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용문시장 해장국집

정동현

Visit2,377 Date2018.02.19 17:47

1967년 창업한 이래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창성옥`  소뼈 선지 해장국

1967년 창업한 이래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창성옥` 소뼈 선지 해장국

`창성옥`-지도에서 보기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9) 용산구 창성옥(서울미래유산)

새해라는 단어가 반갑지 않았다. 어느 동물도 해를 가르지 않고 그저 해의 움직임과 날씨 변화에 따라 삶을 영위할 뿐이다. 어차피 오고 가는 시간, 그 연속적인 흐름을 분절적으로 인식하여 해를 나눈 것은 인간의 자의적인 습관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든다는 것, 육체가 쇠하고 그에 따라 정신도 기백이 떨어지며 보수적으로 변하는 그 감각이 싫었다. 느끼지 않으려고 해도, 거부하려 해도,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며, 무엇인가 변해 있기를 바라며 새해를 맞이하지 않는다.

나는 지킬 것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그 지킬 것에 파묻혀 하루하루 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다. 가까스로 부전승 처리를 하며 지낼 뿐이다.

한 때 `부부해장국`으로 운영하다 지금은 옛 이름을 다시 찾았다

한 때 `부부해장국`으로 운영하다 지금은 옛 이름을 다시 찾았다

새 밑, 재개발이 채 되지 않은 용문전통시장에 가게 된 것은 굳이 해장국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였다. 시장 근처에 들어서자 주차장이 모자란 탓에 좁은 2차선 도로 빽빽이 늘어서 있는 차들이 나타났다. 전통시장 주변에는 차변 주차를 해도 용인이 되는 때가 있다. 전통 시장에 넓은 주차장이 있을 리 만무하고,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주차난 때문에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아 상인들이 민원을 넣으니 일종의 초법적인 구역이 형성된 셈이다.

앞에 마을버스가 한 번 정차 할 때마다 차가 밀렸고 신호가 떨어지면 꼬리를 문 차들이 움직이지 못해 더더욱 교통은 엉망이 되었다. 겨우 차를 세우고 시장 안에 들어서자 차를 대놓은 사람들이 다 여기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막을 쳐놓은 좁은 길 위로 사람들이 어깨를 치며 다녔다.

해장국 위에 신김치가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해장국 위에 신김치가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머리를 자르지 않은 생닭, 각종 전을 부치는 아낙네, 그 앞에서 흥정을 하는 노인, 곱은 손으로 종이돈을 세어 건네주는 또 다른 노인, 널찍한 판 위에 김을 내며 올라온 판두부, 예전에 보던 시장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어 신기하기까지 했다.

가고자 한 해장국집은 용문시장에서 살짝 빗겨난 골목에 있었다. 이름은 창성옥, 방송에 몇 번 나와 이제 유명세를 탄 해장국집이다.

해장국집 앞에 가니 주차를 해놓은 벤츠 한 대가 보였다. 이곳까지 이 큰 차를 끌고 해장국을 먹으로 온 이의 의지가 가상했다. 창성옥은 이미 만석이었다. 주방에는 어른 몸만 한 솥이 끓고 있었고 종업원들은 빈자리를 치우고 다시 반찬을 깔고 100도 씨 넘는 온도로 끓어 넘치는 해장국을 날랐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그 뜨거운 국을 앞에 두고 훌훌 불어가며 허겁지겁 밥을 비웠다. 여기까지는 여느 해장국집과 다를 게 없었다. 단지 계란 프라이가 정식 메뉴로 올라가 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용문시장 노점에서 계란 `후라이`를 팔며 시작한 밥집이다. 계란 프라이는 지금도 주요 메뉴다

용문시장 노점에서 계란 `후라이`를 팔며 시작한 밥집이다. 계란 프라이는 지금도 주요 메뉴다

“계란 프라이 네 개 주세요.”

앞 테이블 젊은 남자 둘은 이미 계란 프라이를 하나씩 해치운 뒤였다. 머리를 뒤로 넘겨 묶은 노인은 ‘뜨거울 때 먹어’라고 말을 건네며 금세 계란프라이를 그들에게 건넸다. 집에서 흔히 먹는 별 것 아닌 계란 프라이지만 해장국집에서 먹는 그 맛은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았다.

해장국 구성도 조금 달랐다. 선지와 살코기가 들어가는 것은 같지만 배추속대로 만든 우거지가 들어가는 점이 달랐다. 그 위에 김치를 다져 만든 양념을 한 숟가락 올리는데 그것이 이 집 영업 비밀이라고 했다.

해장국에 신김치가 올라가, 찬으로 나오는 김치는 여타 식당과 형태가 다르다

해장국에 신김치가 올라가, 찬으로 나오는 김치는 여타 식당과 형태가 다르다

`창성옥`-지도에서 보기

국물 맛을 보니 단맛이 강하게 돌았다. 채소 흰 부분, 그러니까 태양과 땅에서 끌어올린 영양분을 당으로 바꿔 저장한 그 부분에서 우러난 단맛이었다. 선지는 명성에 걸맞게 쓴맛 없이 단맛이 돌았고 그 식감 역시 미끈하게 부드러워 먹는 맛이 있었다. 이 부드럽고 달달한 국물을 한 숟가락 마시고 계란프라이를 잘라 먹었다. 둥글둥글 모난 구석이 하나 없는 국물은 허기진 위장에 스며들었고 마음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주변 사람들도 훌쩍 훌쩍 소리를 내며 국밥을 입 속에 넣었다. 별 볼일 없는 하루, 별 볼일 없는 새해, 또 별 볼일 없는 삶. 그러나 결국 찾아오고 또 결국 살아가게 되는 하루를 생각했다. 국밥은 저절로 비워졌고 큰 솥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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