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도 고향집 같은 ‘성북동 북정마을’ 하루 산책

시민기자 박분

Visit462 Date2018.11.01 15:54

심우장

심우장

한양 도성의 북쪽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성북동(城北洞)’은 어떤 동네일까?

흔히 알기로 부자동네로도 알려졌지만 북악산과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성북동에는 오래도록 옛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북정마을도 있고 골목길 사이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역사, 문화, 예술인들의 흔적이 어린 고택도 있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끌어 모은다.

성북구립미술관

성북구립미술관

가을햇살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날 성북동의 한 골목길에 닿았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1111버스를 타고 쌍다리앞에서 내리니 가파른 언덕길이다. 언덕길을 따라 몇 걸음 더 오르면 언밸런스한 모습의 우뚝 선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성북구립미술관이다.

성북구립미술관 옆 거리갤러리, 녹색 바구니를 탑처럼 쌓아올린 작품은 최정화 작가의 ‘숲’이다

성북구립미술관 옆 거리갤러리, 녹색 바구니를 탑처럼 쌓아올린 작품은 최정화 작가의 ‘숲’이다

서울시 최초의 구립 미술관으로 성북구가 자랑하는 이 미술관은 외양도 멋스럽지만 내실 있는 전시를 통해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다.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도로변에 녹색의 조형물이 물결을 이루고 있음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성북구립미술관이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한 거리갤러리 전시이다. 거리에 갤러리를 조성해 미술관 밖에서도 누구든 자유롭게 미술을 접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현재 거리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은 최정화 작가의 ‘숲’이다. 녹색 바구니를 탑처럼 쌓아올려 숲을 표현한 이 작품전시는 내년 4월 7일까지이다.

성북구립미술관 바로 옆은 ‘달밤’, ‘코스모스 피는 정원’ 등을 집필한 소설가 이태준의 고택으로 현재는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으로 맥을 잇고 있다. 아담한 한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수연산방에서 차를 마시며 고택을 둘러보아도 좋을 것 같다.

‘심우장’ 오르는 길

‘심우장’ 오르는 길

성북미술관 인근에는 또 한 채의 고택 ‘심우장’이 있다. 심우장으로 가는 길목에 만해 한용운 동상과 시비가 있는 쉼터에서 탐방 온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만해는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또한 독립운동가로 민족대표 33인 중의 1인이며 한때 불교에 귀의한 승려이기도 하다. 심우장은 만해가 만년을 보낸 한옥집을 이른다.

심우장으로 가는 길은 좁다랗고 가파른 골목길의 연속이다. 하지만 비좁음에도 불구하고 담장 너머로 살짝 살짝 보이는 풍경은 정겹다. 땅이 비좁기 때문인지 꽃과 푸성귀 심지어 양동이까지 모두 담장에 걸터앉았다. 심우장은 북정마을 언덕 중턱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불교의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의 흔적이 남아있는 심우장 방안

만해 한용운의 흔적이 남아있는 심우장 방안

만해는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지내다 안타깝게도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에 세상을 떠났다. 잘 알려진 대로 심우장은 북향집이다. 볕이 잘 안 드는 북향집을 굳이 택한 이유는 조선총독부가 위치하던 남쪽을 등지기 위해서였다. 자그마한 방 둘과 부엌이 하나 달린 심우장은 소박하다 못해 쓸쓸함마저 감돈다. 방안에는 만해의 초상화를 비롯해 한시집과 논문집, 옥중공판기록, 심우장 관련 원고들이 전시돼 있다. 가마솥이 걸린 부엌은 더욱 단출하다. 문득 골목길을 올라올 때 보았던 그의 글귀 한 대목이 떠올랐다.

“조선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이다. 그러니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산단 말인가.”

심우장 뒷마당, 햇살이 내려오는 툇마루

심우장 뒷마당, 햇살이 내려오는 툇마루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옥고를 치르고 나온 만해는 감옥에 있을 동지들 생각에 겨울이 되어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질 못했던 것 같다. 북향집이라 더 추웠을 텐데 혹독한 겨울을 견뎌냈을 그의 굳은 심지를 헤아려본다. 만해의 꿋꿋한 성정을 말해주려는 듯 심우장 처마에 드리운 소나무는 더욱 청청해 보인다. 심우장을 나서며 뒷마당을 돌아보니 툇마루에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았다. 어쩌면 만해는 이 툇마루에 앉아 사색에 잠기곤 하지 않았을까?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조형물 등이 있는 비둘기 공원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조형물 등이 있는 비둘기 공원

심우장에서 나와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담장에 비둘기가 그려진 벽화가 보이고 뒤이어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2012년 북정마을에 조성한 비둘기공원으로 김광섭 시인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비둘기 조형물을 만나볼 수 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로 시작되는 그의 시 ‘성북동 비둘기’를 읽고 있자니 이미 오래전에 북정마을을 예견한 시인의 예지가 놀랍기만 하다. 성북동 비둘기는 다름 아닌 북정동 마을사람들을 상징하고 있었으니.

성북동 마을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정카페

성북동 마을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정카페

비둘기공원을 지나 골목길 끝에 올라서면 시야가 트이면서 북정마을이 고스란히 민낯을 드러낸다. 산등성이로 멀찍이 서울성곽도 보이고 성곽 아래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집들도 보인다.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북정마을은 서울시가 지정한 성곽마을로 한양도성인 서울성곽이 보이는 독특한 경관을 지닌 마을이다. 옛 정취 가득한 텃밭과 장독대는 고향집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주변 산새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성북동의 마을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마을의 중심인 북정카페가 있는 곳으로 언덕의 꼭대기 부분이다. 북정카페는 마을의 작은 가게로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다. 북정카페의 벽면에는 마을사람들의 다양한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현재는 문을 닫은 북정카페, 벽면에는 마을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현재는 문을 닫은 북정카페, 벽면에는 마을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언덕진 골목길을 오가는 마을버스도 보인다. 아마도 이곳 북정마을의 주요 교통수단인 듯 보였다. 마을 쉼터에서 만난 한 마을주민은 “이곳이 공기 맑기로는 서울 최고”라며 자랑삼아 말했다. 북정마을은 머잖아 저층 테라스하우스 단지로 재개발된다는 소식이다.

심우장과 비둘기공원, 그리고 북정마을, 이질감 없이 서로 닮고 잘 어우러지는 느낌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뿐해졌다. 심우장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성북동 골목길에는 선잠단지, 길상사, 최순우 옛집 등 역사, 문화의 향이 서린 명소가 많아 마음속 상념을 떨쳐버리고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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