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상사마을’ 도심에서 만난 고향집

시민기자 박분 시민기자 박분

Visit1,630 Date2017.09.05 15:54

개화산 자락 아래 상사마을 전경 ⓒ박분

개화산 자락 아래 상사마을 전경

차창 밖으로 들바람을 쐬며 마냥 떠나고픈 계절이다. 들판을 한참을 달리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시골 마을에 닿는다면, 하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멀리 시골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울에서 그런 마을을 만날 수는 없을까?

얼마 전 소슬바람이 부는 초가을 아침, 버스에서 내려 한적한 마을을 걸었다. 텃밭에는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키 큰 수숫대가 바람에 너울대고 있는 곳. 먼발치서 보면 산자락 아래 알록달록 빨갛고 파란 지붕이 보이는 이 마을은 서울 강서구 외곽에 자리 잡은 ‘상사마을’이다.

김포평야와 행주나루 끝에 걸쳐있는 상사마을은 옛날부터 강화, 인천, 한양으로 오가는 뱃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없어졌지만 개화산 아래 있었던 석굴나루와 현 행주대교 진입로의 행주나루가 있는 나룻마을로 알려졌다.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인 김포공항 부근에 있던 상사마을은 1970년대 말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취락구조개선사업’이 비교적 일찍 시작된 마을이기도 하다. 빨갛고 파란 지붕들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상사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텃밭을 일구는 모습 ⓒ박분

상사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텃밭을 일구는 모습

마을을 걷다 보니 푸르름이 일렁이는 채소밭이 왁자하다. 어르신들 여럿이 모여 밭을 매고 있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와 잘 자란 파, 넝쿨을 길게 뻗은 호박 등 싱싱한 채소들로 풍성한 텃밭이다.

“오늘은 방울토마토 맛 좀 볼까? 햐! 정말 맛이 달구나!” “농약 안 쓰고 퇴비 거름 주니 맛이 좋을 수밖에요.” 텃밭을 가꾸는 재미와 수확물을 나누는 기쁨 속에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아침부터 밭에 나와 풀을 뽑고 채소 잎사귀에 붙은 벌레 잡기에 여념이 없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상사마을 어르신 사랑방’ 회원들이다.

어르신들이 틈틈이 일구는 마을 텃밭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무질서하게 주차된 외부 차량으로 방치된 곳이나 다름없던 곳이었다. 마을의 변화는 작년 봄, 어르신들이 뜻을 모으며 시작됐다. 먼저 마을 주차장을 새롭게 정비하고 버려졌던 곳을 마을 텃밭으로 가꿨다. 주차장 둘레에 무궁화 나무를 심어 무궁화 꽃길도 조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을 텃밭은 이제 어르신들이 매일 출근하는 곳이 되었다. 아침이면 밭으로 향하고, 텃밭에서 가꾼 쌈 채소로 점심을 함께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나눈다. 크고 작은 마을행사에도 참여해 이웃과의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올해는 배추 재배도 해 김장 나눔을 꿈꾸고 있다.

밭을 일군 직후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는 마을 어르신 ⓒ박분

밭을 일군 직후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는 마을 어르신

“양은 많지 않더라도 우리가 힘을 합해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가슴 뿌듯해요.”

어르신들을 다독이며 마을공동체를 이끄는 상사마을 어르신사랑방 사무장 김경순(66세) 씨는 “채소를 가꾸며 서로를 이해하고 돈독한 정을 나누게 되면서 건강과 보람을 찾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시골 마을 버스정류장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상사마을 버스정류장 ⓒ박분

시골 마을 버스정류장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상사마을 버스정류장

상사마을을 걷다 보면 세월에 묻혀 잊고 지낸 옛 마을의 모습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표지판 하나가 지키고 선 버스정류장이 그렇고 집마다 자리한 장독대와 울타리를 타고 오른 호박 덩굴이 그렇다. 수수한 예전 모습을 곳곳에서 만나니 마치 고향 집에 온 듯하다. 시야를 가로막는 아파트나 덩치 큰 건물이 없어 걷기도 편하다. 김포공항과 인접해 있어 공항 보호시설과 군사시설 등으로 인해 여러 면에서 제약을 받은 결과다.

상사마을은 106가구가 전부인 작은 마을로 행정구역상으로는 개화동에 속한다. 버스가 다니는 마을 대로변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두 곳이 있다. 마을에서 장사하는 가게는 통틀어 이 두 곳뿐이다. 편의시설이 근거리에 없다 보니 불편할 것도 같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달리 큰 불편을 느끼진 않는 듯 보였다. 마을주민들의 발이 돼 주는 것은 다름 아닌 6647번 시내버스로 주민센터는 물론, 전철역과 시장 백화점 등을 두루 경유하고 있었다.

