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낙원동 이발관 골목 이야기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7.11.02. 16:40

수정일 2017.11.02. 16:40

조회 3,082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산처럼 알려준 낙원동 이발관 ⓒ김종성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산처럼 알려준 낙원동 이발관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아버지는 만날 일이 있을 때마다 서울 종로 낙원동을 고집했다. 번듯한 인사동을 바로 옆에 두고 국밥집, 포장마차, 선술집, 낙원지하시장, 이발관까지 다양한 곳에서 아버지와 만났다. 후일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전해준 남다른 유산이 아니었나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곳에 올 때면, 거리를 나란히 걸으며 왠지 뿌듯해하시던 아버지 옆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지난 주말 기자는 아버지가 알려준 낙원동 소재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다. 아버지가 오래 다녔던 이 단골 이발소에 가면 친숙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인지 낙원동에 갈 때마다 아버지의 자취와 체취를 느끼게 된다.

이곳은 낙원 이발관, 뉴탑골 이발관, 장수 이용원 등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업소가 열 개가 넘다 보니 낙원동 이발관 골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10여 개가 모여 있는 낙원동 이발관 골목의 스타이발관 ⓒ김종성

10여 개가 모여 있는 낙원동 이발관 골목의 스타이발관

이발관 특유의 사인볼이 빙빙 돌아가는 가게 앞에는 하나같이 ‘이발 3,500원, 염색 5,000원’이라고 쓴 가격표가 붙어 있다. 이 ‘착한 가격’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어르신들이 지하철을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멀리 천안이나 인천에서도 낙원동 이발관 골목을 찾아온다. ‘대한민국에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런 이발관이 즐비한 곳이 바로 낙원동이다.

소읍이나 소도시에서 종종 만나는 재밌고 정다운 간판을 단 이발관. 머리 깎을 일이 없어도 괜스레 들어가 보고 싶게 하는 이발관이 다른 곳도 아닌 대도시 서울에 이렇게 모여 있다니 참 별일이다. 그런 점이 이채로웠는지 얼마 전엔 송해씨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다.

낙원동 일대는 서울시가 ‘락희(樂喜)거리’로 조성한 이른바 ‘노인 친화 거리’이기도 하다. 주로 60대 이상 노인들이 오다 보니 이발관엔 ‘어르신 우선’ 화장실과 ‘생수 제공’ 팻말이 붙어 있다. 생수는 약 복용을 돕기 위해 제공한단다.

낙원동 이발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서비스 간판(좌), 수십 년 경력의 가위 손 이발사 ⓒ김종성

낙원동 이발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서비스 간판(좌), 수십 년 경력의 가위 손 이발사

이곳에는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 경력의 이발사들이 대부분 이발 기계를 안 쓰고 오로지 가위로만 머리를 깎는다. 이들에게 머리를 맡기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귓가에서 들려오는 ‘사각사각’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와 나도 모르게 졸음에 빠진다.

거울 너머로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일렬로 앉아있는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말 잘 듣는 학생들 같아, 슬금슬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머리를 다 깎은 후 뜨끈한 온수에 머리를 감고, 이발관 특유의 스킨 향을 맡으며 푹신한 소파에 앉아 믹스커피를 마시다 보면, 어느 곳보다 아늑한 기분이 든다.

이날 이발관 손님 반은 염색 손님이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흰머리 노신사가 들어와 염색약을 바르고 내 옆에 앉았다.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흰머리가 떠올라 넌지시 “염색하시는 것보다 흰머리가 더 멋지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아파트 경비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염색하셨단다.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이발 도구들의 모습 ⓒ김종성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이발 도구들의 모습

아버지가 단골로 다니던 이발관 사장님은 무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손님들 머리를 깎아왔다. 젊은 시절 ‘뭐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이발사가 말끔하고 뽀얀 가운을 입는 데다 무엇보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뜨뜻한 직업이라 선택했단다. 당시엔 이발사, 운전사가 인기직종이었다고 한다. 이발 기술은 정년퇴직 없이 자기 건강만 허락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 좋다고 했다.

이발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5,000원을 내고 거스름돈은 수고비라며 건네주고 가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이발을 끝낸 어느 손님은 음료수 한 병을 건네기도 한다. 이발관 사장님은 ‘이곳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곳’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낙원동 이발관 골목 안내
○ 교통 :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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