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발견으로 밝혀진 '방통대 역사기록관'의 진실

정명섭

발행일 2018.12.31. 14:07

수정일 2018.12.31. 14:07

조회 3,674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한국방송통신대 역사기록관)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한국방송통신대 역사기록관)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9)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대학로를 걷다보면 낯설고 이질적인 2층 건물과 마주치게 된다. 이 건물의 정체는 조선총독부 산하의 중앙시험소다. 이곳에서는 각종 공업 관련 실험 및 연구가 진행되었다. 방송통신대 본부 안에 있는 이 건물은 몸통이 하늘색이고 고풍스러운 첨탑까지 있어서 눈에 확 들어온다. 거기다 먼발치서 보면 벽돌이나 돌로 쌓은 것처럼 눈속임을 했지만 가까이 가보면 나무로 만든 목조건물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가까이서 보면 어떤 식으로 속임수를 썼는지 알 수 있는데 널빤지를 마치 잘 다듬은 돌을 쌓아놓은 것처럼 붙여놨고, 지붕이 있는 출입구인 포치(porch)에 붙은 장식과 2층 창틀 사이의 벽기둥의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서 석조 건물처럼 만들어 놨다. 거기다 양쪽 끝에 있는 커다란 반원형 창틀과 위쪽의 난간 역시 나무로 만들었으면서 영락없이 석조 건축 양식을 빌려왔다. 지금은 하늘색으로 칠해놓은 탓에 비교적 쉽게 간파할 수 있지만 만약 회색으로 칠해놨다면 대충 봐서는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속임수를 썼을까?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급격한 서구화를 겪는다. 그러면서 건축물 역시 서구의 것을 흉내 내서 짓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전통 건축이 목조인데 반해서 서구의 건축물들은 벽돌과 돌로 지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일본의 건축가들은 재료는 목조를 쓰지만 외형은 서구의 석조 건축물들을 흉내 내는 것들을 만들어냈다. 의양풍(擬洋風) 혹은 화양절충(和洋折衷)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고스란히 대한제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버텨서 우리 곁에 남았다. 그 백 년이 살아남기에 난이도가 높은 시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곳은 한 때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가 아니라 대한제국 시기인 1907년에 만들어진 공업전습소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12년에 공업전습소가 있던 자리에 중앙시험소가 들어오면서 혼돈이 생긴 것이다. 이런 오류는 2008년에 와서야 수정되었다. 중앙시험소는 광복 이후 상공부 산하의 중앙공업연구소로 개편되면서 명맥을 유지했고, 현재는 방송통신대학교 역사관으로 이용 중이다. 내부에는 우체국과 각종 사무실과 회의실, 그리고 역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방통대 역사기록관 건물 앞 모습(좌), 뒷 모습(우)

방통대 역사기록관 건물 앞 모습(좌), 뒷 모습(우)

나는 늘 건물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뒤로 돌아가라는 말을 한다. 건물 뒤편에는 앞에서는 볼 수 없는 과거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관의 뒤편에는 뒤쪽에 신축된 건물과 이어지는 2층의 오버 브리지(Over bridge)가 있다. 흡사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중앙시험소였다가 중앙공업연구소가 되고, 역사관으로 변모하는 동안 이 건물이 지켜봤던 역사가 떠오른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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