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보고 한번 가보고 싶었던 길

시민기자 최은주

Visit1,645 Date2018.08.20 16:49

오는 10월 정식 개방하는 '고종의 길' 입구

오는 10월 정식 개방하는 ‘고종의 길’ 입구

요즘 TV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즐겨보고 있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우리나라에서 힘겨루기를 하며 침략의지를 드러내는 격변기에 조선최고 명문가 애기씨 고애신(김태리 분)과 그녀를 둘러싼 세 남자의 순정적 사랑이 몰입감을 높여준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군인이 되어 돌아온 유진초이(이병헌 분)와 조선을 돈으로 지배한 할아버지에 반감을 사고 룸펜으로 살다가 고애신을 위해 고애신의 그림자가 되어 주길 약속하는 정혼자 김희성(변요한 분), 백정의 아들로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일본에서 자객이 되어 돌아와 애신 곁에서 맴도는 구동매(유연석 분)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키기에 안달했던 부역자들과 달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던 민중들의 편에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의병활동에 깊숙이 관여하는 고애신과, 아슬아슬 펼쳐지는 로맨스도 보기 좋지만 이들이 근무하고 공부하며 걸었던 정동거리를 상상해 보는 건 더 즐겁다. 드라마를 보고 나면 그 당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동길을 걷고 싶어진다. 특히나 고종황제가 일본의 암살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던 그날 황제의 가마가 지났다고 짐작되는 ‘고종의 길’이 8월말까지 시범 개방 중이라니 길을 나섰다. ‘고종의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공관까지 이어지는 120미터 길로, 8월 한 달 간 시범 공개 후 10월 정식 개방한다.

‘고종의 길’을 걸어보기 위해 13년 간 대한제국의 궁궐로 쓰던 덕수궁으로 들어섰다. 고종이 승하하면서 전각들이 훼손되고 궁궐이 잘려나가 규모가 축소되는 등 심하게 훼손된 덕수궁은 지금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길을 걸어 석조전 뒤로 가니 ‘고종의 길’을 안내하는 배너가 보였다.

새로 개방된 '고종의 길'은 120미터이다

새로 개방된 ‘고종의 길’은 120미터이다

120미터의 돌담길은 좁고 짧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미대사관으로 넘어갔던 토지 소유권이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돌담 너머는 정동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인 미국공사관이 있던 곳이다. 극 중에서 이병헌이 근무하던 바로 그곳이다. 지금은 전통 한옥 양식에 따라 신축해 미대사관저로 쓰고 있다.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고 정동 언덕 위에 하얀 탑만 남아있다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고 정동 언덕 위에 하얀 탑만 남아있다

고종의 길을 나서니 바로 러시아공사관 터가 나왔다 정동길을 걸어 예원학교를 지나올 때와는 현저하게 거리가 단축된 느낌이다. 정동에도 이런 언덕이 있었나 할 정도의 언덕 위에 하얗게 우뚝 솟은 탑만 남아있지만 푸른 하늘 밑에 아름답다. 자그만 예배당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화여고는 극중 고애신이 영어를 배우던 학당과 글로리아 호텔이 있던 곳이다

이화여고는 극중 고애신이 영어를 배우던 학당과 글로리아 호텔이 있던 곳이다

여기서 몇 걸음 언덕만 내려가면 고애신이 영어를 배우던 학당과 글로리아 호텔이 있던 곳이다. 드라마를 보면 학당에서 영어를 배우던 고애신이 선생님 심부름으로 미국공사관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직접 와보니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다면 3~4분이면 닿을 거리다. 이들은 이 거리를 오가며 서로 사랑하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온 힘으로 막으려 눈물과 피를 흘렸다.

극중 이병헌이 근무하던 미국공사관은 현재 미대사관저로 쓰이고 있다

극중 이병헌이 근무하던 미국공사관은 현재 미대사관저로 쓰이고 있다

글로리아 호텔이 남아있다면 거기에 들러 땀을 식히며 가배(커피)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글로리아 호텔의 모델이 된 손탁호텔은 이화여고 심슨관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 대신 정동길엔 맛있는 커피를 즐기기에 좋은 커피숍들이 즐비하다. 고종의 길을 걸은 후엔 따릉이를 빌려 타고 정동길을 달리는 시민들도 자주 눈에 띈다. 여름 볕은 아직 뜨겁지만 바람이 선선하게 불기 시작했으니 현명한 선택이다.

따릉이를 타고 정동길을 달리는 시민들

따릉이를 타고 정동길을 달리는 시민들

커피맛보다 뷰를 선택할 사람들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정동전망대에 올라보자. 2,500원 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앞에 놓고 지금 걸었던 정동길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최고뷰를 얻을 수 있다. 덕수궁 석조전 너머로 붉은색 영국대사관도 보이고 그 너머에 러시아 공사관도 보인다. 역사책에서만 봤던 구한말의 역사가 드라마와 정동길 산책으로 우리에게 걸어와 말을 걸 수도 있다. 와서 보니 지금의 시대도 그 때와 같지 않냐고.

서울시청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덕수궁과 정동 일대

서울시청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덕수궁과 정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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