마을 골목길을 수놓은 상사마을 벽화 ⓒ박분

마을 골목길을 수놓은 상사마을 벽화

담장에 꽃처럼 피어난 벽화가 마을 골목길을 수놓는다. 벽화는 오밀조밀한 골목길 따라 쭉쭉 이어진다. 나무와 새, 꽃무늬 등 화사한 빛깔로 채색된 담벼락은 동심으로 이끈다. 상사마을 골목길 벽화는 2016년 마을가꾸기 사업으로 시작됐다. 작년 봄, 청년들로 구성된 마을공동체 ‘청년 보라’가 그린 벽화로 마을 주민들은 다정한 이웃으로 거듭났다. 집마다 대문 밖 빈터에 꽃을 심거나 화분을 내놓아 아름답고 깨끗한 마을 가꾸기에 정성을 들인 모습이 역력하다. 골목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벽화가 있어 마을이 밝아졌고 벽화 구경삼아 놀러 오기도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토끼굴(행주나들목)에도 벽화가 있으니 꼭 둘러보고 가라는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을 잊지 않고 나들목으로 향했다. 행주나들목의 벽화는 사막을 떠도는 어린왕자를 주제로 동화풍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나들목을 통과하면 또 다른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데 농수로 물이 그득한 자그마한 방죽이 나타난다. 이곳은 물가로 몰려다니는 송사리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맑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파라솔 아래 낚싯대를 드리운 채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과 수초가를 누비는 물잠자리, 푸른 들녘 등 도시에서는 여간해서 보기 드문 풍경들이다.

행주나들목을 지나 상사마을을 빠져나오면 길은 한강과 접한 강서습지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현재 강서구 개화동을 비롯한 상사마을 일대에는 김포공항 인근 지하철 공사장 지하수를 끌어와 사계절 내내 물이 흐르는 개화천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마을 앞 일부 구간에는 벌써 개화천이 물길을 트고 있다. 개화천 조성사업이 완료돼 상사마을을 품은 개화산에 옛날처럼 실개천이 흐르길 상사마을 사람들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제비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박용남 할머니 내외 ⓒ박분

제비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박용남 할머니 내외

개화산 자락 아래 100여 채 키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룬 상사마을에는 또 다른 가족이 오순도순 살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제비네 식구들이다.

“지지배배~” 반갑게 인사하며 앞장서는 제비를 따라 당도한 곳은 마을에 있는 노부부의 작은 구멍가게다. 가게 안, 제비 둥지에는 제법 자란 네댓 마리의 새끼제비들이 있었다. 진흙을 물어다 지은 제비집만도 5채나 됐다. 제비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박용남(75세) 할머니 말씀으로는 현재 4쌍, 총 14마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4년 전 한 쌍의 제비로 시작해 해마다 늘어 대가족을 이룬 것이다. 이미 다 큰 새끼제비들은 비좁은 둥지를 벗어나 가게 안에 진열된 두루마리 화장지며 할머니가 여가 삼아 즐기는 선반 위 장구 등 가게 안 곳곳에 앉아 있었다.

노부부가 제비와 한 식구가 된 지는 5년째다. 제비들이 동트기 전에 일어나 문 열어달라고 깨우는 통에 노부부는 아침 다섯 시면 가게 문을 연단다. 부지런한 제비들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땅거미가 질 때까지 허리 펼 새 없이 잠자리며 방아깨비 등 먹이를 물어다 새끼들을 키워내는 모습이 사람과 진배없다고 했다.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제비들은 수차례나 가게를 드나들며 먹이를 물어 날랐다.

“혹시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지 않았어요?”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란다. 노부부는 “박씨보다 더 좋은 손님을 몰고 온다”며 답하고는 활짝 웃었다.

매년 4월 초순에 찾아와 집 짓고 알을 낳아 대가족을 이룬 제비들은 9월 하순쯤이면 강남으로 떠난다. 노부부의 말씀을 빌리면, 그때쯤 이별의 슬픔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틀은 구슬피 우짖다 열을 지어 마을을 몇 바퀴 돌다가 마을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난다고 한다.

70~80년대의 전원 풍경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상사마을은 쉬엄쉬엄 걸어 한 바퀴 돌아도 채 한 시간이 안 걸린다. 상사마을은 지하철 9호선 개화역에서 6647번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만 지나면 나온다. 도심 속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느끼고 싶다면 상사마을로 가보는 것 어떨까?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동일조건변경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