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염창동 닭볶음탕

정동현

Visit1,289 Date2017.09.25 16:00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16) 강서구 유림

유림 닭볶음탕. 가양동 유림으로 유명하나 실제 소재지는 염창동이다

유림 닭볶음탕. 가양동 유림으로 유명하나 실제 소재지는 염창동이다

강서구 유림-지도에서 보기

일과를 마치고 코를 풀면 검댕이 나왔다. 지금은 미세먼지 타령을 해대지만 그때는 ‘먼지’로 퉁 치던 시절이었다. 창고에 틀어박혀 박스를 정리하다보면 먼지가 뿌옇게 날렸고 탄광 속 광부처럼 그 속을 헤맸다. 마스크를 쓰는 것도 한두 번, 땀이 흘러 눈이 따가워지고 입이 답답해지면 마스크를 던져버리고 빨간 고무가 붙은 면장갑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가양동 대형마트에서 나는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아침이면 남들이 퇴근하는 길로 출근했고 밤이면 그 반대였다. 근무조는 두 개로 아침부터 저녁, 점심부터 자정까지로 나뉘었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 경우는 하루에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현장 근무가 원칙. 책상에 앉아 있다가도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가야 했다.

자정이 되어 마트 문이 닫히면 버스 막차를 타기 위해 뜀박질을 했고 그마저도 놓치고 나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동료 차를 얻어 탔다. 회식은 자정부터, 새벽 무렵 술자리가 끝나면 아침조 사람들은 몇 시간 쪽잠을 자다 다시 마트로 나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운동화가 뜯어졌고 먼지 때문인지 귀가 아파 계속 병원에 다녔다.

방도 여럿 있어 여럿이 방문하면 오붓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방도 여럿 있어 여럿이 방문하면 오붓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래도 몸을 쓰는 일이 좋았다. 명절이면 마트 뒤쪽에 한복을 입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우던 어린 여자애들과 나이든 아주머니들, 용돈벌이가 목적이라며 세단을 몰고 출퇴근을 하던 캐셔 아주머니와 고구마 몇 개를 훔치다 마트를 나가야 했던 또 다른 아주머니, 휴학을 하고 등록금을 벌던 남자애와 갓 취업한 나, 마트를 드나들던 수십 개 업체 영업사원과 트럭 기사들, 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부대끼던 그곳이 나는 싫지 않았다.

그 마트 옆, 가양빗물펌프장이 있는 그곳에서 그 시절 자주 회식을 했다. 몸을 써서일까, 가볍게 먹어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영화에 나오는 불법도박장처럼 비닐하우스가 쳐진 그 식당 이름은 ‘유림’이다.

제대로 된 건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언덕을 올려다보면 유림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일 뿐,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주차를 하려고 그 언덕을 올라가면 가로등 하나 없는 나대지가 나온다. 그 멀리 하얀 불빛이 보이고 그 빛을 따라 가까이 걸어가면 언덕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가양동 유림 외관

가양동 유림 외관

유림 대표메뉴는 한강 이남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닭볶음탕이다. 주문은 한 마리부터로 두 명이 찾았다면 허리띠를 풀 각오를 해야 한다.

“매운 것, 아니면 순한 걸로 드실래요?”

주문을 하려하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반찬을 바삐 놓는 이모가 묻는다. 순한 것도 맵다는 친절한 부연 설명도 뒤따른다. 취향에 따라 맛을 고르고 나면 순식간에 닭볶음탕 냄비가 상 위에 오른다.

닭볶음탕을 이루는 빨강색은 화산이 토해내는 마그마 빛이다. 유혈이 낭자하는 느와르 영화 속 핏빛처럼 진한 국물을 보면 혀로 맛을 보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미 다 익혀 나온 닭 크기도 일반적이지 않다. 날개를 펼치면 날아오를 것 같은 크기의 닭 뼈, 감자는 주먹만 하고 냄비는 기본이 4인용이라고 웅변하는 것 같다.

검은콩, 수수, 조가 들어간 밥이 닭볶음탕 양념맛을 배가시킨다

검은콩, 수수, 조가 들어간 밥이 닭볶음탕 양념맛을 배가시킨다

먹기 시작하기 전 심호흡을 하는 것도 필수다.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다혈질 승부사처럼 멈출 수 없음은 자명하다. 단맛은 미약하지만 어디지 모르게 입맛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 진한 양념 속에서 느껴지는 후추와 마늘 생강, 그리고 고춧가루 총합은 심장을 펌프질 하고 식욕을 폭주시킨다.

검은콩과 수수, 조가 들어간 찰밥은 그 이름만큼 입에 달라붙고 후에 남은 양념에 볶아주는 볶음밥 역시 시중 평균을 훌쩍 넘어선다.

양념에 볶은밥이 별미다

양념에 볶은밥이 별미다

좁은 복도 양편으로 늘어선 방에 가득 찬 사람들, 노상에 파란 좌판을 깔아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짧은 치마 차림 여자와 얼굴이 붉어진 중년 남자, 화장이 짙은 중년 여자, 그리고 이제 막 만나기 시작한 젊은 연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맵디매운 닭볶음탕을 끓이고 볶으며 배를 채우는 서울 변두리 가양동의 저녁은 10년 전과 변함이 없다.

아무리 고상하고 잘난 인간도 이곳에 오면 혀를 내밀고 땀을 흘리는 한 인간일 뿐이다. 결국은 매운맛에 속을 부여잡고 다음 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인간일 뿐이다. 나는 무엇이 그리 다른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을 보노라니 잡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 생각은 10년 전 나와 창고를 뒤집고 다니던 이들에게까지 미쳤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 때와 얼마만큼 달라졌는가.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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