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동 노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정동현

발행일 2018.08.20. 15:04

수정일 2018.08.20. 17:19

조회 2,887

매콤한 양념에 볶아낸 낙지볶음도 명물이다

매콤한 양념에 볶아낸 낙지볶음도 명물이다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42) 낙원동 ‘호반’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 맛집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검색 한 번에 누구나 맛집을 다닐 수 있다. 하긴, 맛집이란 말도 요즘 생긴 말이다. 이제 맛집은 콘텐츠로 소비된다. 사람들은 인증샷을 찍듯 맛집을 순례하고 맛집을 평가한다. 그렇게 식당은 맛집이 되고 맛집은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는 키워드가 된다.

‘#’ 해시태그를 붙여 키워드로 정리한 맛집은 이리저리 살점이 뜯긴 물고기와 같다. 그 물고기가 어디서 났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상관이 없어진다. 필요한 것만 쏙 빼내 키워드로 정리하면 끝이다. 구체성은 사라지고 소비되기 쉬운 태그만 남는다. 누구나 맛집을 가고 맛집은 언제나 대체가능한 것이 되었다. 어차피 새로운 집은 생기고 새로운 태그는 넘쳐난다. 그런데 식당이 과연 그런 것인가? 이런 저런 회의가 들기 시작할 때 나는 한 집을 떠올린다. 낙원동 ‘호반’이다.

1961년 문을 연 ‘호반’의 역사는 이제 50년을 넘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역사다. 첫 문을 연 주인장은 은퇴했고 당시 막내였던 지금의 주인장이 2015년 9월 다시 문을 열었다. 옛 간판도 그대로 가져왔는데 새로 단 간판에는 그 옛 호반의 뒤를 잇는다는 마음으로 (구)호반이라고 붙여 놨다.

더워도 추워도 늘 사람들이 들끓는 이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가운 인사 소리부터 들린다. 장사가 잘 된다고 손님을 하대하는 경우는 이곳에 없다. 늘 자리가 모자란 것에 미안해하고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려 애를 쓴다. 환하고 깨끗한 실내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보면 그다지 복잡할 게 없다. 탕부터 볶음, 수육, 튀김까지 구성이 다양해 취향에 맞게, 주종에 맞게 메뉴를 고르면 된다.

대표메뉴인 ‘순대’

대표메뉴인 ‘순대’

그럼에도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시작은 순대로 하는 게 좋다. 이 집의 대표메뉴이자 제일 빠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대창에 소를 가득 욱여넣은 이 순대는 입에 넣고 씹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쉽게 나온다. 딱 맞아 떨어지는 간이 첫째요, 입안에서 그득그득 씹히는 재료의 맛이 둘째다. 곁들여 나오는 간과 순대를 소금, 새우젓에 골라가며 찍어먹으면 한 접시를 비우고 다음 메뉴를 고르고 있다.

그 다음은 당연히 병어조림을 먹어야 한다. 서양에서는 버터피시(butterfish)라고 부르는 그 이름만큼이나 살이 기름지고 부드럽다. 그리고 덕분에 가장 높은 값을 받는 생선이기도 하다. 호반에서는 이 병어를 아쉽게 내놓는 법이 없다. 언제나 숟가락으로 살을 퍼먹어도 될 만큼 큼지막한 놈을 골라 계절에 따라 애호박, 감자, 무, 두부와 함께 센 불에 졸여 낸다. 한 여름이면 속살이 오른 애호박을 매콤한 양념에 묻혀 달달한 맛을 즐기고 뒤이어 병어를 숟가락에 올려 입 안에 넣는다. 옛날 할머니가 발라주던 그 생선살처럼, 쉽고 다정하게 풀어지는 병어살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이 여럿이다.

달걀노른자로 반죽을 해 튀긴 오징어튀김

달걀노른자로 반죽을 해 튀긴 오징어튀김

통통한 낙지를 매콤한 양념에 볶아낸 낙지볶음도 이 집의 명물이다. 하얀 소면에 양념을 비비면 배를 채우기도 그만이다. 달걀노른자로 반죽을 해 튀긴 오징어튀김도, 소의 혀를 잡내 없이 삶아낸 우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다보면 메뉴판 전체를 해치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상에 깔린 밑반찬과 물김치다. 늘 종류가 바뀌는 밑반찬은 언제나 손이 간다. 그만큼 정성을 들여 허투루 만들지 않는 음식이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긴 물김치는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않은 오묘한 경지에 있다. 염치 불구하고 한 사발 들이키면 속에 엉켰던 것들이 자연스레 사라진다.

늘 종류가 바뀌는 밑반찬과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않은 물김치

늘 종류가 바뀌는 밑반찬과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않은 물김치

이 집도 유명세를 타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린다. 어떤 때는 별로다, 나아졌다. 나빠졌다, 말은 가볍고 그래서 더욱 쉽게 내뱉는다. 그러나 몇 십 년 역사를 가진 이 집이 그렇게 가벼울 리 없다. 누가 뭐라 하던 나는 이 집을 드나들 것이고 그 드나든 시간만큼 나는 또 나이가 들 것이다. 거창한 수식어는 필요 없다. 1위가 될 필요도 없고 미식회에 선정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의 단골집이다. 이 복잡한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것은 그 정도가 아닐까?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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