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낭만'과 '격동의 역사'가 공존하는 그곳

정명섭

발행일 2018.08.20. 16:50

수정일 2018.08.20. 17:49

조회 2,164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변화무쌍한 도시 서울. 하루하루 빠르게 모습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나 서울엔 여전히 과거의 기억들을 간직한 곳이 구석구석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엔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되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봐야만 하는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내 손안에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발행일 기준) ‘서울 재발견’이란 제목으로 정명섭 소설가가 서울 구석구석 숨어 있거나, 스쳐 지나치기 쉬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물 같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며, 그 첫 번째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정명섭의 서울 재발견 (1) 덕수궁 돌담길과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옆에 있는 돌담길은 데이트 할 장소가 마땅찮던 60~70년대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코스였다. 하지만 연인이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속설 아닌 속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덕수궁 돌담길이 영국 대사관에 의해 중간에 끊겼기 때문에 연인들의 인연도 끊어진다고 본 것이다. 그밖에도 이혼 수속을 덕수궁 옆에 있는 가정법원을 방문해야 했던 것도 속설이 퍼진 이유로 꼽힌다. 1966년 진송남이라는 가수가 부른 <덕수궁 돌담길>이라는 노래에도 둘이 걷다가 홀로 걷게 되었다는 슬픈 가사가 나온다.

아름답고 걷기 좋은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들의 이별코스로 뒤바꿔놓은 가정법원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숲으로 둘러싸인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회색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출입문과 길쭉한 창문을 고풍스러운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서울시립미술관이 되기 이전에 가정법원과 대법원이었고, 그 이전 일제강점기에는 악명 높은 경성재판소였다. 이곳에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의 의해 재판을 받고 형을 선고 받았다.

광복 이후에도 용도에 맞게 대법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이후에는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해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시절의 흔적은 건물 외관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그 시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정초석

서울시립미술관 정초석

미술관의 출입문 양쪽은 화강암으로 된 경사로처럼 되어 있다. 법원시절 판검사들을 태운 차량이 지붕이 있는 출입문 앞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그 오른쪽 경사로 뒤편으로 가면 아주 좁은 틈이 있는데 이곳에 건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정초석(머릿돌)이 있다. 그 정초석에는 ‘定礎 昭和二年十一月 朝鮮總督 子爵 齋藤實’이라는 한문이 새겨져있다.

정초석의 주인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문구인데 그는 바로 제5대 조선총독인 사이토 마코토다. 3.1 만세 운동 직후 부임하던 그는 경성역에서 강우규 열사의 폭탄 투척에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경성재판소가 이곳에 세워진 1927년 11월은 일본 국왕의 연호로 소화 2년이다. 당시 조선총독으로 재직 중이던 그가 정초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런 곳에 조선총독의 이름이 새겨진 정초석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서울역과 지금은 화폐박물관이 된 한국은행에도 일본 고위관료의 이름이 새겨진 정초석이 남아있다. 이렇듯 우리는 서울을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이렇게 잘 모르는 부분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서울을 재발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정명섭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왕성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역사소설과 인문서 등을 쓰고 있으며, 답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동료들과 함께 서울을 탐방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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