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이야기가 있다 ‘종로골목길 탐방’

시민기자 방주희

발행일 2017.11.17. 13:22

수정일 2018.08.14. 09:23

조회 1,053

계단을 오르는 중에 내려다본 이화동 벽화마을의 풍경 ⓒ방주희

계단을 오르는 중에 내려다본 이화동 벽화마을의 풍경

가을이 깊게 물든 골목길을 걸으면 익숙한 풍경 속에서 유년시절의 추억을 마주하게 된다. 신나게 뛰어노는 어린 나에게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담벼락 사이에서 들리는 것만 같다. 문득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저 은행나무는 언제부터 여기에 뿌리를 내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이런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 나선 종로 골목길 탐방은 이화장에서부터 시작했다. 이화장(梨花莊, 사적 제497호)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는 그 유품을 소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곳 낙산 언덕에는 배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정자 이름인 이화장에서 유래되었다.

이화장을 지나 이화벽화마을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푯말을 따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려야 하는 이른바 달동네 골목길이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거세져야 한 굽이를 지날 수 있었다.골목길 해설사는 “지금은 집마다 도시가스를 사용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탄과 석유를 운반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설명해주었다.

벽화마을 골목(좌), 지하철 내부를 떠올리게 하는 최가 철물점(우) ⓒ방주희

벽화마을 골목(좌), 지하철 내부를 떠올리게 하는 최가 철물점(우)

이화벽화마을은 한 때 원단공장이 들어서며 봉제업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들이 봉제업을 하기에 알맞게 규모로 지어져 있었다.

이화벽화마을로 들어서자 예술가들이 촘촘히 채워나간 다양한 벽화를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시름을 잊고, 주민들에게 일상의 행복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가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는데, 날개 그림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국땅에서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이화벽화마을을 걸을 땐 주의할 점이 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므로 주택 안 촬영은 삼가야 한다. 조용히 이동하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어준다면 거주민과 탐방객 모두 즐거울 것이다.

서울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낙산정 ⓒ방주희

서울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낙산정

다음은 낙산공원 위쪽에 위치한 낙산정에 올랐다. 숨을 고르며, 북악산과 인왕산에 둘러싸인 전망을 내려다보자 서울 하늘이 내 손안에 들어오는 듯 운치 있었다. 성벽을 따라 정상에 오르자 낙산공원과 서울성곽이 펼쳐졌다.

낙산은 산이 낮고 경사가 완만해 산책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날은 소풍 나온 학생들과 나들이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낙산은 또한 단종 비인 정순왕후의 안타까운 사연을 품고 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뒤부터 정순왕후는 매일 낙산에 올라 단종의 무사 귀환을 빌었다고 한다. 결국 단종이 세조에게 암살당한 후부터 죽는 날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서 낙산에 올라 영월 쪽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벽을 따라 내려가는 길, 성벽 밖으로 겹겹이 집을 올린 장수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방주희

성벽을 따라 내려가는 길, 성벽 밖으로 겹겹이 집을 올린 장수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다음은 ‘홍덕이 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한 뒤,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심양에 있을 때 모시던 나인 홍덕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심양에서도 직접 채소를 가꾸어 김치를 담가 식사에 올렸다. 봉림대군은 볼모에서 풀려 본국으로 돌아온 뒤 효종으로 재위했다. 효종은 귀국 후에도 예전에 먹던 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홍덕이에게 낙산 중턱 채소밭을 주어 김치를 담그게 했다. 때문에 지금까지 홍덕이 밭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게 됐다. 현재 이곳에는 밭은 없어졌고 홍덕이 밭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을 뿐이다.

성벽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성벽 밖으로 겹겹이 집을 올린 마을을 만날 수 있었다. 이름하여 장수마을이다. 광복과 한국 전쟁 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터를 잡은 판자촌 마을인데 원래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길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이곳이 장수마을로 불리게 된 다른 추측도 해보았다. 600년 전 정도전이 한양도성 성곽을 쌓을 때, 남산 아래를 기점으로 눈이 녹는 길을 따라 쌓았다. 그 결과 성벽 안은 남향으로 지리적 위치가 좋다. 그에 비교해 성벽 밖에 위치한 장수마을은 응달이 드리워진 북향이다. 계단도 가파르고 햇볕이 들지 않으니 어르신들이 더 많이 몸을 움직여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아무쪼록 이곳에서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성곽에 단풍이 물들었다. ⓒ방주희

낙산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성곽에 단풍이 물들었다.

골목길 탐방은 종로구청 홈페이지(www.jongno.go.kr)와 종로노인종합복지관(02-7420-9500)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가을이 지는 것이 아쉽다면 대학로 골목길로 떠나보자. 다채로운 이야기와 역사가 스며있는 골목길 구석구석을 걸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근사한 일일 테니 말이다.

■ 해설사와 함께하는 종로구 골목길 탐방

○ 신청방법 : 최소 3일 전 인터넷 신청(21명 이상 단체는 5일 전)

○ 소요시간 : 약 2~3시간

○ 운영시간 : 오전 10시, 오후 2시

○ 문의 : 종로구 관광체육과(02-2148-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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