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철길 따라 추억을 만나다 '경춘선숲길'

시민기자 박분

발행일 2017.11.24. 14:40

수정일 2018.05.18. 17:12

조회 1,767

경춘선숲길공원의 마스코트 `협궤열차`ⓒ박분

경춘선숲길공원의 마스코트 `협궤열차`

경춘선숲길-지도에서 보기

이미 오래전 열차 운행이 멈춘 도심 속 기찻길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이 오랜 단장을 마치고 지난 18일, 마침내 문을 열었다. 녹슨 기찻길에서 서울 도심 속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경춘선숲길’을 걸어봤다.

오후 2시에 찾아간 이곳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고적대의 축하 퍼레이드가 한창이었다. 간이역인 옛 화랑대역사에서는 경춘선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고, 축제 분위기를 띄우듯 색색의 풍선이 놓인 철길에는 경춘선숲길 개방 축하 메시지를 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경춘선 3단계 구간 개방 첫날, 시민들이 철길에 추억어린 글귀를 새기고 있다 ⓒ박분

경춘선 3단계 구간 개방 첫날, 시민들이 철길에 추억어린 글귀를 새기고 있다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옛 화랑대역을 중심으로 철길이 펼쳐진 이곳은 육사 삼거리~서울시-구리시 경계 2.5km에 달하는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경춘선 복선화와 함께 전철이 개통되면서 폐선이 된 경춘선의 기찻길을 보존하고, 단절된 지역을 연결해 공원으로 만드는 ‘경춘선숲길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2015년 5월 개장한 1단계 구간(공덕 제2철도건널목~육군사관학교 삼거리)은 철길 주변에 카페와 식당이 있는 휴식을 즐기는 공원으로 변화했고, 2016년 11월 개장한 2단계 구간(경춘철교~서울과학기술대학교 입구)은 텃밭과 다양한 수종이 있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날 3단계 구간이 완료돼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경춘선숲길을 걷다보면 절로 사색에 잠기게 된다 ⓒ박분

경춘선숲길을 걷다보면 절로 사색에 잠기게 된다

철길 옆 잘 자란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경춘선숲길’을 걷다 보면 마치 숲속을 걷는 느낌이다. 쭉 뻗어 나간 철길을 걸으면 어릴 적 들었던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련한 옛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기 좋은 곳이다.

철길은 육군사관학교 일대까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철길이 주는 이미지가 꼭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레일 위를 똑바로 서서 걷기와 침목사이를 보폭에 맞춰 걷기 등 철길에 서면 악동이 돼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폐철길이기에 모두 가능한 것들이다.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은 끝없이 펼쳐진 철길 양편으로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아파트와 달리는 차량도 보이지만 철길 따라 한없이 걷다 보면 문득 혼자 있는 것 같은 호젓함을 맛볼 수 있다. 절로 사색에 잠기게 된다.

화랑대역의 마지막 역장인 권재희 씨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철길을 어루만지고 있다 ⓒ박분

화랑대역의 마지막 역장인 권재희 씨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철길을 어루만지고 있다

경춘선은 옛 성북역(광운대역)과 춘천을 오가는 ‘낭만 열차’로 불릴 정도로 7080세대들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선사한 철로다. 경춘선 복선화와 함께 전철이 개통되면서 2010년 12월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1939년 개통된 지 70여 년 만이다.

옛 화랑대역은 시민들에게 개방돼 전시관으로 새 출발을 하고 있었다. 손님으로 들끓던 대합실과 역무원이 일하던 역무실에는 일제강점기 첫 개통 당시의 열차 안 승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경춘선 마지막 열차의 모습들이 담긴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경춘선 복선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기와 때를 같이 해 소임을 다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화랑대역은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다. 1939년에 경춘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열었고 처음에는 ‘태릉역’으로 불리다 육군사관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해 온 후 1958년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담한 목조 건물로 지어진 이 간이역은 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됐다.

화랑대역의 마지막 역장으로 재임한 권재희(64) 씨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했다. 재임 당시 마을 사람들의 협조로 역 구내에서 때때로 사진전시회, 음악회 등 문화 활동을 벌였던 그는 “화랑대역의 플랫폼에 서면 금방이라도 기차가 들어설 것 같아 주위를 살피게 된다”면서 “화랑대역이 시민들이 즐겨 찾는 문화공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협궤열차가 보이는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 입구 ⓒ박분

협궤열차가 보이는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 입구

역내 철길에는 협궤열차와 증기기관차도 있어 운행이 중단된 간이역의 쓸쓸함을 덜고 있다. 특히 객실이 달린 협궤열차는 방문객들로 붐볐다. 그 옛날 소래포구를 달리던 열차이기도 하다. 일반 기차보다 작아서 꼬마열차라고도 불렸다. 하얀색 나무의자와 탁자로 예쁘게 꾸민 협궤열차에 몸을 싣고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잠시 추억 여행을 떠나보았다.

경춘선숲길공원은 6호선 화랑대역 2번 출구나 7호선 공릉역 2번 출구로 나와 육사 삼거리 방향으로 몇 걸음 걸으면 바로 철길이 보인다. 경춘선 3단계 구간은 천천히 걸어 두어 시각이면 돌아볼 수 있다. 깊어가는 가을, 철길 따라 마냥 걸어 볼 수 있는 호젓한 산책길을 기대한다면 옛 화랑대역이 있는 경춘선숲길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

■ 경춘선숲길 안내

○ 위치 : 녹천중학교(서울 노원) ↔ 육사 삼거리 (총거리 3.3km)

○ 문의 : 경춘선숲길방문자센터 02-3783-5977, 다산콜센터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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