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건대 양꼬치와 마파두부

정동현 정동현

Visit647 Date2017.12.18 16:18

쫄깃한 찹쌀반죽이 일품인 탕수육

쫄깃한 찹쌀반죽이 일품인 탕수육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4) 광진구 매화반점

길거리에 번쩍이는 붉은색은 노골적이었다. 진한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 형형한 붉은색이 거리를 가득 채웠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길게 내린 차양처럼 가게 앞을 가릴 듯 크게 달린 간판에는 한글이 드물었다. 옛스러운 한자로 적힌 간판을 읽으려면 오래전 졸며 들었던 한자 수업 시간을 되뇌어야 했다.

지하철 건국대역에서 5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이 별천지는 차이나타운이란 멋드러진 이름을 다시 가졌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양꼬치거리라고 퉁치곤 한다. 언제부터 이곳에 이런 가게들이 모여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략 2000년대 초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있는 대학가와 집값이 싼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이른바 중국 북동부 지역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중 건대는 상권이 가장 젊고 따라서 역동적이며 번화한 곳 중 하나다. 그리고 그곳 맹주(盟主)는 단연 ‘매화반점’이다.

건대 상권을 이른바 ‘하드캐리’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매화반점은 이 좁은 지역에 점포 3개가 있고 그중 본점은 위풍 당당하게 4층까지 뻗어 올라가 있다. 어디를 가도 같은 맛이 나오지만 그 멋과 맛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아무래도 본점이 좋다. 아무리 자리가 많아도 저녁 7시가 넘으면 반드시 줄을 서게 된다.

매화반점은 건대 차아니타운을 대표하는 식당이다

매화반점은 건대 차아니타운을 대표하는 식당이다

그러나 꼭 유의할 것이 있다. 하얀 칠판에 이름을 적고 인원수를 적으면, 안경을 쓰고 한 쪽 귀에는 이어폰을 낀 주인장이 순번을 점검한다. 순서가 돌아왔을 때 주인장은 이름을 두 번 부르지 않는다. 단 한 번 호출에 대답이 없으면 아무 미련 없이 이름을 지워버린다. 아, 이 무정한 남자, 그러나 만인에게 평등한 사람아. 그러니 언젠간 순서가 돌아오리란 믿음과 이곳에서 꼭 식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칠판 앞에서 기다리도록 하자.

순서가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 몇 페이지나 되는 메뉴판과 함께 저 너머 뜨거운 불 앞에서 티셔츠 하나 달랑 입고 웍을 돌리는 남자 뒷모습이 보인다. 여름에 이곳을 찾으면 땀인지 물인지 모를 것들을 뚝뚝 떨어뜨리며 불 앞에서 듀스 매치를 벌이고 있는 테니스 선수처럼 손목과 어깨를 쉼 없이 돌리는 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무자비하게 밀어닥치는 손님들 상 위로 음식을 뽑아내는 그들에게 잠시 조용한 경의를 보내고 메뉴판을 열면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펼쳐진다.

널쩍하고 얇게 썬 형태가 특색인 매화반점 마파두부

널쩍하고 얇게 썬 형태가 특색인 매화반점 마파두부

또 하나 주의 사항.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라고 겁먹지 말 것. 아무리 그 이름이 ‘염통줄기볶음’이란 그로테스크한 명사를 품고 있더라도, “Don’t panic. Just follow your instinct.” 당황하지 말고 본능에 따라, 끌리는 이름과 사진을 고르면 된다.

초심자라면 양꼬치로 포문을 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양꼬치를 먹을만큼 먹은 사람이라면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여행지를 고르듯 마음껏 끌리는대로 메뉴를 골라보자. 그럼에도 추천이 필요하다면 실패하지 않을 몇 가지 것이 있다.

우선 돼지고기고수볶음은 필수다. 이름 그대로 고수와 돼지고기 채 썬 것을 고춧가루와 함께 센 불에서 볶아낸 요리다. 향긋한 고수와 기름기 없이 담백한 돼지고기의 조합은 죽이 잘 맞고 여기에 뜨거운 열과 고춧가루가 어울리면 눈치 좋고 언변 맛깔난 주선자를 사이에 둔 남녀 마냥 이글거리는 맛이 탄생한다. 맵지는 않은데 입 속에서는 침이 흐르고 겉보기엔 채소와 고기 볶음이지만 묘한 감칠맛에 젓가락을 놓을 수 없으며 종국에는 술잔을 거푸 들이붓게 되는 힘이 있다.

매화반점 인기 메뉴 염통줄기볶음

매화반점 인기 메뉴 염통줄기볶음

여기에 비할 것은 이 집 대표 메뉴인 마파두부다. 다른 집과 달리 두부를 얇게 편을 쳐 전분 풀지 않은 소스를 부어 만든 이 음식은 한국식 매운맛과 달리 하늘로 날아오르듯 향이 뿜어져 나오고 맛을 보면 툭툭 잔 펀치를 던지듯 혀를 두들긴다. 그쯤이면 당연히 파기름으로 향을 내고 소금으로 간간히 맛을 낸 볶음밥을 시켜 비비게 되는 것이 순리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좋아하는 탕수육은 찹쌀로 반죽을 만들어 쫄깃 거리고 소스는 신맛이 끝까지 차올라 이 음식이 기름지고 달다는 감각을 지워버린다.

파 맛이 살아있는 매화반점 볶음밥

파 맛이 살아있는 매화반점 볶음밥

그 외에 시켜야 할 것이 메뉴판 가득이지만 그래도 옥수수면은 빼먹지 않는 것이 좋다. 노란 옥수수면에 매콤한 육수를 붓고 볶음 김치를 올린 이 국수 한 그릇을 먹다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 뿌리가 과연 어디인지, 음식과 사람을 어디어디 출신이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경계는 과연 어디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맛은 통하고 그 맛 앞에 줄을 서게 되는 인간 감각도 같다. 그 억양이 다를 뿐 비슷한 맛에 비슷한 기억을 추억하며 매일 곱절의 땀을 흘리는 하루도 같다. 하지만 남과 우리를 가르려고 하는 속 좁은 세태는 여전하고 그때마다 내 마음은 독한 술을 마신 것처럼 쓰리다. 아마 그들이 만들고 먹인 음식이 내 몸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인가보다.

3층 건물 전층을 사용하는 매화반점 본점

3층 건물 전층을 사용하는 매화반점 본점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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