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역~탑골공원 일대가 삼일대로라 불리는 까닭

시민기자 조시승 시민기자 조시승

Visit938 Date2019.01.09 16:21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 홍보탑(좌), 3·1운동 테마역사관인 안국역에 세워진 100년 기둥(우)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3·1운동 100주년 기념 홍보탑(좌), 3·1운동 테마역사관인 안국역에 세워진 100년 기둥(우)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3․1운동은 일제강점에 저항하여 독립의지를 온 세계에 피력한 대규모 민족운동이다. 우리 겨레는 이 운동을 1919년 4월 11일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갔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12월 20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앞에 ‘100주년 기념 홍보탑’을 세웠다. 이 홍보탑은 중국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모티브로 했다. 상해 현지에서 생산된 적색벽돌을 사용하고, 출입문도 시간의 흔적을 질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홍보탑 상단에는 3․1운동의 비폭력 평화정신과 임시정부의 민주주의 가치를 계승하는 의미로 100, 태극, 악수, 불꽃 등을 형상화한 엠블럼과 슬로건을 표시했다.

서울시에서는 ‘삼일대로’를 역사 상징가로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안국역과 탑골공원 사이, 삼일대로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서울시는 이곳을 ‘3․1시민공간’으로 조성 중이다. 3․1운동의 7대 핵심거점을 선정, 연결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고, 각 거점 사이를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오는 삼일절 완공 예정이다.

7대 거점은 ▲안국역 5번 출구 앞 ▲독립선언문 배부 터(현 수운회관 앞) ▲천도교 중앙대교당 ▲서북학회 터(현 건국주차장) ▲태화관 터(현 종로구 공영중차장) ▲탑골공원 후문 광장 ▲낙원상가 5층 옥상이다.

3.1운동 시민공간으로 조성될 7대 거점

3.1운동 시민공간으로 조성 중인 7대 거점

그런데 왜 삼일대로를 역사 상징가로로 선정했을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1운동의 준비와 전개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3․1운동 준비 초기에는 천도교, 기독교 장로교계와 감리교계 등 종교계와 학생들이 제각각 독자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거족적이고 일원화된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서로 통합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천도교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1919년 조선의 인구는 1,800만 명이었고 천도교인이 300만명, 기독교 35만, 불교는 20여 만명에 불과하였다니 당시 천도교의 위세를 알 수 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삼일대로 경운동에 터잡고 있었다.

안국역 5번 출구 앞 바닥, 3·1운동의 전개과정을 시간별로 구성해 놓았다

안국역 5번 출구 앞 바닥, 3·1운동의 전개과정을 시간별로 구성해 놓았다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를 지나 북촌박물관 앞 가회동에는 천도교 3대교주 ‘손병희집터’가 있다. 이곳은 3․1운동 준비의 실질적 총책임자 최린이 손병희를 수시로 찾아서 상의하고 보고했던, 3․1운동 준비 총본부로서 역할을 했던 곳이다. 거사 전날인 2월 28일 저녁, 민족대표 33인 중 20여 명이 마지막 준비모임을 가진 곳이다. 한용운이 기초한 독립선언서 2만1,000매의 인쇄는 천도교 소속의 보성사(현 조계종) 경내에서 하였다.

인쇄된 독립선언서는 인근 보성사 이성수 사장 집에 보관되었고 다음날 배포를 한 곳도 이 곳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이다. 바로 인근의 인사동 ‘태화관’에서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민족대표 33인(실제 모인 인원은 29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 조선이 독립국임을 만방에 선포하였고, 당일 오후 3시를 기해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만세 물결이 이곳 삼일대로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또, 3․1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학생들의 학교도 모두 이곳 삼일대로에 인접해 있다. 일제시대 초기에는 식민지 우민화정책을 극복하기 위해 우국지사들이 교육기관을 많이 설립하였는데 특히 삼일대로의 시발점인 북촌지역에 많았다. 애국지사들은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학생들에게 근대 지식을 보급하였다. 경성고보(현 경기고), 중앙고보, 보성중 등 이들 학생들은 점심시간을 마치고 탑골공원에 속속 집결하여 만세운동에 주도적 활동을 하였다.

학생들은 전국팔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사람을 동원하는 데도 주요 역할을 했다. 1919년 1월, 중앙고보 출신 동경 유학생 대표 송계백은 모교를 방문하여 교장 송진우에게 동경 유학생의 거사 준비 상황을 알리고, 학교 숙직실에서 동경의 2·8 독립 선언서 초안을 전달하는 등 주요 역할을 담당했다. 탑골공원 맞은편 승동교회 지하에서는 당시 경성의 각 전문학교 대표자 20여 명이 모여 3․1운동의 지침과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33인의 3·1 독립선언이 선포되었던 태화관 앞 유적지 기념석

33인의 3·1 독립선언이 선포되었던 태화관 앞 유적지 기념석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현재 삼일대로는 3.1시민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선, ‘안국역 5번 출구 앞’ 바닥에는 3․1운동 전개 과정을 연도별 시간순으로 구성한 타임라인을 설치한다. ‘독립선언문 배부 터’인 수운회관 앞과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스토리가 있는 역사공간으로 조성된다. 3․1운동 이후에도 다양한 민족운동 집회 장소로 쓰인 이곳 담장을 허물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도산 안창호선생 등 독립운동가가 설립한 ‘서북학회 터’에는 문화쉼터를 조성하고 3․1운동의 기초가 된 민족계몽운동의 산실을 되살린다. 또 1919년 당시 삼일대로 일대 모형을 설치해 옛 도시 풍경을 느낄 수 있게 한다.

3.1시민공간으로 조성 중인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후 모습

3.1시민공간으로 조성 중인 ‘천도교 중앙대교당’ 전후 모습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터’는 3․1독립선언 광장으로 조성, 이곳이 독립을 향한 민족의 의지가 발현된 시발점임을 알린다. ‘탑골공원 후문 광장’ 바닥에는 3·1운동 만세물결을 상징하는 발자국 모양이 표현된다. 주차장으로 단절된 삼일대로 보행길도 정비한다. ‘낙원상가 5층 옥상’에는 전망대를 조성, 당시 흔적을 되살리며 기억할 수 있는 쉼터로 변모시킨다.

시민들로부터 자발적 기부금도 받고 있다. 한 구좌당 3만1,000원의 기부금을 낸 시민 이름은 삼일대로 공원의 보도블록·벤치 등에 새겨진다. 이름이 새겨지는 곳은 탑골공원 후문광장, 서북학회 터, 천도교 중앙대교당 앞, 운현궁 앞 등 5군데 공원 내 설치되는 걸상과 바닥재이다. 본인 외 기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새기는 것도 가능하다. 기부금 관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사람숲’ 사무국에 전화(02-766-0909) 또는 이메일(saramforest100@gmail.com)로 문의하면 된다.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동일조건변경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