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홍대 와우산 해물파전

정동현

발행일 2017.09.18. 17:19

수정일 2018.02.28. 16:09

조회 2,148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⑮ 마포구 미로식당

미로식당에서 첫 손에 꼽는 추천 메뉴는 해물파전이다

미로식당에서 첫 손에 꼽는 추천 메뉴는 해물파전이다

홍대 와우산 해물파전-지도에서 보기

갈매기 떼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상갓집에 온 것 같기도 했다. 20대 후반 창창한 젊은이들이 한결같이 음울한 옷을 차려 입고 일렬로 앉았다. 그 앞에는 나이 든 남자와 여자가 중후한 옷을 입고 내려온 안경을 바로 잡고, 볼펜을 돌리며 그들을 쳐다봤다. 마치 시장에 나온 물건이 흠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모양새였다. 그 중 한 명이 질문을 던졌다.

“고집이 세 보이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을 받은 이는 나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참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니던 때였다. 질문을 받고 찰나였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상이 고집 세 보이나? 만약 인상이 그렇다면 어떤 요소 때문인가? 째진 눈? 꽉 닫힌 안중? 까만 피부? 아니면 그 전 답변 중에 고집 세 보일만한 것이 있었나?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고집 세 보인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일까? 부정적인 것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꽤 자주 고집 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이 이런 자리에서 들통 날 줄은 몰랐다. 그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나는 머리를 굴려 아마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고집이 셀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고집이 센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고집 그 자체는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지 않을까요?”

홍익대학교 뒤편 와우산자락으로 이전한 미로식당

홍익대학교 뒤편 와우산자락으로 이전한 미로식당

결과는 내 기대와 달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고집 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성격은 결과에 따라 해석된다. 즉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고집이 아니라 신조가 있다, 추진력이 강하다, 지조가 있다고 해석이 되고 만약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안하무인, 똥고집, 아집 등 다른 말로 불리기 일쑤다.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닌 이상, 어느 지점부터는 나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또 그것이 옳다. 물론 성인인 이상 그것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가 지어야 할 것이다. 그때 남 탓을 하면 안 된다. 남의 의견을 듣던 듣지 않았던 간에 선택은 본인이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홍대에 있던 한식 주점 미로식당이 와우산 자락으로 옮길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물론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니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와우산에 가게 터를 잡을 줄은 몰랐다. 어차피 홍대 근처이니 슬슬 걸어가면 될 것이라고 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서울대까지 걸어가는 것이 서울대3대 바보 중 하나라고 하듯 홍대 전철역에서 스마트폰 지도를 따라 미로식당에 걸어올라 가다보면 후회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식당 이름이 붙어있는 대표 메뉴 미로석쇠불고기

식당 이름이 붙어있는 대표 메뉴 미로석쇠불고기

걷지 말자. 홍대입구역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올라가자. 요즘처럼 걷기 좋은 가을날이라면 모를까,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 여름과 입이 돌아갈듯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산기슭을 거슬러 올라가면 와우공원이 보이고 산 중턱에 자리한 산장을 보는 것처럼 노란색 등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 나타난다. 땀을 흘린 자에게 복이 있나니 바로 그곳이 미로식당이다.

미로식당에 도착하면 또다시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 이미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 때문이다. 15석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일하는 사람은 단 두 명, 주인장과 그의 아내뿐이다. 그러니 예약은 필수,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조금 늦은 시간에 미리 연락을 하고 찾는 것이 좋다. 만약 만석이라면 근처에 대신할 다른 식당도 없다.

미로식당 두 번째 추천메뉴로 꼽는 골뱅이무침과 스팸구이

미로식당 두 번째 추천메뉴로 꼽는 골뱅이무침과 스팸구이

아마 운이 좋거나 성실한 사람이라면 메뉴판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몇 되지 않는 메뉴이기에 고르기 어렵지는 않다. 반면에 매일 매일 바뀌는 ‘오늘의 메뉴’가 있어 자주 찾는다고 해도 쉽게 질리지 않는 미덕이 있다.

앉자마자 테이블 위에 나오는 두부조림을 맛보면 이 집이 지향하는 맛의 결을 짐작할 수 있다. 은근히 깔리는 단맛과 짠맛, 그러나 모두 과하지 않다. 오히려 그 과하지 않음이 낯을 가리는 까다로운 입맛마저 살살 꾀어내는 것 같다.

모두가 추천 메뉴이지만 이 집 해물파전은 꼭 맛을 봐야 한다. 해물을 엉기는 것에 역할을 최소한으로 제한한 밀가루 반죽 덕분에 탱글탱글 씹히는 식감과 다채로운 맛에 지금껏 먹었던 해물파전이 어떤 음식이었는지 되돌아본다.

기본찬으로 나오지만 그 맛의 내공이 범상치 않은 미로식당 두부조림

기본찬으로 나오지만 그 맛의 내공이 범상치 않은 미로식당 두부조림

그 다음은 골뱅이무침과 스팸구이가 좋다. 손으로 꼬아 모양을 낸 파채의 디테일은 이 집 상징이요, 주인장의 고집이다. 골뱅이와 파무침, 그리고 스팸구이라는 검증된 조합이기에 맛이 있다 없다를 논하는 것이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념의 신맛과 짠맛, 단맛 배합은 어느 것 하나의 목소리를 높여 성량으로 디테일을 감춘 여느 음식들과 달리, 섬세하게 조율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앞에 ‘미로’자를 붙인 석쇠불고기는 이 집 대표 메뉴이기에 그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더해진 것은 석쇠에 구워 낸 불맛, 그 맛을 씻어내기 위해서 술 한 잔을 찾게 되는 것이 순서다.

미로식당 메뉴판

미로식당 메뉴판

어렸을 적 식당에 가면 나오던 옛날식 ‘사라다’, 어묵을 듬뿍 넣은 모둠오뎅탕, 이 집 주인장이 중식 마니아라는 것을 증명하는 탕수육까지,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먹어도 또 시켜 먹고 싶은 것이 생기는 이상한 집이다.

이쯤 되면 미로에 빠진 것처럼 이 한 장짜리 메뉴판을 보고 또 보고 결국은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시켜 놓고도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다. 부지불식간에 다음 올 날을 손꼽아 보게 되고, 결국 또다시 이 와우산 언덕을 기어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고집스런 주인장이다. 흔한 말로 ‘곤조’가 있는 남자다. 그럼에도 별 수 없다. 지는 척 하고 올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대안이 없다. 이 맛은 이 곳 뿐이다. 그러니 산을 오르고 땀을 흘릴 수밖에 없다.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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