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속에 가리어진 대한제국 ‘황제의 품격’

정명섭

Visit791 Date2019.01.14 14:51

환구단

환구단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21) 환구단

서울광장에서 웨스틴조선호텔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큼지막한 대문이 나온다. 굳게 닫혀있는 그 문의 옆으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나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면 팔각형의 탑처럼 생긴 3층 한옥 건물과 중국풍의 문들이 보인다. 별 생각 없이 보면 호텔의 정원 장식쯤으로 보이고, 실제로 일본은 그렇게 보이기를 바랐다. 이곳은 1897년, 아관파천을 끝내고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이 추진한 야심찬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1년간의 피난 아닌 피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고종은 무너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그리고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을 허물고 그곳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것은 제후국에서 황제국으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다름 아닌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 때 간혹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는 했다. 하지만 유교적 명분론을 내세운 사대부들의 반대에 세조 이후 더 이상 하늘에 제사를 지내지 못했다.

환구단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기단 위에 원형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고종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면서 환구단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장소가 된다. 1899년에는 오늘날 남아있는 환구단을 짓고, 각종 신들의 신위판을 모셔놓는다. 그리고 1902년에는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 즉 돌로 조각한 북을 가져다놓는다. 이렇게 신성하기 그지없는 공간이었던 환구단이 사라지게 된 것은 1910년 일본에 의한 강제 병합이었다. 대한제국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던 일본은 이곳에 호텔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환구단을 허물어버린다. 그리고 황궁우는 그대로 나눴는데 호텔 투숙객들의 눈요기 거리로 삼기 위해서였다.

환구단 난간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

환구단 난간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

환구단은 대단히 정교하게 지어졌는데 특히 기단의 난간에 세워진 해태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잘 조각되어 있다. 난간을 받치는 돌기둥에도 원형의 고리가 서로 물고 물린 채 이어지도록 조각되어 있는데 마치 자동차 회사 중의 하나인 아우디의 로고와 비슷하다. 석고단에 새겨진 용조각 역시 더 없이 역동적인데 새로 태어난 제국이 활기차기를 바라는 마음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야간에도 조명을 켜놔서 돌아볼 수 있는데 주변 건물들 조명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한때 제국의 상징이었다가 호텔 정원의 장식품이 되었고, 지금은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는 환구단의 운명은 격동의 근현대사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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