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건축물

정명섭 정명섭

Visit707 Date2018.11.26 17:10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4) 석조전

덕수궁 대한문으로 들어가서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가면 돌담길이라는 이름의 카페 겸 선물 가게가 있다. 연못과 접해있기 때문에 고즈넉한 덕수궁 안에서도 더 없이 조용한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연못 구경을 하고 함녕전을 끼고 돌아가면 많은 사람들이 정관장과 헷갈려하는 그 유명한 정관헌이 있다. 그곳을 지나면 정원처럼 꾸며진 곳이 나오는데 꽃과 나무를 구경하다보면 회백색의 기둥과 난간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무와 기와, 벽돌로 만든 전통 건축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 건물은 1910년 완공된 석조전이다. 이곳이 대한민국의 덕수궁이라는 사실을 머리에서 지워버린다면 한 가지 생각 밖에는 안 떠오를 것이다.

‘그리스나 로마 신전이네.’

석회암으로 만든 굵은 원형 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삼각형의 박공과 난간의 형태는 영락없이 TV에서 봤던 그리스 신전과 판박이다. 그래서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전의 석상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석조전 1층 중앙홀

석조전 1층 중앙홀

‘안은 유럽의 궁궐이군.’

한옥들로 가득한 덕수궁 안에 겉은 그리스 신전이고 내부는 유럽의 궁궐처럼 꾸며진 석조전이 만들어진 이유는 다소 서글프다.

1897년 2월, 고종은 약 1년간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을 나와서 경운궁으로 향한다. 청일전쟁 이후 기세가 등등했던 일본은 러시아라는 강적에게 밀려 숨을 죽인 상태였다. 고종은 그 틈을 타서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데 연호를 따서 광무개혁이라고 부른다. 석조전의 건축은 개혁 정책 중 하나였다. 조선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서구인들에게 서구 건축물을 보여줌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영국인 고문 하딩의 건의로 1900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석조전의 내부는 19세기 유럽의 궁궐이나 귀족의 저택처럼 꾸며졌다. 1층과 2층으로 나눠진 석조전 내부는 완전 서양식으로 금박을 입힌 벽과 대리석 벽난로, 서구식 가구들이 있으며 나이프와 포크로 서양 요리를 먹는 식당도 존재한다. 대한제국의 황실의 상징인 오얏나무 문양은 석조전 내부 곳곳에 있으며, 기둥 위에 박공에서 새겨져있다. 1층에는 대기실과 식당, 대형 홀 등이 있고, 2층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서재 같은 개인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애써 지은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버림받는다. 완공된 시기가 1910년이었기 때문이다. 국권을 빼앗기고 강제로 퇴위당한 이후 고종은 석조전을 외면했다. 따라서 석조전은 일본에 유학을 갔던 영친왕 이은과 그의 부인 이방자 여사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그 후에는 덕수궁 미술관과 이왕가 미술관으로 사용되었고, 광복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가 복원 과정을 거쳐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 신청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명섭은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며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일제의 흔적을 걷다>라는 답사 관련 인문서를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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