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대치동 곰탕집

정동현

발행일 2018.02.05. 16:18

수정일 2018.02.19. 15:34

조회 2,581

테헤란로에 위치한 광교옥 곰탕

테헤란로에 위치한 광교옥 곰탕

광교옥 곰탕-지도에서 보기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8)강남구 광교옥

테헤란로는 황량하다. 신이 쌓아올린 것처럼 거대한 빌딩 사이로는 햇볕조차 들지 않고 음지에 머무는 골목길 위에는 얼음이 쉽게 언다. 꼬리를 물고 도로를 지나는 차들 때문에 늘 신호가 밀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은 몸을 비틀어 길을 건넌다.

나는 이곳에 매일 같이 머물며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데 제대된 식당 찾기가 쉽지 않다. 본래 황량했던 이곳이 신화적인 개발을 통해 주목을 받은 것은 실제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이 식사를 하는 것은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무방비 상태가 됨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조건은 장소가 오래 되어 안정감을 주고 또 편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모두 업력이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손님을 객단가라는 지표로 환산해 이익의 원천으로 여기는 이 시대에 그런 곳을 찾기는 쉽지 않고 테헤란로에서는 더더욱 힘들다. 나 역시 매일 같이 컴퓨터를 바라보며 똑같이 사람을 평가하고 환산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런 내가 바란 것은 크고 원대한 소망이 아니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나의 감각이 느끼는 맛에 대해 생각하며, 그 장소를 기억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그 곳을 찾아 테헤란로 언덕배기를 올랐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영하 10도를 우습게 넘기는 북극 바람을 헤쳤다. 언덕 위로 ‘광교옥’이란 이름이 쓰인 간판이 보였다. 세 음절의 단순한 이름, 하지만 수식이 많지 않은 그 이름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이 식당의 명물처럼 느껴지는 광교옥 간판

이 식당의 명물처럼 느껴지는 광교옥 간판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북적이는 식당 앞에 줄을 서서, 누군가 내 차례를 뺐지 않을까 의심하고, 또 식사를 하는 사람이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고 미워하며 딱 한 시간 밖에 되지 않는 점심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누구도 의심하고 싶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이른 점심 시간인지라 여유 있는 좌석에 다시 한 번 안심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중년 여자는 ‘편한 곳에 앉으라’며 차분한 목소리로 안내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볕이 드는 가장 안쪽 자리에 머물렀다. 친구는 곧 도착했고 우리는 메뉴판을 봤다. 광교옥은 곰탕집이다. 비록 호주산 쇠고기를 쓰지만 1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 반가웠다. 그 반가움에 호기를 부려 특곰탕 두 그릇을 시키고 내친 김에 미니수육을 추가했다.

주문이 들어가자 주방 안이 분주해졌다. 헌팅캡을 쓴 두 남자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음식을 준비했다. 그 중 나이가 많은 축이 작은 종지에 국물을 따로 담아 맛을 봤다. 본래 그래야 하지만 가장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 때 호주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던 시절 바쁘다는 핑계라 간을 보지 않았고, 그리하여 접시가 날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리 바빠도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광교옥 미니수육

광교옥 미니수육

곧이어 찬이 먼저 깔렸다. 작은 스테인리스 접시에 인당 하나씩 김치, 간장, 그리고 오징어 젓갈이 나왔다. 인별로 내주는 반찬은 번거롭지 않고 위생적이다. 실상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음식은 내놓는 방식이기도 하다.

곰탕은 잠시 틈을 주고 나왔다. 파의 하얀 부분을 채 쳐 위에 살짝 올리고 고기가 듬뿍 들어간 곰탕이었다. 그 옆에 하얀 쌀밥이 얌전히 놓였다. 숟가락을 떠서 국물을 맛봤다. 이질감 없이 몸에 스며드는 감각에 살짝 놀랐다. 그제서야 국물 온도는 85도로 맞춘다는 안내가 보였다.

입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온도는 음식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조건이다. 순대국과 콩나물국밥집으로 대표되는 대중음식점에서 온천물처럼 끓어오르는 것을 내놓는 것이 기본처럼 여겨지지만 실상 음식을 제대로 먹는 방식이 아니다. 단번에 한 숟가락을 편하게 뜰 수 있어야, 그 맛을 편하게 느낄 수 있어야 맞다. 85도에 온도를 맞춘 곰탕은 맑았다. 떠 있는 기름기도 없었다. 맛을 보니 은근히 단 맛이 올라왔다.

“무국 맛 안 나나?”

경상도 출신 친구에게 물었다. 부산에 살던 시절 흔히 먹던 무국과 맛이 비슷했다. 입맛을 잡아끄는 단맛, 넉넉히 씹히는 고기에 오래된 노래를 부르듯 마음이 편해졌다. 국물을 자작하게 깐 수육을 간장에 찍고 신맛이 적당히 올라오는 김치를 곁들였다. 결국 밥 한 그릇을 국물에 말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밥을 먹었다.

창 너머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하나 없이 맑아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그 차가운 바람 사이로 느껴지는 햇볕 온기, 위장을 채우는 맑은 국밥의 적당한 무게감, 오래된 친구의 익숙한 농담, 점심은 언제나처럼 빠르게 흘렀지만 나는 그 시간을 작게 내 몸 한 켠에 담아 그날 하루를 추억하고 또 추억했다.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야 광교옥을 찾을 수 있다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야 광교옥을 찾을 수 있다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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