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에 얽힌 이야기

시민기자 이선미, 김미선, 이난희

발행일 2018.11.30. 13:55

수정일 2020.06.16. 18:43

조회 1,443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가 계속된다.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가 계속된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내년 3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딜쿠샤’라는 낯선 이름만큼이나 알려진 바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06년 오랫동안 ‘귀신 나오는 집’이라고 불릴 만큼 방치되었던 종로구 행촌동의 한 서양식 건물이 그 역사를 되찾았다. 오래전 이 집에서 태어난 미국인 브루스 T. 테일러가 자신의 부모님이 짓고 자신이 태어난 집의 행방을 찾은 것이다. 그의 부탁으로 집을 수소문했던 서일대학교 김익상 교수는 브루스가 전해준 어머니 메리의 자서전 <호박목걸이>를 정독하며 단서들을 찾아 두 달 만에 드디어 딜쿠샤의 신원을 밝혀냈다.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이라는 부제의 이 책에는 그들의 서울생활이 그림 그리듯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듬해 브루스는 66년 만에 서울을 찾았고, 비로소 은행나무골 붉은 벽돌집 이야기가 우리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았던 역사적인 집 ‘딜쿠샤’에 자리한 500년 된 은행나무(좌)와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의 ‘딜쿠샤’라 쓰인 정초석(우)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살았던 역사적인 집 ‘딜쿠샤’에 자리한 500년 된 은행나무(좌)와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의 ‘딜쿠샤’라 쓰인 정초석(우)

2006년 아버지 브루스 테일러와 동행했던 제니퍼 린리 테일러는 201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다시 서울을 찾아 딜쿠샤 관련 자료 30여 건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테일러 가문 자료를 포함한 1,026건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번 전시는 그 가운데 310점이 공개되는 것이다.

4개의 주제로 구성된 전시는 테일러 가문 유물 기증과 테일러 부부의 서울생활(1917-1922),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1923-1942), 그리고 일제에 의한 강제추방(1942-1948)으로 이어지는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딜쿠샤의 안주인 메리 테일러가 남편 앨버트 테일러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호박목걸이가 전시돼 있다.

딜쿠샤의 안주인 메리 테일러가 남편 앨버트 테일러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호박목걸이가 전시돼 있다.

평안북도 운산금광을 운영하던 아버지와 함께 조선에 온 앨버트는 일본 출장길에 순회공연 중이던 영국 연극배우 메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917년 한국으로 와 터를 잡았다. 1923년에는 인왕산 자락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짓고 신혼여행 때 찾았던 인도 딜쿠샤 궁전을 떠올리며 집의 이름으로 삼았다.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메리는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병원에 있었는데 간호사가 황급히 외국인인 메리의 침대에 독립선언서를 감췄다. 고종의 국장을 취재할 기자를 찾는 언론사에 지원한 상태였던 앨버트는 동생 윌리엄을 통해 도쿄의 통신사로 독립선언서를 전달해 조선인의 독립운동을 알렸다. 그 후 앨버트는 AP통신 임시특파원으로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해 해외로 타전했고, 3·1운동을 이끈 이들의 재판과정을 법정에서 취재하기도 했다.

딜쿠샤의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를 담은 책

딜쿠샤의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를 담은 책 <호박목걸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미국이 일본에 경제제재 조치를 하자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은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감금하거나 가택연금했다. 앨버트와 메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듬해 풀려난 부부는 강제추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앨버트는 아버지 조지의 묘소에 소박한 묘비를 세웠다. “주여, 길고 긴 노동이 끝나고 나의 휴식을 벌었나이다.”

1945년 한국이 해방되자 앨버트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 미군정 통역사를 지원하는 등 애를 쓰다가 1948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죽어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평소의 바람대로 메리는 그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의 아버지 곁에 안장했다.

양화진 외국인 묘원의 앨버트 테일러의 묘지

양화진 외국인 묘원의 앨버트 테일러의 묘지

첫눈이 내린 주말,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마침 메리의 손녀 제니퍼도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메리가 썼던 그릇들과 장신구, <호박목걸이> 원고와 실제 호박목걸이를 비롯한 전시품들, 메리의 붓 끝에서 태어난 금강산과 조선 사람들의 초상들, 그들이 사진으로 남겨준 딜쿠샤 안팎 모습들과 앨버트가 금광을 운영했던 강원도 ‘음첨골’의 여러 풍경이 낯선 과거로 사람들을 안내한다. 그러다 앨버트가 AP통신사 임시특파원으로 독립운동에 대해 작성한 기사들 앞에서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한다. 우리 역사의 긴박한 순간들이 거기 있었다.

앨버트 테일러가 AP통신사 임시특파원으로 독립운동에 대해 작성한 신문 기사들

앨버트 테일러가 AP통신사 임시특파원으로 독립운동에 대해 작성한 신문 기사들

가택연금 상태에서 가장 많이 보냈던 딜쿠샤의 벽난로를 재현해 놓았다

가택연금 상태에서 가장 많이 보냈던 딜쿠샤의 벽난로를 재현해 놓았다

무엇보다 전시실에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메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벽난로가 있는 방을 재현해 놓았다. 일본 경찰과 군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점령군처럼 굴었다. 메리는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이 방만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남쪽 창으로는 우리 집으로 다가오는 모든 움직임을 조망할 수 있었고, 서쪽 창으로는 무악재 길과 서대문 형무소 건물과 ‘아리랑’으로 유명한 소나무 언덕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침대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은 남쪽을 바라보는 알코브 속에서 먹고, 서쪽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저녁에는 먹을 것이 있는 경우에 한해 최대한 벽난로에 가까이 다가가 먹었다. 그렇게 내 생활의 패턴을 만들어냈다.”

오늘의 딜쿠샤에서는 메리가 바라보았던 많은 풍경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딜쿠샤가 호젓하게 들어앉았던 곳에는 크고 작은 무수한 집들이 들어서서 옛 사진 속 풍경을 떠올려보기도 쉽지 않다. 서울의 어디도 옛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 드물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제니퍼는 "물건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할머니의 유품과 가문의 자료를 기증했다고 밝혔다. 분명히 우리는 ‘있어야 할 것들을 잃어버렸던’ 많은 시간을 겪었다. 메리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당시 외국인들의 일상에 비해 곤고하고 남루한 우리 조상들의 삶을 더 대비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우리의 역사다. 서울의 어디쯤에서 이러저러한 삶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되짚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덕분에 우리는 잃어버렸던 시간의 일부를 되찾게 되는 것 아닌가.

할머니의 유품을 기증한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

할머니의 유품을 기증한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

서울시는 2019년 개방을 목표로 딜쿠샤를 복원하고 있다. 전시가 끝나고 딜쿠사가 복원되면 모든 유물과 자료들은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1923년 시편 127,1을 노래하며 초석을 놓았던 앨버트와 메리의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가 많은 것을 잃어버렸던 우리에게도 기쁜 마음을 되돌려주는 공간으로 늘 곁에 자리하기를 기원한다.

딜쿠샤는 2019년 옛 모습으로 복원되어 개방될 예정이다.

딜쿠샤는 2019년 옛 모습으로 복원되어 개방될 예정이다.


■ 기증유물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 안내

○기간 : ~ 2019년 3월 10일 평일 9:00~20:00, 토·일요일·공휴일 9:00~18:00(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B

○관람료 : 무료

○홈페이지 : www.museum.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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