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개방된 양녕대군 묘소, 직접 가보니...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18.05.17. 15:44

수정일 2018.05.17. 15:44

조회 3,590

양녕대군이 직접 쓴 숭례문 현판 글씨

양녕대군이 직접 쓴 숭례문 현판 글씨

국보1호 숭례문은 한강 건너 관악산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관악산을 풍수로 보면 화기(火氣)가 매우 강한 산이라고 한다. 이에 불의 기운이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히 ’숭례문’ 현판를 종서(縱書, 아래로쓰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불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모양인 동시에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형상’이므로 현판을 아래로 쓰면 불의 기운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이다.

2008년 방화로 불탔던 숭례문을 재건, 2013년 5월에 제막식이 있었다. 이날 선보인 숭례문(崇禮門)의 현판은 명필가도 반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글씨이다. “도대체 누구의 글씨일까?" 그 해답을 찾으러 ‘양녕대군 묘소’를 찾았다.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양녕대군 묘소 및 사당인 지덕사 입구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양녕대군 묘소 및 사당인 지덕사 입구

양녕대군의 묘소는 지덕사와 함께 동작구 상도동에 있다. 2000년 이후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 18년 동안 출입이 제한되었던 묘역이 4월 27일에야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난 3년여 간 서울시는 주민의견 수렴, 문화재 보존과 안전을 위한 방재시스템 구축, 묘역 내 보행길 정비, 벤치 등 편의시설 설치 작업을 마무리하고 시민들의 진정한 휴식·문화·교육 공간으로 양녕대군 묘소를 활짝 개방했다.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관람가능하며, 일요일과 월요일은 문화재 정비를 위해 휴관한다.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 숭례문 현판 탁본 등이 보관돼 있다.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 숭례문 현판 탁본 등이 보관돼 있다.

정문을 들어서니 고즈넉한 조선왕릉의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입구 안내소에서 오른쪽으로 몇 걸음 향하니 ‘지덕사(至德祠)’가 나타났다. 지덕사는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으로 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양녕대군의 친필인 숭례문 현판의 탁본과 정조가 지은 지덕사기 등이 있다.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형, 양녕대군 이제의 묘소. 커다란 봉분과 묘석에서 대군의 위풍이 느껴진다.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형, 양녕대군 묘소. 커다란 봉분과 묘석에서 대군의 위풍이 느껴진다.

‘지덕(至德)’이란 말은 역사상 위대한 인물에게 내린 찬사 중 최고의 찬사라 한다. 1675년 숙종은 남대문 밖 도저동(挑渚洞)에 사당을 개축하고 ‘지덕사(至德祠)’라는 이름을 내렸다하며, 1912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1972년 8월에는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받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으며, 평소에는 출입문을 잠근다고 했다.

지덕사 동쪽에 있는 연못. 연못 위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양녕대군 묘소가 나타난다.

지덕사 동쪽에 있는 연못. 연못 위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양녕대군 묘소가 나타난다.

지덕사 동쪽으로는 작은 연못이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수초와 여유로운 잉어들의 유영을 보노라면 묘역의 오랜 역사가 풍겨난다. 연못을 가로지른 돌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양녕대군의 묘소가 나타난다. 커다란 봉분과 문인석 등이 대군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대군의 묘소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전체 묘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제왕자리가 그처럼 추하고 더럽다는 것을 느낀 걸까, 양녕은 세자 자리도 제왕의 지위도 포기하면서 풍류를 즐기며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묘소를 보노라니 “착하고 순박하고 기걸 찬 한국인의 전형적인 인간상”이란 대하소설 박종화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묘역 앞 뜰에는 숭례문 현판 등 양녕대군을 알 수 있는 조형물 5개가 세워져 있다.

묘역 앞 뜰에는 숭례문 현판 등 양녕대군을 알 수 있는 조형물 5개가 세워져 있다.

묘소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산책로와 쉼터가 마중을 한다.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오니 5개의 큰 돌로 된 조형물이 서있는 넓은 뜰이 나타난다.

첫 번째의 조형물이 바로 기자가 찾던 검은 오석(烏石)의 ‘숭례문(崇禮門) 현판’이었다. 양녕대군이 직접 썼다는 남대문의 현판과 똑같은 글씨체, 크기, 형태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니 행운이다. 숭례문 현판은 임진왜란 때 유실되었는데, 광해군 때 청파동 배다리 밑 도랑에서 밤마다 서광이 비쳐 팠더니 ‘숭례문 현판’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2008년 숭례문 화재로 현판 일부가 훼손되었을 때 양녕대군의 사당인 이곳 지덕사에 소장되어 있는 탁본자료를 근거로 복원했다고 한다.

양녕대군이 지은 시를 감상하는 시민들

양녕대군이 지은 시를 감상하는 시민들

“산허리에 걸린 노을은 아침 짓는 연기인가 / 넝쿨에 걸린 달은 밤 밝히는 등불이네 / 나 홀로 고적한 암자에서 자고나니 / 탑 하나만 저만치 홀로 서 있네”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사양하고 묘향산의 어느 암자에 묵었을 때, 스님의 간절한 청으로 썼다는 양녕대군의 시(詩)이다. 고상하고 청아한 시어(詩語)와 함축미는 양녕의 뛰어난 시적 재능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한국역대 명시전서’ ‘동국시전’ 등에 소개되어 있다.

소동파의 명작 '후적벽부'를 초서체로 쓴 양녕대군의 글씨

소동파의 명작 '후적벽부'를 초서체로 쓴 양녕대군의 글씨

이곳에는 숭레문 현판과 시비(詩碑) 외에도 중국의 문호 소동파의 명작을 초서체로 쓴 후적벽부(後赤壁賦)와 이승만 박사의 훈필(訓筆), 양녕대군 묘역 성역화 약사 등의 조형물도 둘러볼 수 있다.

18년 만에 개방한 양녕대군의 묘역의 여유로운 풍경

18년 만에 개방한 양녕대군의 묘역의 여유로운 풍경

서울시는 양녕대군 묘역 개방과 함께 인접한 국사봉의 산책로와 접근로를 정비하고 있다. ‘양녕대군 묘역~국사봉~상도근린공원’을 잇는 총 길이 3.3km의 새로운 ‘역사 테마 둘레길’을 올해 안에 완성할 예정이다.

1단계로 국사봉 입구·접근로 및 등산로 정비(2.4km)를 우선 시행하고, 2단계로 마을내부에 골목길 녹지‧꽃길(900m)을 조성해 산책로를 완성할 예정이다. 둘레길이 완성되면 18년만에 개방된 양녕대군 묘소·지덕사와 함께 시민들이 즐겨 찾는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리라 기대해본다.

■ 지덕사 및 양녕대군 묘소
○위치 : 서울시 동작구 양녕로 174

○교통 :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하차, 일반버스 152, 753, 5011, 5536 등

○문의 : 지덕사 사이트 , 동작구청(02-820-9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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