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편해진 경복궁 나들이…영추문 43년 만에 개방

시민기자 박분

Visit1,093 Date2019.01.03 13:14

2018년 12월 6일 개방된 경복궁 영추문

2018년 12월 6일 개방된 경복궁 영추문

“연추문 드리다라 경회남문 바라보며 하직고 믈러나니 옥절이 앞에 셧다”
송강 정철(1536∼1593)이 노래한 관동별곡에는 경복궁 ‘연추문’이 나온다. 연추문은 영추문의 또 다른 이름으로 경복궁 담장에 나있는 큰 문을 가리킨다. 경복궁 서쪽 담장을 따라 청와대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보이는 큰 문이 영추문이다.

지난 12월 6일, 영추문이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43년 만이다. 영추문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돼 고종 때에 이르러 재건했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됐다가 197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하지만 그 이후 청와대 경호를 맡던 수경사가 주둔하면서 오랫동안 출입이 금지됐던 곳이다.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은 사대문 중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다.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은 사대문 중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다.

경복궁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에 세워진 대문은 총 4개다. 남쪽의 광화문을 비롯해 북쪽의 신무문, 동쪽의 건춘문, 서쪽의 영추문 등이 경복궁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궁문들이다.

이번 영추문 개방으로 경복궁 사대문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대문에서 중심이 되는 문은 광화문이다. 궁궐의 남쪽에 위치한 남문인 광화문은 ‘나라의 위엄과 문화를 널리 보여주는 문’이라는 뜻의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유래됐다. 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에 사대문 중 규모와 격식 면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이다. 특히 하나의 홍예문을 가진 다른 문들과 달리 광화문은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의 홍예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도록 했다. 광화문은 정문인 까닭에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다. 그런 이유로 광화문은 2010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사대문 중 건립역사가 가장 짧다.

경복궁의 동쪽 문인 건춘문.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때 재건됐다.

경복궁의 동쪽 문인 건춘문.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때 재건됐다.

건춘문은 경복궁의 동쪽 문으로, 영추문의 반대편에 있다. 동양철학인 음양오행에서 동쪽은 봄을 상징하고 있어 ‘봄을 세운다’는 뜻으로 건춘문이라 이름 지었다. 겹처마이고 지붕마루에는 취두, 용두, 잡상 등이 얹혀 있다.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로 오랜 세월 폐허 상태에 있다가 1865년(고종 2)에 경복궁과 함께 재건됐다. 고종 때 재건된 모습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어 신무문과 함께 사대문 중 건립역사가 길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재건했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재건했다.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쪽 문으로, 북방의 현무에서 이름을 따왔다. 건축구조와 규모는 건춘문, 영추문과 같다. 신무문 또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재건했다. 홍예문을 하나 내어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했는데 신무문이 위치한 북쪽은 음기가 많다고 하여 평소에는 닫아두었던 문이다.

영추문은 경복궁의 서쪽 문으로, 동쪽의 건춘문과 짝을 이룬다. 영추(迎秋)라는 이름이 말하듯 ‘가을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녔다. 영추문은 건춘문, 신무문과 함께 고종 2년에 중건했지만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석축이 무너져 철거됐다. 영추문 앞으로 다니던 전차의 진동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후 1975년에 복원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각 문마다 출입하는 사람들이 달랐던 점도 흥미롭다. 정문이자 남쪽 문인 광화문은 임금의 행차나 사신들이 출입한 반면, 신무문은 비상시나 왕의 비밀 행차 등의 특별한 때만 문을 열었다.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건춘문과 영추문은 출입하는 사람이 아예 정해져 있었던 듯하다. 동쪽 문인 건춘문으로는 왕실의 종친들이 주로 출입했고, 서쪽 문인 영추문으로는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출입했다고 한다.

영추문 천장에 그려진 백호 그림

영추문 천장에 그려진 백호 그림

사대문 천장에 그려진 동물 벽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벽화들은 동서남북, 각기 다른 모습들로 경복궁의 출입문임을 상징하고 있다. 남문인 광화문에는 주작이 그려져 있고 북문인 신무문에는 현무가, 동문인 건춘문에는 청룡, 서문인 영추문에는 백호가 각각 그려져 조선왕조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고 있다.

영추문 근처에 자리한 경회루. 눈 쌓인 연못가에 자리한 경회루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영추문 근처에 자리한 경회루. 눈 쌓인 연못가에 자리한 경회루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개방된 영추문을 넘나드는 시민들의 모습이 자유롭다. 영추문 가까이에 있는 경회루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잦다. 눈 쌓인 연못가에 자리한 경회루의 시린 겨울 풍경을 사진에 담기도 한다.

영추문이 개방되면서 경복궁 출입도 한결 수월해졌다. 영추문 바깥 동네인 통의동과 효자동에서도 이제 영추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입장할 수 있다. 아울러 경복궁에서 서촌마을로 알려진 통의동 일대 마을과의 접근도 훨씬 쉬워졌다. 통의동 일대에는 도시락카페로 유명한 통인시장과 오래된 한옥골목 등 볼거리가 많은 동네다.

경복궁에서 신무문을 바라보면 청와대가 눈에 들어온다.

경복궁에서 신무문을 바라보면 청와대가 눈에 들어온다.

영추문에서 경복궁 담장 따라 청와대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담장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북문인 신무문이 나타난다. 경복궁에서 신무문을 바라보면 홍예문을 통해 청와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 연유에선지 신무문 주변에는 외국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이곳은 2006년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경복궁의 북쪽 끝에 자리한 집옥재. 고종황제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됐다.

경복궁의 북쪽 끝에 자리한 집옥재. 고종황제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됐다.

신무문 가까이 아담한 누각과 집 한 채가 시야에 들어온다. 경복궁의 북쪽 맨 끝에 자리한 집옥재이다. 1891년 건립된 경복궁 집옥재는 고종황제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집옥재 또한 청와대와 근접거리에 있어 집옥재 또한 오랫동안 닫혀 있었으나 신무문이 개방될 당시 함께 개방됐다. 현재 집옥재는 도서와 관련 유물을 비치하여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경복궁 담장을 따라 걷는 사람들

경복궁 담장을 따라 걷는 사람들

궁궐 밖, 경복궁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커다란 궁문과 마주한다. 경복궁과 함께 고통을 함께 나누었던 사대문이 영추문 개방으로 새롭게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뚫린 경복궁의 사대문을 걸으며 이제 궁궐의 문이 더 이상 수난을 겪지 않기를, 정당한 이유 없이 닫히는 일도 없기를 바라본다.

■ 경복궁
○위치 : 서울 종로구 사직로 161 ☞ 찾아가는 길
○관람시간
-1월 ~ 2월 : 09:00~17:00(입장마감은 16:00)
-3월 ~ 5월 : 09:00~18:00(입장마감은 17:00)
-6월 ~ 8월 : 09:00~18:30(입장마감은 17:30)
-9월 ~ 10월 : 09:00~18:00(입장마감은 17:00)
-11월 ~ 12월 : 09:00~17:00(입장마감은 16:00)
○홈페이지 : http://www.royalpalace.go.kr/
○문의 : 02- 3700 – 3900~1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