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여의도 징기스칸 요리

정동현

발행일 2017.11.20. 17:00

수정일 2018.02.28. 16:17

조회 2,278

징기스칸은 양고기를 구워먹는 요리법이다징기스칸은 양고기를 구워먹는 요리법이다

이치류-지도에서 보기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 (22) 영등포구 이치류

어느 누구도 욕을 먹으며 밥을 먹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맛집에서는 '주인장의 욕'이 도리어 정감 있다는 찬사가 되기도 한다. 식사 사디즘(sadism)이라고 부를만한 이 가학 의식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가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던 농경 문화에서 비롯된다. 이러나 저러나 알만한 사람들이니 욕을 먹어도 그 본 뜻이 그렇지 않음을 알고 이해할 수 있었던 시절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내가 아는 사람은 서울 인구 1,200만명 중에 극히 소수다. 서울에서 사는 것은 매우 불친절한 환경 속에 스스로를 던져 놓는 일이다. 홍콩, 뉴욕보다 더 폭력적인 교통 환경,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다리를 벌리고 지하철을 타는 중년 남자와 아무데서나 통화를 하고 화장을 고치는 젊은 여자, 나를 뒤에서 밀치고 거리를 걷는 또 어떤 남자. 연예인 사생활을 집요하게 뒤쫓는 언론과 작은 휴대폰 창에 고개를 박고 그러한 가십을 24시간 내내 소비하는 사람들. 매 순간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며 입으로만 정의를 쫓는 비굴함 속에 내가 오직 원하는 것은 친절한 인사와 손길이다.

무엇보다 식사를 할 때, 나는 한 사람으로 대접 받으며 사람다운 식사를 하고 싶다. 성격이 무뚝뚝한 것 뿐이라며 불친절함을 억지로 포장하고,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란 변명을 해대는 곳에 가기 싫다. 대신 나는 친절을 얻기 위해 나는 몇 끼 식사를 싸구려 햄버거로 떼우고 그 값을 모은다. 그렇게 돈을 모아 가끔 호사를 부릴 때가 있다. 특히 고기를 취급하고 다루는 방법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양고기를 찾을 때가 그러하다.

3가지 부위를 선택해 먹어볼 수 있다

3가지 부위를 선택해 먹어볼 수 있다

양고기를 구워먹는 요리 징기스칸을 먹을 수 있는 이치류에 들어서면 고기집에서는 드물게 손님 옷을 따로 보관하는 서비스가 있다. 옷에 쉽게 냄새가 배는 업종 특성을 감안한 것. 손님 개인 사물함을 따로 마련한 배려는 사실 용기에 가까운 결단이 필요하다. 그만큼 투자를 해야 하고 홀 면적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얻은 것은 쾌적한 환경이다.

예약을 받지 않는 이치류에서 운 좋게 자리를 잡으면, 이제 내 앞에는 나대신 고기를 구워주는 전담 서버가 마주 선다. 양고기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직원 안내를 받으면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대체로 두 명이 오면 모든 메뉴를 하나씩 다 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고기 메뉴는 단 세 가지. 살치살, 생등심, 생양갈비가 전부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표기는 물론이요 여기에 칼로리까지 적힌 메뉴판을 보면 이 집 디테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폰트도 사진도 제각각인 메뉴판을 보다가 이렇게 각이 잡히고 콘셉트가 있는 결과물을 만나면 낯설기까지 하다. 그 메뉴판에는 살치살, 등심, 갈비살 순으로 먹는 것이 좋다는 팁까지 적혀 있다. 당연히 그 수순에 따라 고기를 먹는 것이 초심자에게는 좋다.

야채부터 불판에 올린다

야채부터 불판에 올린다

시작은 불판을 뜨겁게 달구고 양기름을 두르는 것이다. 그리고 파, 양파를 위로 볼록하게 솟은 징기스칸 불판에 굽기 시작한다. 채소 향이 코에 닿을 때쯤엔 고기가 올라간다. 그 순간의 타이밍을 맞추고 타기 직전, 제일 맛이 끌어 올라간 상태의 채소를 손님에게 내어주는 것은 잘 교육받은 점원 몫이다.

만약 점원이 추가 주문을 위해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공격을 하러 올라간 수비수 자리를 미드필더가 메꾸듯, 옆 점원이 자연스럽게 두 곳을 맡아 관리를 한다. 그 이음새는 여간 눈치가 밝은 사람이 아니고는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워 흥이 깨지거나 불편함을 느낄 틈이 없다.

고기를 굽는 솜씨도 상당하다. 사실 고기 굽는데 큰 기술이 필요하진 않다. 대신 계속 시선을 집중하는 성실함과 집요함만 있으면 된다. 조금만 경험이 쌓이면 그 타이밍을 맞출 수 있지만 섬세하고 끈질기게 그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노력과 교육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이치류 직원들은 모두 일류 마라톤 주자처럼 단 한 번 흐트러짐 없이 성실하다.

밥알이 살아있는 고시히카리 흰쌀밥이 인기가 높다

밥알이 살아있는 고시히카리 흰쌀밥이 인기가 높다

재료 질도 마찬가지다. 연분홍빛이 도는 양고기는 먹어보지 않아도 눈으로 느낄 수 있다. 그 맛을 따지면 돼지고기처럼 쫄깃하기도 하고 소고기처럼 진한 육즙 맛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린 고기 특유의 생생하고 여린 감각이 남아 있어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다.

고기를 뒷받침하는 반찬과 부메뉴도 그 격이 남다르다. 백김치의 신선한 산미는 오래 묵은 퀴퀴한 냄새가 전혀 없고 맥주 한 잔을 따르더라도 조밀한 거품의 질감을 놓치는 경우가 없다. 한 사람 당 한 그릇만 판다는 고시히카리 쌀밥으로 식사를 마무리할 때쯤엔 오랜 경험 끝에 탄생한 하나의 작품을 경험한 듯하다.

그 작품은 잘났다고 불친절하지 않고 스스로를 으스대지 않으며 당연히 욕도 하지 않는다. 대신 친절한 말과 행동으로 타인을 편하게 하고 결과로 증명한다. 일류란, 이치류(一流)란 바로 그런 것이다.

고기는 테이블 전담 직원이 숙련된 기술로 구워준다

고기는 테이블 전담 직원이 숙련된 기술로 구워준다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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