 역시 적당한 간격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현관과 좌우측 출입구 돌계단의 난간인 소맷돌이다. 별다른 장식 없이 바깥쪽으로 부드럽게 휘어진 것은 학생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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