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미술관, 예사롭지 않은 외관 속에 얽힌 사연

정명섭

Visit754 Date2018.12.10 16:05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외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외관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6) 남서울미술관

이곳의 정식 명칭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생활미술관이지만 보통은 남서울미술관이라고 부른다. 사실 나도 정식 명칭은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글자 그대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서울 남쪽 지역의 분관이라는 뜻으로 사당역 6번 출구에서 100미터 정도 거리에 있으며, 2004년 처음 문을 열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이게 서울 재발견 코너에 왜 소개되어야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을 백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가면 남서울 미술관은 본래 사당역 근처에 있지 않았고, 미술관도 아니었다. 대한제국은 서구화를 추진하면서 다양한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었고, 그 중 한 곳이 바로 벨기에였다. 1900년, 벨기에 외교관 레온 방카르가 한성에 들어오면서 양국의 외교관계가 시작되었다. 1902년에 접어들면서 레온 방카르는 현재의 회현동에 지상 2층, 지하 1층 크기의 영사관을 짓기 시작해서 1905년에 완공한다.

영사관 건물은 당시 유행하던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붉은 벽돌로 쌓아올렸는데 중간 중간에 화강암을 띠처럼 둘렀다. 2층 치고는 꽤 높은 편이고, 채광 때문인지 창문도 꽤 긴 편이다. 양쪽 측면에 기둥으로 지탱된 발코니 공간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1층과 2층의 기둥머리 모양이 틀리다는 것이다. 2층은 덕수궁의 석조전에서 볼 수 있는 이오니아식의 양머리 형태이고, 1층은 간소한 형태의 도리아식 기둥머리를 하고 있다. 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주요한 특징인 좌우 대칭에 맞춰서 한 가운데 정문 옆에 나란히 창문이 하나씩 있고, 그 옆의 발코니 공간을 받치는 기둥 역시 숫자와 위치가 똑같다는 점을 비춰보면 다소 의외다. 하지만 1층과 2층의 창틀도 조금 다른 점을 감안하면 2층을 다소 볼륨감 있게 보이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대리석이 깔린 내부는 미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바뀌어 있지만 최소한으로 그쳤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부 역시 1층과 2층의 벽기둥의 기둥머리 형태를 외부처럼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을 만들었다. 벽난로와 샹들리에는 별다른 장식 없이 간소한 편이었다.

회현동에 있던 벨기에 영사관이 사당역 근처의 남서울미술관이 된 사연은 우리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단 영사관이 건립된 해에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외교관계가 끊기고 말았다. 영사관 자체는 유지가 되다가 1919년 충무로로 이전하면서 일본 요코하마 생명보험회사의 사옥이 된다. 이후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이용되다가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해군 헌병대가 사용한다. 그러다가 1970년, 상업은행이 정부로부터 불하를 받았는데 이 자리에 사옥을 지을 계획을 세운다.

하마터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 했지만 1982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상업은행 역사관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2004년에 상업은행의 후신인 우리은행이 서울시에 무상 임대를 하면서 남서울미술관으로 탈바꿈한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재개발을 묵묵히 견뎌내고 우리 곁에 남은 것이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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