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완전 개방된 ‘칠궁’에 가보니…

시민기자 최용수

Visit828 Date2018.06.22 11:34

칠궁 안 아름다운 정원 모습, 영조는 자주 냉천정을 찾아 시를 짓기도 했다

칠궁 안 아름다운 정원 모습, 영조는 자주 냉천정을 찾아 시를 짓기도 했다

“여봐라, 짐의 어머니 산소는 어디 있느냐?”
“파주 광탄 영장리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내 어머니 산소를 묘(墓)라고 부르느냐, 원(園)으로 하라.”
“전하, 아니 되옵니다. ‘무수리’는 하찮은 청소부인지라…”

조선왕조에서 무수리(궁중에서 청소나 세숫물 드리는 일을 맡아보던 여자 종)의 자식이 왕이 된 것은 영조가 처음이다. 효심이 남달랐던 영조는 1724년 왕위에 오른 다음, 마음 놓고 어머니라고 불러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다음 해 궁월 가까운 곳에 사당을 짓고 ‘육상묘(毓祥墓)’라 칭했다. 애끓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그리던 영조는 52년의 재위기간 동안 200여 차례나 육상묘(훗날 ‘육상궁’으로 승격시킴)를 찾았다고 한다.

제사를 준비하는 칠궁 안의 재실 모습

제사를 준비하는 칠궁 안의 재실 모습

‘칠궁(七宮)’은 근래에 와서 붙여진 명칭으로 조선시대에 왕을 낳은 일곱 후궁들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실 사당이다. 원래는 영조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1725년에 지은 사당 육상궁(毓祥宮)이 있었으나 고종과 순종 때 도성 안에 있던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연호궁(延祐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의 신주를 옮기게 되었고, 1929년 덕안궁(德安宮)이 옮겨와서 일곱 분의 신주를 모시게 되어 지금의 칠궁이 되었다. 신주는 모두 일곱이지만 사당 건물은 다섯이다.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에 각각 두 분의 신주를 모셨기 때문이다.

칠궁관람을 예약하면 전문해설사와 함께 칠궁을 꼼꼼히 둘러볼 수 있다.

칠궁 관람을 예약하면 전문해설사와 함께 칠궁을 꼼꼼히 둘러볼 수 있다.

지난 6월 1일부터 문화재청이 사전예약제로 ‘칠궁’을 개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탐방에 참여해 보았다. 칠궁 투어는 하루 다섯 차례, 매회 60명씩의 그룹 투어가 진행 중이다. 관람 예약시간이 가까워오자 청와대 옆 무궁화동산에는 하나둘 예약자들이 모여들었다. 신분을 확인받고 출입표찰을 목에 걸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50년 동안 엄격히 통제되었던 칠궁 안으로의 역사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안내자를 따라 칠궁 앞으로 이동했다. 고풍스런 재실정문과 외행각이 눈에 들어왔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송죽재와 풍월헌, 삼락당을 지나 중문 안으로 들어갔다. 냉천정(정자)과 냉천(우물), 사각 연못인 자연(紫淵, 연못)이 수백 년 세월을 머금은 정원수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영조의 어머니 신위를 모신 육상궁과 영조의 후궁 신위를 모신 연호궁, 둘이 합사되어 있다.

영조의 어머니 신위를 모신 육상궁과 영조의 후궁 신위를 모신 연호궁, 둘이 합사되어 있다.

동쪽 권역으로 향하니 육상궁은 간데없고 ‘연호궁(延祜宮)’이란 현판만이 선명하다.
“연호궁 안쪽으로 들여다보세요. 지위가 높은 사람을 안쪽에 모시는 것이 예법이랍니다” 해설사의 말대로 몸을 낮춰 안쪽을 쳐다보니 ‘육상궁’이란 현판이 보였다. 영조의 어머니 신위를 모신 육상궁과 영조의 후궁 신위를 모신 연호궁이 합사돼 있다니… 원초적으로 사이가 나쁜 것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라 했거늘 죽어서까지 함께 있다니 무슨 기구한 운명인가? 아니면 적적함을 나누려는 선의일까? 합사된 내력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 해설사의 설명이다.

칠궁의 서쪽 권역에는 네 개의 사당이 모여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덕안궁(德安宮)이 정면에 나타났다. 조선의 26대 임금인 고종의 후궁(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본래 지금의 태평로에 있었는데 1929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덕안궁에서 어도를 따라 뒤편으로 돌아가면 3개의 사당이 서로 접하여 서 있다. 서쪽에서부터 차례로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를 모신 저경궁(儲慶宮),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을 모신 대빈궁(大嬪宮),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선희궁(宣禧宮)과 순조의 생모(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를 모신 경우궁(景祐宮)이다.

다른 사당의 사각기둥과 달리 유일하게 둥근 기둥으로 되어 있는 장희빈의 대빈궁

다른 사당의 사각기둥과 달리 유일하게 둥근 기둥으로 되어 있는 장희빈의 대빈궁

숙종의 총애를 받고 중전의 지위에 올랐던 장희빈의 대빈궁은 다른 사당의 사각기둥과는 달리 유일하게 ‘둥근 기둥’으로 되어 있어 당시의 권세를 말해주는 듯했다. 또한 생전에 그토록 증오했던 숙빈 최씨와 이렇게 죽어서 한 울타리 안에 이웃할 줄이랴 어찌 감히 알았겠는가.

어머니를 그리며 육상궁을 세우고 자주 냉천정을 찾아 시를 짓기도 했다는 영조, 어머니 제삿날이 되면 미리 냉천정으로 나와서 우물(냉천)에서 몸을 깨끗이 하고 정성을 가다듬어 제사를 준비했었다. 냉천(우물) 북쪽 장대석에는 냉천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지은 영조의 친필 오언시(五言詩)가 새겨져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 외에도 칠궁에는 재실과 수복방도 둘러볼 수 있다.

칠궁 안의 담장과 대문, 지붕의 아름다움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칠궁 안의 담장과 대문, 지붕의 아름다움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와 더불어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당을 어떻게 짓고 운영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랜 기간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덕분인지 칠궁은 한국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차츰 더워지는 초여름, 색다른 나들이를 즐기고 싶다면 ‘칠궁으로의 나들이’, 권해보고 싶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만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색다른 힐링의 맛을 볼 수 있는 것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오는 7월부터 칠궁의 관람횟수와 정원을 늘려갈 계획이라 밝혔다.

가족과 함께 칠궁 탐방을 계획한다면 시간적 여유를 넉넉히 하고 오면 좋겠다. 새롭게 조성한 칠궁 입구의 무궁화동산과 분수대를 살펴보고, 때마침 청와대사랑채에서 특별 전시중인 ‘청와대 소장품’까지 관람할 수 있다면 덤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지난 40여년 청와대가 수집한 주요 미술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중한 전람회이다.

■ 칠궁 관람 안내
– 예약방법 : 경복궁 사이트에서 선착순 인터넷 예약
– 관람시간 : 매주 화요일~토요일(일~월요일 휴궁)
– 관람요금 : 무료
– 문의 : 경복궁(칠궁)관리소 02-734-7720

■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
– 장소 : 청와대 사랑채 1층
– 전시기간 : ~7월 29일까지, 매일 오전 9시~오후6시(매주 월요일 휴무)
– 관람요금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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