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한끼서울] 신설동 통삼겹살 구이

정동현

발행일 2017.09.04. 16:41

수정일 2018.02.28. 16:08

조회 1,885

동대문구 육전식당 1호점-지도에서 보기

숙련된 고수가 구워줘 고기가 더 맛있는 게 육전식당 인기비결

숙련된 고수가 구워줘 고기가 더 맛있는 게 육전식당 인기비결

정동현 맛있는 한끼, 서울⑬ 동대문구 육전식당 1호점

우리집은 고기를 많이 먹었다.

이 많이 먹는다는 기준은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추측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다른 집에서 다른 부모와 살아보지 않았고, 가구별 삼겹살 소비 추이와 실태를 연구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살 때면 ‘손님이 오셨냐’는 질문을 여러 번 들었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 네.’라고 머뭇거리며 대답을 했다고 하신다. 이 사례를 비춰볼 때 정육점 들르는 고객 평균 구매량에 비해 우리집 구매량이 월등히 많았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 정육점 고객들이 통상 고기를 사는 양은 당일 혹은 명일 소비를 목적으로 한다고 봤을 때, 여기에 더해 일주일 안 쪽으로 사용할 돼지고기를 얼려놓을 분량까지 감안했다. 이 양과 비교했을 때 우리 가족 4인 소비량이 평균을 웃돌았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렸을 적부터 다량의 돼지고기를 섭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양적인 성장이 질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지만 최소 필요조건이라고 봤을 때, 내가 돼지고기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정육점처럼 나오는 고기에 부위와 무게를 표시한 태그가 붙어 있다

정육점처럼 나오는 고기에 부위와 무게를 표시한 태그가 붙어 있다

나는 돼지고기 굽는 것을 십대 이전부터 시작했고 가족 내에서도 어머니가 아닌 내가 고기 집게의 권리를 주장했다. 군대에서는 병장 때도,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막내 타이틀을 벗어나고서도 고기 집게를 잡았다. 그때마다 ‘고기 좀 굽네’라는 소리를 들은 것 또한 다수였다.

근래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마저 대신 구워주는 이른바 ‘프리미엄’ 고기집들이 다수 등장했다. 영업 방침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집게를 내어주곤 하지만 고기 굽는 품새를 보면 한숨 나오는 때가 여러 번이다. 고기를 과하게 굽는 경우가 제일 많고. 자르는 두께나 고기를 뒤집는 타이밍 역시 미흡한 경우가 많았다. 몰래 내가 집게를 들려고 하면 “구워드릴게요”라는 소리를 들으며 집게를 빼았겼고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크게 말했다.

‘저보다 잘 구우세요?’

그러나 지구가 공전하듯 매일 나이는 들고 귀찮은 것이 점점 싫어졌다. 몇 푼 돈을 더 내더라도 몸 편한 것이 우선이다. 더구나 사람들은 삼겹살을 좋아하고 나도 그러하다. 어쩔 수 없이 삼겹살 집을 찾게 된다는 뜻이다. 남이 구워주는 걸로 치자면 거의 유일하게 만족한 곳이 있다. 최근 강남 테헤란로에도 진출한 신설동 ‘육전식당’이다.

신설동 육전식당 1호점  모습

신설동 육전식당 1호점 모습

이곳에 가면 가장 먼저 말도 안 되는 웨이팅에 놀라게 된다. 신설동 골목 어귀에 3호점까지 있는데 ‘무조건 본점’을 외치는 근본주의자라면 최소 한 시간, 기본 한 시간 반 정도는 대기해야 자리가 난다. ‘뭔 놈의 삼겹살을 기다리며 먹나’라고 성질을 부리기에는 차분히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3호점에 가도 그보다 덜하다 뿐이지 여전히 극심한 웨이팅이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분한 마음을 식히며 기다리다 보면 일행이 다 차지 않아 순번을 넘긴 이들과, 인내심이 연약한 자들이 버리고 간 번호표가 허공에 나부끼기 마련이다.

겨우 안에 들어가면 마주하는 글자-식사는 2시간만 가능하다-는 사족일 뿐, 2시간 넘겨 삼겹살을 먹다보면 미세먼지에 폐가 물들고 위장은 과포화상태에 이르기 마련이다, 이는 ‘진상 고객’을 향한 속삭임 정도로 마음 넓게 이해하자.

고기를 구워주는 방식의 다른 식당과 비교해서는 1,000~3,000원 정도 저렴한 편이다

고기를 구워주는 방식의 다른 식당과 비교해서는 1,000~3,000원 정도 저렴한 편이다

돼지고기에 있어 수학 방정식 함수와도 같은 통삼겹·통목살을 시키면 젊은 종업원이 집게와 가위를 들고 나타난다. 소금이 살짝, 칼집이 푹 들어간 두께 10cm 가량의 고기를 달군 불판 위에 올리고 굽기 시작한다. 이제 해야 할 것은 그의 솜씨를 눈으로 즐기고 고기를 입으로 맛보는 일만 남는다. 때에 맞춰 고기를 뒤집고 자르고 한데 모으며 굽기를 조절하는데 이제껏 보아온 것 중 최상의 솜씨를 자랑한다.

더구나 모든 종업원이 비슷한 기술을 지녔으니, 저 테이블과 이 테이블을 오고가며 고기를 굽는 모습을 보면 소림사 무승들이 한데 모여 군무를 추는 것 같기도 하고 합이 잘 맞춰진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맛은 어떨까? 돼지고기 맛이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그 예상은 오산이다. 독특한 감칠맛과 탱글한 식감은 과연 이 집에서 어떤 고기를 받아쓰는지 호기심이 일 정도다. 담백한 목심, 기름진 삼겹살로 이어지는 코스로 고기를 즐기면 2시간도 짧은 듯 하다.

명이나물은 추가비용을 기꺼이 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명이나물은 추가비용을 기꺼이 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좋은 영화는 미장센부터 차이가 나는 법, 주연 배우들 뿐만 아니라 조연들 연기도 출중하다. 곁들여 나오는 명이 나물은 추가 요금을 내고 리필하지 않을 수 없고, 마무리 김치찌개 또한 아니 시킬 수 없다.

무엇보다 ‘마무리 볶음밥’은 꼭 먹어봐야 한다.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은박지가 아닌 기름종이를 깔고 그 위에 밥을 볶는데, 유선지를 쓴 아이디어와 쌍칼이 부딪히는 것 같은 두 숟가락 놀림을 보면 이 집에 줄을 서는 것은 고수를 마주하기 위한 관객의 행렬과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

몇 가지 교훈도 얻을 수 있다. 맛은 디테일에 있다는 것, 오래 되었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고 새롭다고 어설픈 게 아니라는 것이다. 육전식당은 그래서 대단하고 또 그래서 부러웠으며 샘이 났다. 나도 고기 꽤 많이 구웠는데……

정동현대중식당 애호가 정동현은 서울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한 끼’를 쓴다. 회사 앞 단골 식당, 야구장 치맥, 편의점에서 혼밥처럼, 먹는 것이 활력이 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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