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추억을 소환하는 ‘서울의 오래가게’ 5곳

서울사랑

Visit1,071 Date2019.01.10 15:26

개미슈퍼

개미슈퍼

긴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기억의 본성이라지만, 긴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있다. 바로 혀끝에서부터 떠오르는 오래된 맛의 기억이다. 변함없는 맛으로 추억을 소환하는 오래가게를 찾았다.

개미슈퍼 | “100여 년 전 구멍가게, 이제는 서울 100년 슈퍼” since 1900

하나의 기업이나 가게를 100년 이상 이어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흥망성쇠에서 살아남아 ‘100년’이라는 의미 있는 숫자를 얻은 곳 중 서울역 뒷골목에 자리한 ‘개미슈퍼’는 단연 으뜸가는 오래가게로 손꼽힌다. 차효분 사장은 이곳의 다섯 번째 주인. 개미슈퍼 맞은편 이층집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이 가게를 수시로 드나들던 아이가 5대 대표가 됐다. 정확한 개업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1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장소를 지키는 슈퍼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던 곳에서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인근 게스트하우스 손님부터 지도를 보고 찾아오는 이들까지, 손짓 발짓은 물론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하나라도 더 사 가려 한다고.

“외국인 관광객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어요. 그 사진들을 벽에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젠 더 붙일 자리도 없네요.” 손님들을 위한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미슈퍼의 주요 판매 물품에는 영문이 함께 표기되어 있다. 서울로7017에서도 가까워 일부러 이곳을 들르는 사람도 많다.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편의점 사이에서 꿋꿋하게 ‘서울의 100년 슈퍼’ 입지를 지키고 있는 개미슈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 작은 구멍가게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욱 높아진다.

주소 : 용산구 청파로85가길 31 , 문의 : 02-714-3383

개미슈퍼

개미슈퍼

다락 | “그 자리에서 뚝딱, 즉석 떡볶이의 맛” since 1981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는 문부터 나뭇결이 살아 있어 예스러운 느낌이 물씬 난다. ‘오래된 가게’ 분위기는 안으로 들어가서도 마찬가지. 좌석마다 자리를 구분하는 것 역시 짙은 색 나무 등받이인데, 마치 통나무집에 들어온 것 같은 포근함이 전해진다. 달인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적이 있을 만큼 ‘다락’은 즉석 떡볶이로는 마포구, 아니 서울 안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명소다.

쟁반과 전골, 두 가지 방식으로 떡볶이를 제공하며 기본 재료 외에도 떡, 튀김, 쫄면, 라면 등 원하는 사리를 추가로 선택해 곁들일 수 있다. 손님들이 손 글씨로 삐뚤빼뚤 원하는 메뉴를 메모지에 적어 주인에게 건네 주문하는 것이 이곳의 묘미.

가게 벽에는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손님들의 이름과 방문 날짜가 빼곡하게 쓰여 있다. 오래된 가게가 그저 세월만 지나온 게 아니라 푸짐하지만 저렴하고, 소박하지만 정겨운 추억의 맛을 나눠왔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주소 : 마포구 도화2길 8 , 문의 : 02-706-0519

다락

다락

김용안과자점 | “자꾸만 손이 가는 바삭바삭 ‘한국형 과자’의 진수” since 1967

‘김용안과자점’ 간판에는 작은 글씨로 ‘추억의 생과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생과자를 일본 전통 과자 센베이와 혼동하는 이가 있는데, 둘은 엄연히 다르다. 이곳의 과자는 창업자인 김용안 대표가 일제강점기에 일본 과자 맛이 궁금해 따라 만든 것이 시작이다. 제조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형 과자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밀가루 한 포대로 과자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6시간 이상이나 걸려요. 겨울철이나 명절에는 수요가 두 배 이상 많아지는데, 그땐 하루 대부분을 기계 앞에서만 보내야 할 정도로 바쁘죠.” 김용안 대표의 뒤를 이어 과자점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 김형중 대표는 아버지의 이름을 건 가게에 오래가게라는 특별한 의미를 하나 더 부여받은 이 장소가 언제까지나 추억의 맛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번거롭고 고된 제조 과정 때문에 과자 전문점 만나기가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김용안과자점은 반세기 이상 묵묵히 같은 자리를, 같은 방식을 고수하며 과자를 만들고 있다. 추억이 그리워질 때면 떠오르는 맛이 이곳에 가면 있다.

주소 : 용산구 한강대로 155 , 문의 : 02-796-6345

김용안 과자점

김용안 과자점

용산방앗간 | “기꺼이 수고스럽게 일하는 한결같은 방앗간” since 1984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요란한 진동과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가 온 동네를 휘감는다. 이 광경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곳, 바로 경의중앙선과 경춘선 화물열차가 통과하는 용산구 백빈 건널목이다. 이 건널목을 지나면 새벽 일찍부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방앗간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로 34년째 기찻길 옆에서 방앗간을 운영 중인 박장운 대표는 떡을 찌고, 고추를 빻고, 기름을 짜는 등 모든 것을 전통 방식대로 하고 있다. 개업한 시기는 1984년이지만, 떡 만드는 일을 시작한 건 그의 나이 열여섯 살 때다. 갓 상경해 우연찮게 배운 일이 ‘용산방앗간’의 현재를 일군 셈이다. 용산방앗간에서는 기다란 가래떡을 하나하나 손으로 끊어 길이를 맞추고 상자에 담는 진풍경이 매일 펼쳐진다. 특히 떡 주문이 밀려드는 명절에는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양의 떡을 만든다고.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하나하나 만드는 제품과,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품의 가치는 분명 다를 것이다.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만드는 떡. 하지만 손님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이 일을 멈추지 못한다.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촌로29길 31 , 문의 : 02-798-6289

용산방앗간

용산방앗간

독다방 | “청춘의 이정표가 되어주던 그때 그 공간” since 1971

1971년 처음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47년이 됐다. 사람 나이로 치면 불혹. 이 나이라면 겪어봤을 희로애락이 ‘독다방’에도 스며 있다. 음악다방으로 시작한 이곳은 7080 세대에겐 아지트 같은 장소다.

숱한 이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문인도 찾았다고 알려진 독다방은 33년째 되던 해에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 놓였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은 것. 잠정적으로 운영 중단을 결정했지만, 오랜 시간 신촌의 상징 같은 장소를 영원히 버릴 수가 없었다.

당시 청춘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던 공간은 세련미를 갖춘 고전적 카페로 탈바꿈했다. 여기에 요즘 학생들의 공부 방식을 반영한 듯 도서관 열람실처럼 좌석을 배치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창문 옆 벽에 붙여놓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사진과 시구 등 어느 것 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외에도 신촌에서 청춘을 보낸 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소품이 가득하다. 과거를 버리지 않되, 현재와 어우러지도록 재구성한 장소. 온고지신 자세가 독다방에 녹아 있다.

주소 : 서대문구 연세로 36 8층 , 문의 : 02-363-1222

독다방

독다방

글 제민주 사진 홍하얀
출처 서울사랑 (☞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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